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금주 수업에서도 만두는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운 물음을 늘어놓았습니다.
나는 왜 믿지 못하는가? 왜 믿음을 갖지 못하는가?
지난주는 이런 믿음의 문제가 독해를 가로막더니 이번 주는 ‘인과’, 정확히는 ‘원인(성)’이라는 낱말에 발목을 잡힙니다.
수경샘의 언어에서 내 안의 혼란에 대한 좀 더 선명한 이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반복된 핵심 내용을 간추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 하지만 멋들어진 요약정리가 우주를 보는 내 눈의 변화까지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나만의 착시현상 같은 것입니다.
분명히 눈에 읽혀지는 의미들은 ‘상호인연성’ ‘상호조건성’ ‘연기’ 이런 것들인데,
나는 이 의미들을 목적을 수반한 수단으로 또는 결과에 선행하는 원인으로 읽고 본다는 것입니다.
눈에 뭔가가 쓰인 겁니다.
그래서 시간(성)의 정의도 찾아보고 원인에 대한 철학자들의 언급들을 긁어 모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수업을 들으며 하나의 말씀에 귀가 넓어지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만두가 인과를 마치 사물의 불변하는 작용이나 대상처럼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만두는 그런 인과를 습관적으로 축적하여 믿고 신념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고 실체인 냥 버리질 못합니다.
언어는 방편이라는 데 만두는 방편을 실체화하고 있는 겁니다.
인과 등 언어적 분별을 얼마큼 복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나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가?
단선적인 원인 결과의 인식에서 서로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수용하는 것.
언어로 구별하면서도 그 속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이렇게 하다보면 ‘연기’라는 말이 전하는 의미도 다르게 느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발빠른 후기!^^ 수영이의 자발적 후기도 기대됩니다. ㅋ 언어를 실체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더 고민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