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5 20:09

9월 29일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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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수요일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저자의 친필사인이 담긴 책 한 권을 너무너무 받아보고 싶지만,

이토록 늦게 올리는데다가, 스스로도 내용들이 정리가 잘 되지 않아 그 허망한 욕심은 버려야겠습니다 (^^;;)

 

네 번째 고원, 언어학의 기본 전제들 중 <명령어와 간접화법>, <비물체적 변형>, 그리고 <다수와 소수>에 대해

이해한만큼 후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명령어와 간접화법

 

언어구조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언어의 기능이 몇 가지 있습니다. 언어는 '화자'가 '청자'에게 말하는 '발화상황'에서 지시, 표출, 묘사, 명령 등의 기능으로 구분이 됩니다. 잘은 모르지만, '표출'이라고 하면 "오늘 춥다"라 말하며 화자의 느낌을 표출하는 기능을 하고, "저 여자 예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물을 묘사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명령은 제가 지난 주 예비군 훈련에서 "약진 앞으로!" 라는 말을 듣고 총들고 매우 뛰었던 것 처럼, 말 그대로 화자가 청자에게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기능입니다.

그런데, 들뢰즈는 실은 언어에서 이런 지시, 표출, 묘사와 같은 기능은 다 없고 오직 명령만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언어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명령만이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영대가 제 스쿠터를 타고 신촌을 달리다가 "오늘 춥다"고 하는 것도 그저 자기가 춥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말일까? 라는 의문이 문득 듭니다.

언어구조학은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언어를 분석할 때, 화자가 청자에게 이야기 하는 상황에서는 주변의 상황같이 의미가 왜곡될 수 있는 상태를 모두 배제합니다. 마치 실험실 속의 상황처럼 화자의 말이 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상태를 전제로 둡니다. 다시 말해, '잡음이 최소화'되었을 때, 전달communication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믿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들뢰즈는 이 잡음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을 뿐더러, 이 잡음이야말로 바로 언어 그 자체임을 주장합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오직 '언어' 그 자체인 '랑그'와 실제 발화 상황인 '파롤'을 나누어 따로 분석하는 언어구조학적 모델이 아닌, 언어는 기본적으로 실제로 발화하는 상황인 '파롤'이 전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랑그'가 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롤'을 통해 '랑그'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이야기 한 영대와의 대화에서도, 밤거리를 달리며 스쿠터를 타고 있고, 추운 상황 속에서 "오늘 춥다"라는 말을 분석해야 맞는 것이지, 모든 상황 조건 다 떼어내고 "오늘 춥다"라는 말 그 자체만을 분석해봐야 제대로 된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위의 상황에서 춥다고 말한 것은 '추우니 천천히 달려라' 혹은 '이제 추우니 나는 버스를 탈테니 차 세워라' 아니면 정 반대로 '추우니까 빨리 달려 집에 얼른 가자'의 영대의 명령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다른 상황에서 - 자취방에서 자고 있는데 영대가 "오늘 춥다"라고 말한 것은 '내가 추우니 난방비 아끼지 말고 보일러를 빵빵 떼어라'고 의도하는, 스쿠터를 탈 때와는 전혀 다른 명령이 됩니다.

이렇듯이, 언어는 발화하는 잡음 속에서 파악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모두 복종을 의도로 두는 명령어라는 점에서 들뢰즈는 '언표는 명령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간접화법'을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정보로서의 기호의 소통이 아니라 명령어로 기능하는 말의 전달'이기에 언어는 명령어이며, 간접화법이 됩니다. 들뢰즈 식으로 언어의 전달은 어떤 단어를 사용하여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명령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명령어는 수많은 잡음들을 가지고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이는 소쉬르 식의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직접'이 아닌, 잡음 속에서 파악되는 '간접'의 특성을 지닌 화법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2. 비물체적 변형

 

'언표는 명령어다'고 말한 들뢰즈의 말대로라면, 온갖 잡음이 끼인 상황에서 화자의 명령어는 청자에게 어떻게 반응할지요. 사실, 누군가가 정확한 언어를 가지고 상대에게 말한다고 해도 그 상대가 100퍼센트 화자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소쉬르가 가정하는 방법대로라면 가능해야할텐데 말입니다. (만약 이게 맞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채운선생님의 강의를 제가 다 이해할 수 있을텐데;;;;) 들뢰즈는 '명령어는 그 자체로 행위와 언표의 잉여(이게 바로 잡음같은 것)'라 말하며, 주파수와 공명을 통해 의미의 전달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주파수는 정보의 의미생성에, 공명은 의사소통의 주관성에 관련을 두고 있습니다.(사실 이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ㅠ)

그런데 들뢰즈가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언어는 신체적 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태람조교님이 저에게 '10월달 밥 언제 할래? 네 번 골라'라고 하시는 순간, 저의 신체에는 '그동안 연구실에 나와 강의 들으며 더 넓은 것들을 알게 되었으니, 나도 미력이나마 연구실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연구실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결과로 '밥 해라'라는 언어가 신체적으로 파고들어 청자를 변화시키게 됩니다. 들뢰즈는 이러한 변화를 '비물체적 변형'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비물체적'이라 표현한 것은, 앞서 3,4장에서 공부한 실체-형식의 구분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스토아학파의 몸체-의미로 설명해주셨는데, '칼'과 '몸', '칼에 찔린 몸' 그 자체는 몸체body로서, 이것만으로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으며, 여기 몸체에서 '칼은 누구꺼고 몸은 다른 누구꺼였다'와 같은 의미(살인 등)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몸체와 의미를 이어주는 것이 '사건'이 됩니다.

이 틀에서, 들뢰즈는 물체적인 것과 비물체적인 것으로 단어를 바꾸어 설명합니다. 몸체는 물체적인 것이 되고, 의미는 비물체적인 것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 물체적인 것과 비물체적인 것을 이어주는 접점이 '사건'입니다. 위에서 든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태람조교님과 저, 그리고 주방달력은 가치판단을 할 수 없는 '물체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태람조교님의 발화는 '사건'이 되고, 그 말을 듣고 제가 '연구실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은 비물체적 변형입니다. (그런데, 이 설명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ㅠ)

이러한 맥락에서 들뢰즈는 비물체적 변형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비물체적 변형은 역시 언어가 명령어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3. 다수와 소수

 

위에서는 언어가 명령어임을 들뢰즈는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언어가 명령어인 상황에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들뢰즈는 '다수와 소수'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어는 다수나 표준어라는 조건하에서만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공준을 비판하는데서 시작하고 있는 들뢰즈는, 기존의 언어학이 표준어에 한정지어 언어를 분석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표준어가 단순히 다수의, 그리고 공인된 언어가 아니라, 중앙집중화하고 표준화된 하나의 권력이라 설명하며, 통일성을 가지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명령어에 따르게 만든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이용해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틀에 맞게 인간이 사유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 처럼 들립니다. (맞나요;;?) 여기서 들뢰즈는 표준어가 아닌 소수의 언어(예를 들어 방언 등)에 집중합니다. 이 소수의 언어는 마치 코드화와 동시에 탈코드화가 진행되듯이, 이 다수의 언어 속에 이미 소수의 언어가 생겨나고 존재합니다. 다수어 속에서 자생되는 소수어는 통일성 속에 놓여 권력에 의해 정의되는 다수어와는 달리, 통일성을 배제하고 변주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수어를 통해, 다수어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수어가 방언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프카의 예를 들어주셨는데, 체코인인 카프카는 독일어로 글을 썼지만, 그의 글은 체코어도, 독일어도 아닌 자신만의 글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렇다고 독일 문자나 문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독일어의 문체를 떠나 자신만의 단어 사용이라던지, 문체라던지 뭐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썼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즉, 방언으로의 재영토화가 아닌, 다수어의 탈영토화를 들뢰즈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수어는 다수어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어의 코드화에서 생성되는 탈코드화에 있으며, 이 소수어는 다수어와 등위관계를 가지지도 않습니다.

 

 

결국, 4장에서 들뢰즈는 '언어는 명령어'라는 주장을 통해, 우리가 명령어를 피할 방법은 없으며, 할 수 있는 것은 명령어가 주는 통일성을 피하는 방법(사형선고를 피하는 것)을 찾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명령은 와서 가시처럼 박힌다'고 하셨듯이, 박힌 가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며, 이를 바로 뽑던지, 아니면 더욱 깊게 박히게 하는지의 사후처리가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언표적 배치를 바꾸면 그것 역시 기계적 배치의 변화처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바뀌게 된다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언표적 배치를 바꾸는 것은 무엇보다도 글을 많이 써 보는게 될 것 같습니다. 글은 그 사람을 반영한다고 하던데,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서 있는 코드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코드의 경계점이 어디인지를 찾아보고 그 경계에서 벌어지는 탈코드를 따라가는 것은 생각만해도 즐겁습니다. 다만, 그 즐거운 생각은 글을 쓴다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하겠지요. 이렇게 후기 쓰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고, 발제도 매번 발로 쓰는(항상 발로 쓴다면 그 발이 곧 손이겠;;군요) 이 상황을 부끄러이 여기면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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