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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대화엄법계도주>를 읽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의상(義湘, 625~702)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 대한 주석을 붙인 책이었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한숨 소리. 주석이 주석다워야지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거 아니냐, 이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그냥 공식처럼 외우고 다녀야 하냐 등등. 당최 무슨 의미인지 해석불가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은하쌤 발제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ㅎㅎ 


완수쌤과 미영쌤은 조금 많이 답답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미영쌤은 비감을 품지 않고 수행하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셨고, 완수쌤은 법성게는 50만자가 넘는 글을 210자로 간명히 나타내고, 글자로써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놀랍고도 존경스러웠지만 생경한 단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셨다고. 하지만 화엄에서 말하는 전체와 개체 부분이 생경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쌤 자신의 분별된 시각이 변하기 않기 때문이라는 자각과 함께 그 이야기들이 낯설고 이해가 가지 않는 자신을 보는 기회로 받아들이셨다고.  苦의 원인을 안다고 해서 삶에서 苦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시크하게 말씀 하셨는데,  저는 완전 반대로 써왔었죠. 자기가 가진 번뇌의 실상이 뭔지를 앎으로써 번뇌가 깨달음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저와 완수쌤이 매우 다른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한 해석이 없어서 좀더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전환이 뭔가. 번뇌 즉 보리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적절한 예인지는 긴가민가하지만, 제리 언니가 얘기한 김민기 인터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고문을 당하다 죽을 지경에 놓인 어떤 이가 억울함과 원망이 아니라 자기를 고문하는 이가 자기로 인해 살인자가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내는 순간 그에겐 번뇌가 곧 깨달음으로 전환된 게 아닐까 싶었어요. 고통을 당하는 상황, 죽는 상황은 변하는 게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내느냐가 전체를 다르게 만들잖아요. 그걸 보면 깨달은 자는 번뇌를 제거한 자가 아니라 번뇌를 겪으며 그걸 다르게 의미화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고통과 깨달음이 다른 게 아님을 가르쳐주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요. 무명 속에서 절대로 헤어나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으로 우리 자신을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수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부를 해도 매번 도로아미타불이 되지만, 어쨌든 책을 읽고 뭔가를 쓰고 하는 과정 자체가 가진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 


큰 부잣집에는 그릇마다 모두 금이요, 해인삼매 가운데 법과 법이 모두 참된 것이다. 다만 크고 작은 것과 모나고 둥근 것과 더럽고 깨끗한 것이 다를 뿐이니 그 얻은바 이익이 다른 법은 아니다. 다만 큰 것을 크다고 말하고, 작은 것을 작다고 말하고, 모난 것을 모났다고 말하고, 둥근 것을 둥글다고 말하고, 물든 것을 물들었다 하고 깨끗한 것을 깨끗하다고 말할 뿐이요, 작은 것을 넓혀서 크게 하며, 모난 것을 다듬어 둥글게 하며, 물든 것을 고쳐서 깨끗하다고 함이 아닌 것이다. 이를 알겠는가?

산이 비었으니 바람이 돌에 떨어지고, 누각이 비었으니 달빛이 문안에 들어오네.

 

현옥쌤과 수경언니가 꽂힌 문단이지요. 자기 그릇 크기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게 다 다르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던 이 문단.  저는 두 분의 공통과제를 읽으면서 한번 무릎을 쳤습니다.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는 말은 맞지만, 여기서의 이익은 양적으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구는 더 많이 갖고 더 적게 갖고, 더 좋은 이익을 얻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산은 산대로 누각은 누각대로 다르게 존재하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더불어 있으며, 해인삼매의 법은 만물에게 모두 공평하게 작용한다는 것. 같은 보배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상될 따름이라는 겁니다. 신은 자신의 능력을 무한하게 펼칠 뿐이고, 만물은 그런 신의 속성을 분유 받은 존재라는 점에서 동등합니다. 그러니 그릇을 크게 넓힌다든지 둥글게 다듬는다든지 깨끗하게 씻는다든지 하는 말은 맞지 않는 거죠.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동일한 실체로 여기며 끊임없이 동일성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처마에 기댄 산색은 구름에 이어져 푸르르고, 난간 밖에 벗어난 꽃가지는 이슬을 띠고 향기롭다'는 김시습의 말처럼 나는 내 본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 아닌 모든것들과 더불어 살고 죽고 변하는 역동적 장 속에 있을 뿐이라는 거죠. 이런 장에서 만물은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서로에게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걸 제대로 익히면 내 몸에서 자비가 저절로 흘러나오겠죠? ^^

제리 언니도 불성과 중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중생이 몽매함을 깨고 불성을 드러내야 한다, 중생에서 불타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요. 이번에 안 것은 중생에서 불타로의 변화가 아니라 라는 존재 자체가 원융한 것으로 인연을 따라 일어난 것임을 알고 행한다면 거기엔 이미 너와 나라는 구분 자체가 없는 게 된다는 것세계는 이미 원융하고, 일체 중생은 이미 불타이지만 자기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불타의 관점에서 자기를 보지 못한다는것!  만두쌤이 주목한 것도 이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세상을 개념화함으로써 차별적 현상으로 존재세계가 성립하는 것이라고 본다는 점. 그런데 인식주관의 형성은 쉽게 끊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무의식의 작동이기 때문이죠. 수영이의 말처럼 우린 천국과 지옥을 세우고, 스스로 악귀로 돌변하기도 하며, 선입관과 벽에 갇혀 한정된 시공간을 살아가죠.  판단하고 생각하고 느끼되 원융한 세계의 실상을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 걸까요. 


당장 수순쌤과 현옥쌤이 가르쳐주신 수행법을 실행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 포스트잇에 화두삼을 만한 문장을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머릿 속에  망상들을 버릴 휴지통을 만들어 시시때때로 휴지통을 비우고, 한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두고 내가 한 시간 동안 쌓은 망상을 허물어 뜨리는 등. 손바닥에 空을 쓰고 생각날 때마다 보고 계신 현옥쌤의 방법도 좋은 것 같아요. ㅎㅎ 

마지막으로 수순쌤의 감동적이었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정진을 위한 한 생각 생각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니 망상과 분별을 내려놓고 지혜와 자비로 걸림없이 진리를 향해 걸어가겠다." 


다음 주부터 <대방광불화엄경>을 읽습니다. 첫 번째 책에서 1, 2권 (~p.64)까지 읽어오시면 돼요. 

발제는 따로 없습니다! 

간식은 만두쌤이 만두를! ^^ 


그럼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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