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5 18:57

9월 22일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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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입니다!

일요일에 일어나 느긋하게 학교가서 책 읽어볼까 하다가,

채운 선생님의 최후통첩(!!!)을 영대에게 전해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습니다!

고작 세 개의 고원을 기웃거렸는데 벌써 걸려 넘어져버렸네요. (많이 아픕니다)

다시 정신차리고, 강렬하게 한 번 부딪혀보겠습니다!

 

후기는 말씀해주신대로, 3장의 주요 개념인

지층화, 이중분절, 내용/표현, 그리고 탈코드화의 여백에 대해서

강의를 바탕으로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이야기 하겠습니다.

 

1. 지층화

이번 3장의 제목은 '지구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였습니다.

들뢰즈는 이 장에서 '인간을 특권화된 것으로 설명하지 않고, 우주적 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차원에서 우주적 차원인 '지구'의 예를 들어, 인간을 설명하고 있는 것, 즉, '인간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 고원들에서 배운 리좀, 탈코드화, 기관 없는 몸체 등의 개념을 지구에 빗대어 이야기 합니다.

일단, 지금의 지구를 보면 육지와 바다, 그리고 산과 고원과 같이 특정하게 '무엇'이라고 언급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무엇'도 아니었던 순간이 존재하며, 육지와 바다가 분리되고, 산과 강이 만들어 지며, 또 바다가 산이 되기도 하는 사건들이 있었으며, 지금 현재에도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지만 그러한 현상은 진행중입니다. 여기서 육지와 바다, 산과 고원같은 것들이 형성되기 전에도 바다가 될 수 있었던 존재들(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면 물을 만드니, 이런 원자들 같은 걸로 예를 들어도 될까요), 다시 말해, 어떤 형식을 부여받지 않은 것들을 '기관 없는 몸체로서의 지구'로 설명합니다. 이런 '기관 없는 몸체'는 시간이 흘러 물이 되거나 공기가 되거나 하면서 특정한 형태를 부여받은 '내용'이 됩니다.

들뢰즈는 이것을 지층의 개념으로 다시 말합니다.

지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땅을 이루는 층들입니다. 이 지층은 만들어진 시간의 차이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지층들과 구분됩니다. 어떤 지층은 바다 밑의 퇴적물로 구성되어 있고, 또 다른 지층은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는 것 처럼 각각은 하나의 특성을 가지고 다른 것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은 태초의 지구 때 '기관 없는 몸체'들이 특정한 하나의 형식을 부여받고 내용을 이루어 코드화, 영토화 된 것입니다. 앞 장들에서 이야기한 코드화와 영토화가 지구의 이야기에서는 지층화로 이야기 됩니다. 이런 지층화는 코드화처럼 하나의 특정 코드로 지정되어 분절된 것입니다.

그러나 코드화로 분리 된 것이 끝이 아니라, 들뢰즈는 각 지층들 간의 사이에 주목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강이 끝나는 바다의 지점을 생각해보면, 어디까지가 강인가, 혹은 바다인가 규정지을 수 없는 애매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강과 바다는 각자의 특성을 분명히 자기 영역 안에서 가지고 있지만,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는 그 특성을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지층 역시 지층의 사이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들뢰즈는 이런 지층의 가장자리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말합니다.

 

2. 이중분절과 내용/표현

 

언어를 말함에 있어, 소쉬르의 기표-기의를 반박하는 개념으로 들뢰즈는 이중분절을 이야기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많이 어려워서 저는 그저 이중분절에서 말하는 것들을 흐름 없이 그냥 외웠는데, 이해한 만큼만 말해보겠습니다.

우선, '내용-표현'의 분절과, '실체-형식'의 분절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고 해서 이중분절이라고 말하는데, 이 중 더 중요한 것은 '내용-표현'입니다. 여기의 '내용'과 '표현'은 둘 다 각각 '실체'와 '형식'으로 또 분절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실체-형식'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내용-표현' 역시 각각의 실체와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내용-표현'이 '실체-형식'의 상위개념으로 봐도 될까요?  아니면, '실체-형식'이 기본적인 틀이며, 이를 가지고 '내용-표현'도 구분지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요? 사실 ''내용-표면'과 '형식-실체'의 차이를 정확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표현'을 '형식-실체'로 나누는 것이 많이 어렵습니다.)

형식-실체는 감옥의 예를 들어주셨는데, 감옥을 이야기 했을 때, 감옥이라는 건물을 있게 해주는 골조나 땅, 흙 이런 것들이 '형식'의 개념이고, '실체'는 여기에 들어가는 죄수, 교도관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형식'과 '실체'라는 말 그대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내용-표현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이것도 '야구'의 예를 들어주셨는데, '야구'라는 운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글러브와 공, 선수 이십여명, 운동장 등 이런 것들이 필요한데, 이것이 야구에서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인데, 형식이란 코드화를 말합니다. 지층으로 설명하면, 지층화되지 않은 처음의(또는 탈지층화 된) 것들을 '질료'라 말하면, 이 질료가 지층화되어 특정한 질서를 가지게 되는 것이 '내용'입니다. 그리고 표현은 다시 야구의 예를 들면, 간단히 말해 '야구규칙'이 됩니다. 야구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내용'이 구성되어 있어도, '야구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야구는 불가능합니다. 또 다른 예로, 배구를 생각해 공과 사람들, 네트와 운동장이라는 '내용'이 모두 존재해도, '표현'인 배구규칙이 없어 사람들이 발로 공을 찬다면 그것은 배구가 아니라 족구가 됩니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내용과 표현은 절대 일대일대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배구가 족구가 될 수 있듯이 내용과 표현은 다양하게 변화하며 서로 바뀌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코드가 절대 절대적이지 않으며, 탈코드화 할 수 있다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3.  탈코드화의 여백

 

들뢰즈는 앞 장에서도 코드화와 동시에 탈코드화의 잠재성(가능성 아닙니다-가능성은 '현실의 부재'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도 지층의 개념으로 '곁지층'을 이야기하며, 탈지층화를 표현합니다. 하나의 지층이 형성되는데 있어 그 재료들은 형식화된 질료인 '밑지층(재료, sub-)'에서 온 것이지만, 이 하나의 지층을 형성하게 만든 지층 속의 재료들은, 지층 외부에 있는 재료들과 단절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외부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인간을 예로 들어 '공기'는 인간의 외부이지만, 이 공기를 인간이 숨쉬는데 활용하기에 이는 외부적이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외부와 내부의 뚜렷한 구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교환에 의해서 하나의 지층(하나의 코드)은 유지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기준이 모호해집니다. 계속해서 인간의 예를 들어본다면, 인간의 내-외를 가르는 피부 역시 이것이 외부인지 내부인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피부의 밖으로 땀 같은 것이 나가고, 또 피부를 통해 균이나 열과 같은 것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외부와 내부를 넘나들며 하나의 지층을 구성하게 하는 것들을 겉(epi-,매개)지층이라 말합니다. 사실, 이렇게 하나의 지층을 보았을 때, 지층은 절대 고정적일 수 없습니다. 겉지층은 지층을 계속 변화시킵니다. 이런 가운데서 변화는 발생합니다. 중심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주변이 되고 지층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심이 파편화 되는 것을 '곁지층(para-)'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지층들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들뢰즈는 '탈코드화의 여백'을 말합니다. 앞에서 지층들을 이야기 했듯이, 하나의 지층, 밑지층, 겉지층, 그리고 곁지층을 가지며, 이들의 작용은 서로 맞물려 탈코드화의 잠재성을 가지게 합니다. '모든 코드는 자유롭게 변이될 수 있는 잉여(suppliment)를  갖고 있다'는 말은 들뢰즈가 여러 지층을 설명하면서 근거를 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핵심 키워드를 가지고 요약을 해 보았습니다. 이젠 이해하지 못했던 '지구는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조금이나마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는 아마 자신을 그냥 '지구다'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구'라는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고자 함은 아닌 듯합니다. 지구는 지구이지만, 언제나 지층화와 탈지층화를 통해 다른 코드를 형성하고 그 코드를 깰 수 있는 형태로서, 하나의 '지구가 가진 특성'으로 요약해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는 이 질문에 '지구다'라는 답 말고는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구가 지구일 수 있는 특성을 댈 수 없다고 해서 지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특성이 있어야 될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제 '지구'의 질문을 '인간'으로 바꾸어, 그리고 '나'로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그저 '나'도 '진영'이일뿐, 그 이상의 특성을 가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형성된 코드에 매몰되지 않고 언제나 탈코드화할 수 있어 매번 다르게 살 수 있는 인간. 비록 지금은 그 탈코드의 방법을 모르지만, 들뢰즈가 제가 말해준 것은 탈코드의 잠재성은 이미 코드 안에 있다는 사실과, 그것은 코드와 코드가 만나는 가장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이기에 그나마 희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가진 여러 개의 코드 중 몇몇 가지가 서로 모순되고 부딪힌다는 것을 가끔가끔 느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그 모순들을 아무 생각없이 묻어버리고 넘어갔었는데, 3장을 읽고나니 그런 곁지층을 콕찝어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이 탈코드의 문을 여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제대로 제가 이야기 하고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제가 이해한 것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나태함을 뿌리치고 계속 고원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물나게 제 삶을 둘러싼 코드들을 깨고 싶어 횡단철학학교의 문을 두드렸던 그 마음을 되새기며, 저는 이어 4장을 읽으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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