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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적에 관해 (돈 후앙의 가르침 중)

1962년 4월 8일 토요일

지금까지 둘이서 대화를 해 나오는 가운데 돈 후앙은 “앎의 사람(知人)”이라는 말을 자주 썼고 또 그 말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설명해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설명을 부탁했다.

“앎의 사람(知人)은 모든 고난을 마다 않고 진실되게 배워 나가는 사람을 뜻한다.”
그가 말했다.

“성급히 굴지도 않고 그렇다고 꾸물대지도 않으면서 힘과 지혜의 비밀을 끝까지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사람이 곧 앎의 사람(知人)이다.”
“누구나 앎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다.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앎의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자신에게 있는 네 가지 타고 난 적에 도전해서 이겨야 한다.”
“그 네 가지 적들만 물리치면 앎의 사람이 됩니까?”
“그렇다. 누구든지 그 네 가지 적들을 물리칠 능력만 있으면 자신을 앎의 사람이라 여겨도 좋다.”
“그렇다면 이 세상 누구라 해도 그 적들만 물리치면 앎의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렇다. 그 적들을 물리친 사람이면 누구든지 앎의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적들과 싸우기 전에 꼭 필요한 요구 조건 같은 것은 없습니까?”
“없다. 누구든지 앎의 사람이 되기 위해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과 몇 명만이 성공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앎의 사람이 되기 위해 배워 나가는 도중에 마주치는 그 적들은 절대 만만치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적들에 굴복하고 만다.”
“그것들은 대체 어떤 적들입니까. 돈 후앙?”

그는 적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길 거부했다. 단지 내가 그 주제에 대해 배우려면 아직 멀었다고만 말했다.
나는 그 화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나도 앎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누구도 그것에 대해선 확실히 말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가부간의 어떤 조짐이라도 알고 있으면 말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그것이 순전히 내가 그 네 가지 적들과 싸워 이기느냐 아니면 무릎을 꿇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으며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예언한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다시 그가 갖고 있는 마법이나 예언 능력을 이용해 그 싸움의 결말을 미리 알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떤 수단으로도 그 결과는 알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왜냐하면 앎의 사람이 되는 일은 일시적인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 점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부탁하자 그는 말했다.
“앎의 사람이 되는 것은 영원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는 누구도 앎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네 가지 타고난 적들을 물리치고 나서 잠깐 동안만 앎의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네 가지 적이 무엇인지 꼭 좀 말씀해 주십시오, 돈 후앙.”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집을 부렸지만 그는 화제를 바꾸어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1962년 4월 15일 일요일
떠날 준비를 마치자 나는 다시 한번 그 네 가지 적들에 대한 질문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번에 떠나면 오랫동안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가 말해 주는 것을 받아 적어가서 떠나 있는 동안 나 혼자서 그 얘기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드디어 얘기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배움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다. 몇 가지 목적이 있다 해도 결점 투성이고 의지도 굳지 않다. 그는 배움의 고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실현될 수 없는 보상들만을 꿈꾸고 있기 십상이다.
그는 천천히 배워 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에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 큰 덩어리에 부딪힌다. 그때 그의 생각은 쉽게 분열을 일으킨다. 그가 배우는 것은 애초에 그가 머리 속으로 그리고 상상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따라서 그는 겁을 먹기 시작한다. 배움이란 누구한테나 전혀 상상 밖의 것이다. 배움의 모든 단계들이 다 새롭기만 하다. 그러니 자연히 두려움이 산처럼 쌓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큰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마음 속에 있는 첫 번째 적과 마주치게 된다. 바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야말로 무시무시한 적이다. 뿌리칠래야 뿌리칠 수도 없고 싸워 이기기도 힘이 든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 놈이 눈을 번뜩이며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두려움에 겁을 집어먹고 달아났다면 그것으로 문이 닫히고 만다.”

“겁을 먹고 도망가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다른 것은 둘째 치고 그런 사람은 절대 배울 수가 없다. 그는 절대 앎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아마도 그는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인물이나 아니면 악의는 없지만 겁에 질린 위인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어쨌든 그는 패배자가 된 것이며, 첫 번째 적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바라던 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달아나지 말아야 한다. 달아나지 말고 그 두려움에 도전해서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로 배움을 계속해야 한다. 두려움이 아무리 크게 밀려와도 멈추어선 안된다. 이것은 규칙이다! 그러다 보면 드디어 첫 번째 적이 물러가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자신감이 생기고 의지가 더욱 강해진다. 그때는 배움이 더 이상 두려운 일이 아니다. 이 기쁜 순간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자기가 첫 번째 적을 물리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순간이 한꺼번에 찾아옵니까, 아니면 서서히 찾아옵니까?
“서서히 찾아온다. 하지만 두려움은 일단 물러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또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다시 두려워지지 않을까요, 돈 후앙?”
“그렇지 않다. 일단 두려움을 정복하고 나면 평생동안 그것으로부터 해방이 된다. 왜냐하면 두려움 대신 명석한 정신이 두려움을 없애 준다. 이 때가 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고, 그 원하는 것들을 어떤 방법으로 성취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단계의 배움을 스스로 기대하게 되고, 매사를 분명하게 이해한다. 그는 어느 것 하나도 비밀에 싸여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그는 두 번째 적과 만나게 된다. 바로 명석함이다! 명석한 정신은 얻기도 힘들고 일단 얻기만 하면 두려움을 물리쳐주긴 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눈을 멀게 한다.
명석함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분명히 바라볼 수 있기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자신감을 얻는다. 분명하기 때문에 그는 용기도 생기고 어떤 장애물에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하나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불완전한 상태에 불과하다.
만일 스스로에게 확신을 불어 넣는 이 명석한 정신에 자신을 송두리째 내맡긴다면 결국 두 번째 적에 굴복하는 셈이 되며, 거기서 배움이 중단되고 만다. 그는 인내를 갖고 참고 기다려야 할 때에 가서 마구 돌진해 들어갈 것이며, 돌진해 들어가야만 할 때에 마냥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꾸만 발을 헛디뎌 마침내 더 이상 배움을 지속해 나갈 수 없는 결말에 이를 것이다.”

“거기서 패배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돈 후앙? 그는 죽게 됩니까?”
“아니다. 죽지는 않는다. 다만 더 이상 앎의 사람이 되려는 시도를 못하게 될 뿐이다. 앎의 사람이 되는 대신 그는 어릿광대나 떠돌아 다니는 싸움꾼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값비싼 대가를 지불한 정신이 또 다시 어리석음이나 두려움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한 그는 여전히 명석한 정신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무엇을 배우거나 갈망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에 패배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두려움에 대해서 했던 것과 똑같이 해야 한다. 자신의 명석한 정신에 도전해서 그 명석한 정신을 오로지 보는 데에만 이용하고 새 배움의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깊이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명석함이 오히려 눈의 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이 상태가 바로 두 번째 적을 물리친 상태다. 이 위치에 서면 어떤 것도 그를 해칠 수가 없다. 하나의 오류나 눈의 티로서가 아니라 그는 진정한 힘을 지니게 된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힘이 드디어 자기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는 그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의 협력자는 그의 명령에 따르고, 그가 원하는 것이 곧 법칙이 된다. 그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는 힘이라는 세 번째 적과 만나게 된다.
힘은 다른 적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하다. 따라서 당연히 거기에 굴복하기도 가장 쉽다. 어쨌든 그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에게 대항할 수 없다. 그는 명령을 내리며 일부러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어 주위 모두를 자기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그는 이미 대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 번째 적이 곁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돌연 눈치도 못 챈 사이에 싸움에 지고 만다. 이 세 번째 적은 그를 잔인하고 변덕많은 인간으로 바꿔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의 힘을 잃게 됩니까?”
“아니다. 명석함이나 힘은 잃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그를 앎의 사람과 구별할 수 있습니까?”
“힘과의 싸움에서 진 사람은 끝내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그러니 힘은 오히려 그의 운명에 짐지워진 무거운 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명령을 내리지 못하며, 언제 어떻게 힘을 이용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싸움이든지 일단 지고 나면 그것으로 영원한 패배가 됩니까?”
“물론 그것으로 끝장이다. 어떤 적에게든지 일단 패배하고 나면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
“이를테면 힘과의 싸움에서 진 사람이 자기 실수를 알고 방향을 바꿀 수는 없습니까?”
“불가능하다. 일단 굴복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일시적인 힘에 눈이 멀었다가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직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가 여전히 앎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때 자신을 포기할 때 사람은 패배하게 된다.”
“그렇다면 돈 후앙, 몇 년 동안 두려움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가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는 일도 가능합니까?”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일단 두려움에 굴복하고 나면 다시는 그것을 정복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배우는 것을 겁내고 더 이상 시도하려 들지 않을 것이니까. 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몇 년 동안 굴하지 않고 계속 배우려고 시도한다면 마침내 두려움을 정복하고 말 것이다. 그 상태는 자신을 두려움에 내맡긴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세 번째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돈 후앙?”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진해서 힘에 도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이 실제로는 절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항상 자기자신을 단속하고 자기가 터득한 모든 사실을 조심스럽고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는 명석함과 힘이 하나의 오류보다 더 나쁘다는 사실을 깨우치기만 하면 스스로 자기 속의 모든 것을 점검하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 이때 비로소 언제 어떻게 자신의 힘을 이용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이 상태가 바로 세 번째 적을 물리친 상태다.

이리하여 그는 배움의 마지막 여행에 접어든다. 그리고 전혀 사전 경고도 없이 마지막 네 번째 적과 부딪히게 된다. 바로 늙음이라는 적이다! 이 적은 인정사정이 없다. 누구도 완벽히 이 적을 물리칠 수 없다. 다만 계속해서 싸워 나갈 수만 있을 뿐이다.
이 단계에선 두려움도, 서두는 명석함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자신의 모든 힘을 잘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휴식을 취하고 싶은 끝없는 욕망이 일어나는 단계이기도 하다. 만일 이 욕망에 굴복해 쓰러져 눕거나 모든 걸 깨끗이 잊으려 한다면, 만일 피곤하다는 구실로 자신을 잊는다면 그는 결국 마지막 마당에서 패배하고 말 것이며, 그의 적은 그를 연약한 늙은이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그만 휴식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는 모든 명석함과 지혜를 몽땅 공중에 날려 버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피곤함을 씻어내고 삶을 끝까지 철저히 산다면 그는 비로소 앎의 사람이라 불리워질 수 있다. 마지막 적, 늙음이라는 그 무적의 적과 싸워 이기는 순간 그는 앎의 사람이 된다. 그 순간 속엔 명석한 정신과 힘과 지혜가 다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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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길 뿐,
즉, 마음이 담겨 있는 길이다.
어떤 길이든 마음이 담겨 있는 길로
나는 여행을 한다.

여행하면서 그 길을 끝까지 다 걸어보는 것
그것만이 이 생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도전이다.
바로 그러한 길을 나는 걷는다.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또 지켜보면서,

어떠한 길도 다만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며,
그대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그대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모든 길을 가까이, 세밀하게 관찰하라.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시도하라.
그런 다음 오직 그대 자신에게만
이 한 가지를 물어 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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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戰士의 선禪


카스트네다여!
자네의 왼쪽 어깨에 항상 죽음을 메고 다니게.
그리고 자네가 조급해 지거나 혼란스러울 땐
왼쪽을 돌아보고서 죽음에게 충고를 구하게나.
만약 죽음이 자네에게 손짓을 하거나, 자네가 죽음을 슬쩍 보았거나,
자네의 동료인 죽음이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단것을 느낀다면
자네의 잡다한 고민들이 일시에 떨어져 나걸 것이네!"
                --- 카스타네다 저<익스트란으로의 여행>에서 인디언 돈후앙의 가르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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