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6 10:38

6번째 고원 후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6. 기관 없는 몸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기관 없는 몸체

기관 없는 몸체는 직접 만져지는 나의 몸뚱이가 아니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내 몸 위에서 흐르고 있는 모든 것들이다. “관념이 아닌 실천들의 집합.” 쉽게 생각해보자. 나는 내 몸을 평소 어떻게 경험하는가?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늘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하는 까닭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굳어져버린 기관 없는 몸체를 들뢰즈/가타리는 ‘유기체’라고 부른다. 유기체란 이 기관 없는 몸체가 굳어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몸뚱이를 생생하게 느낄 때가 있다. 아플 때. 우리는 눈이 아플 때야 비로소 눈을 느끼고, 배가 아플 때야 비로소 장을 느낀다. 아프다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것이 내 몸 위에서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요가를 할 때. 매일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향해 굽어 있던 등이 요가동작을 하는 순간 미친 듯이 뻐근하고 아프게 된다. 요가자세를 함으로써 등, 목, 팔, 다리가 평소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즉, 전혀 다른 ‘흐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유기체에서 벗어나서 무엇인가를 흐르게 할 때 생생한 에너지를 느낀다. 강렬도를 다르게 분배하는 것이다. (강렬도로 설명한다면, CsO를 만드는 것이 강렬도=0라 할 수 있고, 그 위에 무엇인가를 흐르게 하는 것이 수많은 실수의 강렬도(-57, 10, -839, 390...)를 주는 것이 된다.)

이 CsO는 여러 층위로 나뉜다. 첫째, 실제 삶에서 거저 주어지는(?) CsO. 우울증의 몸체, 편집증의 몸체, 마약을 한 몸체, 마조히스트의 몸체가 여기 속한다. 그들은 유기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몸체를 사용한다. 변태나 병자(?)만 CsO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꿈을 꿀 때도 우리는 CsO가 된다. 경기하는 운동선수들을 볼 때도 우리는 일종의 CsO를 보고 있는 것이다. CsO, 그것은 일상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둘째, 만들어야 하는 CsO. 이것은 우리가 지향하고 추구하고 수련과 수행을 통해 갈고 닦아야하는 몸체다.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이것은 ‘내재성의 평면’에 도달하는 문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채운쌤 왈, 이것을 道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道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내가 걸어가는 ‘길’이다. 헌데, 돈 후앙의 말처럼 어떤 길도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길의 갈래는 무수하기 때문이다. 도를 추구하는 것은 옳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길에 온전히 마음을 내주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나의 길 안에 나를 제외한 수많은 길들을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 온전히 마음을 내는 순간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일 것이다. 나의 길이 길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수많은 다른 길들이 또 보일 것이다. 이 어설픈 내공으로, 그렇지 않을까 한번 상상해본다^^;; 나의 길을 걷는 동시에 고른판 위를 걷기. 마약을 하지 않아도 마약을 한 것처럼 내 몸을 만들기.

 

 

2. 욕망과 내재성

‘욕망’이란 이 CsO(내재성의 장) 위를 흘러 다니는 강렬도다. 입자들의 부딪힘, 죽음, 정지까지도 포함하여 ‘생산하는 모든 과정’을 곧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은 내재성의 장 위에서 흐른다. “내재성의 장은 자아의 내부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또한 외부의 자아에서 유래하거나 비-자아에서 유래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아’를 인식하지 않는 절대적인 ‘바깥’과도 같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욕망을 내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며 ‘쾌락’이 된다. 쾌락은 절정에 다다르면 사라지는 종착역과도 같다. 더 나아가 쾌락은 삶을 결핍으로 만든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그것이 내 삶에 결핍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왜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닐까? 욕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뭔가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뭔가를 한다는 것은 늘 타자와 마주치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를 하다보면 내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엉뚱한 사건과 부닥칠 때가 있다. 그 사건은 하늘에서 떨어진 폭격처럼 갑자기 오지만, 사실은 과거의 나의 행동 속에 미리부터 존재해온 씨앗이다. 그것은 나 이외의 타자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관계망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 타자들과 관계망을 맺으면서 살아왔다. 물론 알아차리지 못 했겠지만!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내재성의 장을 엿본다. 하나의 판 위에 교차하고 치고 빠지는 수많은 선들. 나는 그 선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아니, 실은 이 모든 선들이 ‘나’를 이룬다. 나의 행위 속에는 내가 모르는 타자들이 득실거린다. 욕망하는 것, 그것은 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산하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오직 이 수많은 선들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것뿐이다. 이 욕망에는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기쁨 혹은 슬픔의 감정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의 에너지가 있다.

CsO는 이행의 성분이다. CsO 덕분에 우리는 기존의 지층에서 탈영토화해서 다른 지층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우리는 당췌 CsO를 보지 못한다. 지층들 속에 파묻혀있기 때문이다. 한번 탈영토화한 그 지층에 계속 머물러 있거나, 탈영토화하여 나아간 그곳마저도 유기체로 만들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욕망을 쾌락으로 전환시키기. 나의 삶에 타자가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는 흘러다니고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CsO를 경험한다. 매일매일 욕망하며, 매일매일 몸 위에 강렬도를 흐르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니라 지금-여기, 나의 일상에서 道를 추구해야 한다. 이곳에 이미 모든 선분들이 다 있다.

 

 

3. 실험

우리가 벗어나야 할 것은 유기체, 의미생성, 주체화라는 지층이다. 이 지층들을 뛰어넘어 욕망이 흘러 다닐 때 우리는 CsO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단순히 조잡하게 지층을 파괴하는 것으로는 CsO에 도달할 수 없다. 이거 싫어 저거 싫어 때쓰는 어린애. 혹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상대를 적으로 몰아붙여 화를 내는 나. 이는 전부 지층을 망가뜨리는 일에 불과하다. 여기서 새로운 CsO는 탄생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어설프게 혹은 성급하게 지층을 떠나지 말 것. 지층에 자리 잡은 다음, 먼저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지층화 되어 있는가. 이 지층은 어떤 배치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리고 이 배치물을 읽어내는 순간, 우리는 고른판 위에 서 있게 된다. 배치물이 고른판 위에 도표로 쫙 그려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 배치물을 넘어서서 욕망을 다르게 흘려보내는 시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불경 읽는 일요일] 강독세미나 8 file 수영 2015.03.05 2862
공지 [3.2개강] 불교n / 화엄경과 에티카 29 채운 2015.02.04 2810
50 안녕하세요 정현 2011.11.21 2115
49 10번째 고원 후기 입니다 성복 2011.11.18 2255
48 <천 개의 고원>11월 24일 공지 태람 2011.11.17 4446
47 <천 개의 고원> 열한 번째 고원 11월17일 공지 태람 2011.11.11 2124
46 <천 개의 고원>열번째 고원 11월 10일 공지 태람 2011.11.04 2610
45 네가지 적에 관해 (돈 후앙의 가르침 중) 인비 2011.11.03 3354
44 결석계입니다. 진영 2011.11.03 2000
43 결석계 정현 2011.11.03 1903
42 결석계 경은 2011.11.02 2137
41 [천고] 8고원 강의요약 file 인비 2011.10.30 4411
40 천개의 고원-아홉번째 고원 11월 3일 공지 태람 2011.10.28 3963
39 결석계 정은하 2011.10.27 2063
38 결석계 현숙 2011.10.27 1657
37 천개의 고원- 10월 27일 여덟번째 고원 공지 태람 2011.10.22 2250
36 결석계 정현 2011.10.20 1736
35 결석계 경은 2011.10.19 1780
34 6번째 고원 후기 성복 2011.10.19 2246
» 6번째 고원 후기 해자람 2011.10.16 1691
32 보조자료 남산강학원 2011.10.15 1833
31 10월 13일 후기입니다. 진영 2011.10.15 223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Nex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