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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후기 쓸 게 두 개네요ㅎㅎㅎ 왜 후기 쓰는 시간이랑 발제 쓰는 시간이 비슷한 건지ㅎㅎㅎ

 곧 여섯번째 고원도 올리겠습니다~

 

 

 

 

5. 몇 가지 기호체제에 대하여

1. 기표작용적 체제

현재, 우리는 기표작용적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기표작용적 체제란 절대적 권력을 중심으로 의미망이 펼쳐지는 체제이다.

여기서 들뢰즈/가타리는 소쉬르와 다른 기호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소쉬르는 기표-기의의 짝을 자의적이라고 보았고, 자의적이지만 그 영역 내에서는 또한 필연적인 언어체계에 의해 일대일대응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는 기의 그 자체는 비어있으며 기표들만이 과잉으로 흘러 다닌다고 말한다. 우리는 결코 기의 자체에 도달할 수 없다. 하나의 기표는 수많은 기표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성립된다. 사과(말소리) 속에 사과(본질적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붉음, 열매, 달다, 동그랗다, 백설공주, 가을…}이라는 기표들의 과잉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표들의 그물망, 즉 의미망은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자의적 필연성’에 의해?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바로 이 의미망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거대한 권력에 의해서다. 그것은 얼굴성, 신, 전제군주 등으로 불린다.

기표작용적 체제를 다른 말로 하면 국가체제다. 국가는 문자를 통일하고, 법을 제정한다. 그것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점으로 코드를 쫙 빨아들이는 것이다. 초코드화! 국가의 형식은 초코드화다.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말하기 때문에 ‘의미’가 생성된다. 예를 들어보자. 가부장적인 집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곧 법이며 초권력이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일단 시키니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법은 바로 이렇게 작동한다. 그것은 아주 강력하고 일방적이며 초월적인 명령어다. 우리는 그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평소에 이런 권력관계를 의식하지 못한다! 사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제란 해석하는 자, 의미를 생성하는 자다. 사제는 초코드화된 기표들에 의미를 부여하여 얼굴성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게 만든다. 이제 기표들은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갖가지 동심원들을 만든다. 가령, 아버지가 A를 시켰다면 아들은 A에 온갖 해석을 갖다 붙인다. 그것이 孝라느니, 禮라느니…. 그러나 아들의 해석은 결코 아버지라는 초권력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는 청소년을 미성년자로 못박아놓았다. 그리고 미성년에 관한 온갖 담론들이 범람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사교육, 대안교육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 어떤 담론도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담론들 속에서 청소년은 국가의 의도(?)대로 미성년자에 못 박혀 있다. 고로, 이 기표작용적 체제는 기만의 체제다! 결국 모든 것은 해석이며 해석이 많아질수록 초권력은 굳건해진다. 주체는 원을 뱅글뱅글 돌면서 전제군주의 말을 반복하고, 사제가 해석해준 의미를 몸에 새길 뿐이다.

 

 

2. 후-기표작용적 체제

기표작용적 체제 이후, 이 주체가 중심이 되는 체제가 생긴다. 그것을 후-기표작용적 체제 혹은 정념적 체제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더 이상 신-사제-백성 구도가 성립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배반선이다. 나는 국가권력이 시켜서 A인 것이 아니라, 내가 A라고 생각하고(의식) 또 A라고 믿기 때문에(정념) ‘A’인 것이다.

정념적 차원은 의식의 차원과는 다르다. 그것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내 몸에 받아들여진 차원이다. 주체의 의식적 노력과 정서적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스피노자는 이것이 바로 “주체”라고 말한다. 의식과 정념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반드시 정념을 통과해야지만 의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싫다’ ‘좋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두려워하거나 편안해하는 신체의 반응이 먼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주체가 되는가? 먼저 ‘나’를 연속적 실체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아>=<자아>) 그리고 정서적/신체적 배치를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자>=<여자>) 가령, 나는 엄마다. 어제도 엄마고 오늘도 엄마고 내일도 엄마고 죽을 때까지 엄마다. 만약 내가 분열증에 걸려서 혹은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엄마’라는 말을 잃어버린다면 나는 엄마일 수 없을 것이다. 엄마라는 단어 속에서 연속되는 나. 그 다음 필요한 것은 실제 현실에서 작동하는 정서와 실천이다. 아이와 마주하면서 느끼고 표출하는 감정들, 그리고 아이에게 행하는 행동들. 이것이 나를 엄마로 만든다. 아이를 예쁘게 꾸미고, 학원에 보내고, 옷을 사주고…. 이렇게 이성과 정념이 혼연일체가 되는 지점, 그것이 바로 ‘주체화의 점’이다. 후-기표작용적 체제는 언제나 이 주체화의 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체화의 점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부모, 음식, 연인, 애완동물…. 이 점들 속에서 각각 우리는 다른 주체가 된다. 그리고 이 점에서 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선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언표행위의 주체’와 ‘언표의 주체’라는 두 스텝을 번갈아 밟아가면서. 언표행위의 주체는 나는 엄마라고 선언하는 ‘나’다. 엄마로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주체다. 그런데 그것은 항상 단짝처럼 언표의 주체와 함께 다닌다. 여기서 언표의 주체는 내가 나라고 선언한 ‘엄마’다. 그리고 이 ‘엄마’라는 기표는 기표작용적 체제 속에서 존재한다. 즉, 이 순간부터 나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엄마라고 규정하고 엄마로 취급하는 외부 권력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 주체란 무엇인가? 외부의 권력을 스스로 자기화한 자이다. 신의 말씀을 해석해주는 사제가 사라진 대신 신의 말씀을 직접 내면화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순간, 그렇게 불리는 영역/영토에 갇히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꼴이 된다. “누구누구 어머니!” “네~!” 응답자. 결국 주체화의 체제란 기표작용적 체제를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간접화법을 쓸 수밖에 없다. ‘나’의 목소리에는 늘 권력의 욕망이 있다.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순수할 수 없다.

이것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본 문화文化이다. 문화는 기표화와 주체화를 작동시킨다. 기호화, 기호를 어떻게 기표화하는가. 주체화, 어떻게 스스로를 의미망 속에 가두는가. 물론 다른 문화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전-기표작용적 체제나 탈-기표작용적 체제 같은. 게다가 이 체제들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기표작용적 체제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있다.

 

 

 

3. 고른판

기표작용적 체제나 후-기표작용적 체제나, 결국은 일종의 탈영토화이다. 기표작용적 체제에서 기표들은 의미망들을 건너뛰면서 의미생성을 한다. 후-기표작용적 체제에서는 기표작용적 체제를 배신하고 ‘주체’로 선다. 그러나 첫 번째는 결국 신이 있는 지층으로 되돌아가며, 두 번째는 언표의 주체로 넘어가버린다. 그런데 이 둘과 구별되는 세 번째, 절대적 탈영토화가 있다. 들뢰즈 가타리는 바로 이 고른판을 향해 긍정적이고 절대적인 탈영토화의 선을 그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도표(Diagram)를 그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 기호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판판한 판 위에서 그려보는 것이다. “어떤 체제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기표작용적 기호계와 후-기표작용적 기호계에 관한 도표를 만들 수 있다.”(261) 고른판. 그것은 어떤 초월적 차원이나 차원들 간의 위계를 상정하지 않는다. 그 위에서는 오직 움직이는 선들만이 있다. 우리는 고른판을 통해서 여러 기호계들이 혼합되어 있는 우리네 현실을 단박에 파악하게 된다. 기호계들은 서로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물질적/기계적 차원과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까지도 고른판 위에서 볼 수 있다.

고른판 위에서는 기호가 없다. 오직 <추상기계>만 있다. 추상기계란 언표적 배치와 기계적 배치를 연결해주는 고리이며, 이 배치물들 속에서만 추출해낼 수 있다. 국가, 학교, 들뢰즈…. 이 모든 것들이 추상기계다. 예를 들어보자. “국가.” 국가라는 것은 어디에도 따로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네 삶 속에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이 낱말은 언표적 배치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떠돌아다니며, 기계적 배치 속에서 우리의 삶에 물리적 영향력을 끼친다. <추상기계>의 혁신성. 추상기계로 사유하는 순간 우리는 ‘개념적 실체’라는 환상에 빠지지 않게 된다. 우리는 국가를 말하면서 마치 국가라는 근본적인 실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말은 언표적 배치와 기계적 배치가 서로 갈아듦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주체가 배치물의 결과인 것처럼 국가도 배치물의 결과이다. 고로, 우리는 국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언표적 배치와 기계적 배치를 동시에 꿰뚫어야 한다. 기표작용적 체제의 기만이나 주체화 체제의 배반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고 통찰력을 발동시켜야 한다. 그렇게 파악된 ‘국가’가 바로 <추상기계>로서의 국가인 것이다. 도표 위에 그려진 선들, 그 결과로서의 국가.

재미있는 것은 지층과 고른판의 한끝차이이다. “국가”는 추상기계이지만 또한 지층이기도 하다. 우리가 안정된 판에서만 놀면 국가는 지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익숙한 영역에서 탈주하고 고른판에서 보려고 하는 순간, 국가는 추상기계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가라는 지층 속에서도 그것을 추상기계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기표화와 주체화에 빠지지 않은 채로 지층 속에 균열을 낼 수 있게 된다. 지층과 고른판 사이에서 진동하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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