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가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입니다!
노란 잎들이 나기 시작할 때 시작했던 것 같은데,(사실 잘 기억도 안 나네요)
벌써 겨울, 그것도 한 겨울이네요. 이것도 지나가겠죠.
수업 시간에 인상적이었던 건, 불교가 변화나 생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는 점이었어요.
변화나 생성을 사유하는 건 도가 쪽이고, 불교에서 변화는 현상일 뿐입니다.
불교가 현상 세계를 부정하지는 않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변화를 바라보는 거죠.
불교에서는 세계를 변화가 아니라 '空'으로 설명합니다.
空, 空, 空...(이걸 어떻게 이야기하나... )
불교는 연기적 조건 속에서 현상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있음'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뭔가를 애착하고, 탐착하면서 마치 그게 진짜 있는 것처럼 보고 듣고 느끼죠.
그게 사라지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죽고 싶고 그렇잖아요.
삶의 조건이 그렇다는 걸 부정하고 싶고. 부정할수록 더 괴로워지고.
그렇게 우린 이 다음 순간을 지옥으로 만들면서 끊임없이 윤회합니다.
붓다는 좋다는 마음, 싫다는 마음 그 양극단을 떠나라고 하시는데,
대상을 향한 그런 마음들에 기대어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걸 떠나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이미 붓다의 말씀들을 공부하고 있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차라리 無知인 채로, 無明 속에서 살아가는 게 더 편한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살아 오는 게 싫었으면서 뭘 또 그러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사람들은, 저는, <묘경>에서 자기가 삼킨 쥐에게 내장을 파먹히고 고통스러워하다 죽는 고양이처럼 스스로를 갉아먹고 사는 중이라는 게 확실하다는 거!
마슈레의 글은 읽을수록 잘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대한 신에 대한 어마무지한 표상 속에서 인간 존재의 정신성을 강조했던 중세철학자들과 달리
스피노자에게는 속성 사이의 위계도 없고, 속성은 그 자체로 실체입니다!
모든 것이 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사유와 연장만으로도 우리가 신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린 바깥의 '탁월성'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지양해나갈 필요가 없는 거죠.
스피노자에게 인간은 결여적 존재가 아닙니다.
완전한 것(신)에서 불완전한 것이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유한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무한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스피노자 철학의 전복성은
감각기관을 가진 인간의 실존이 곧 깨달음의 장이 된다는 붓다의 가르침과 통한다는 말씀!
"유한지성에 부과된 한계들 자체 내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곧 필연성의 형식 안에서 절대자를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마슈레)
*다음 주에는 6시30분부터 <에티카> 1부 전체를 정리합니다.
특히 [부록]을 잘~읽어오시라고 하네요.목적론을 비판하는 [부록]의 철학적 함의를 잘 살펴보시라고요.
<잡아함경>은 49, 50권 읽고 공통과제 써오시면 됩니다! (와우~! 잡아함경을 다 읽다니!!! 축하축하^^)
5시30분부터 토론 시작하니 늦지 마세용!
*간식은 인석!
사실 내게 <묘경>이 인상적이었던 건, 분명 고양이의 위액에 의해 녹아내리고 있을 텐데도 그 안에서 고양이를 갉아대느라 바쁜 저 쥐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