이번 주 수업을 코앞에 두고 지난 수업 후기를 씁니다.
사실 이미 시간이 꽤 흐른 탓에.... 그냥 노트와 페이퍼를 다시 읽어보며 지금 생각나는 걸 쓰겠지만요^..^;
지난 시간 과제에 저는 무아에 대해 썼습니다.
전에도 잘 이해가 안갔는데.. 무아인 나(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 걸까요...)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생각해보면 '법등명 자등명'이라는 가르침에서도 자기를 말하잖아요.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는다', 이건 분명 자아집착적 태도와 다르고요. 그런데 어째 '무아'라는 말만 들으면 저는 몹시 혼란스러워집니다. (부처님은 이런 것을 노린 것일까요.....-.-)
스스로를 의지처 삼는다. -> 지난 시간에 업을 짓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식하는 것에 대해 욕망을 개입시키지 않고 행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노트에..-.-) 생각해보면 행위할 때 우리는 우리 욕망을 좇는다거나(ex.먹고싶네-먹자), 어떤 사리판단을 개입시키거나(ex.보통 이걸 추천하니 이렇게 하도록 하자), 나름의 정당성을 만들거나(ex. 악을 행할 때도 우리는 '이건 정당하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이 때 우리 행동은 저 욕망이나 판단, 이유 등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행위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여기서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욕망이나 판단 등을 개입시키고 행위할 때 우리는 어떤 상을 만들고 그 상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의지처를 삼으려 할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상을 만든다. 특별한 것으로.'라고 노트에 써있기도. 그렇게 행위하며 우리는 업을 짓는다. 업 짓는건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알 것도 같아요. 저도 번뇌망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만 같습니다.(ㅠㅠ) 이걸 끊고 행위함. 스스로를 의지처 삼는다는 것은 좀 멋진 것 같습니다. 상 없이 행위할 수 있는 의연함 같은?
그밖에 위빠사나 수행법도 같이 읽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유신견 -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보는 모든 행위에 대해 '봄, 봄'하며 알아차려야 한다고 했는데.... 음.... 밥 먹을 때랑 책상 앞에 앉아서 몇번 해봤는데, 음.... 잘 굴러가는 잡념 끊기에는 일단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다보면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하는 생각도 곧 잘 튀어나옵니다.
후기는 여기까지.
곧 돌아올 수업에서는 좀 더 잘 들어볼께요=.=
+ 아래는 아함경 읽을 때 졸려서 찾아본 '청련화' 사진. 푸른 연꽃인데, 진짜 있나봐요;; 굿바이-..-
상 없이 행위할 수 있는 의연함? 이게 뭘까나??? 그리고 뭔가 감'상'적인데?!
그저 부처님의 말씀이 멋지다는 감상에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공부하면서 계속 스스로를 의심하고 생각해봐야할 듯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