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후기 2013. 10. 9.
광기의 역사 3부 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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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제대로 볼까?
자유의 선용에서부터 정리되지 않았는데, 뭘 어떻게 모르는지도 몰랐던 듯하다. 광기의 역사 텍스트 읽기가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붕붕 떠다니는 것이 모호하다. 조별 토론에서 가닥이 잡히는 듯 했음에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흠~ 읽기-토론-강의.. 계속되는 오독의 확인이라고 할까.. (아니 차라리 오독이라도 제대로 하라?....)
광기의 진실은 도대체 뭔가. 실체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내려고 하는 광기의 진실은 없다는 것. 어느 시대, 어느 상황, 어떤 경험에 의해 돌연 생겨난 것을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믿고 있다는 것이다.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 이것이다. 전도된 지식의 한계? 자연스럽게 당연히 받아들이고 수용해왔던 역사적 개념의 형성에 대한 문제제기? (사실 푸코를 공부하고자 마음먹었을 때는 그의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매혹 때문이었다. )실체하지 않은 광기의 진실을 찾아 헤매었던 아이러니! 어느 순간 수용과 배제에 의해 소외되었던 광인들이 역사적으로 소외된 자들이므로 분리, 감금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경험의 망각과 의식의 전도.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의식이 이렇게 구성되어 왔다는 사실이 놀랍고 한편으로 무섭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왜 착각과 오류는 반복이 되는 걸까. 시대마다 각기 그 때에 적합한 방법으로 실천하였던 것을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재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환원적 방법으로 내용파악을 하면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셨는데!) 고전주의시대 수용소에서 감금되었던 광인에게 18세기에는 새로운 자유가 부여된 것은 사실이므로(자유의 선용!) 그 때의 신화를 현재적 시각으로 인도주의적이지 않다, 진정한 의료실천이 아니다라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똑똑히 보아야 할 것은 이제 광기가 어떤 모습으로 새롭게 출현했는지 효과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성의 시대에 비정상적인 모습을 비이성으로 규정하면서 그 분할 지점에서 불쑥 생겨난 것이 광기의 출현이라 하였다. 이성이 배제된 상태, 이성의 이면, 비이성의 혼재로 그러한 부정성으로 광기는 실체를 부여받을 수 없었다. 근대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의해 분할되기 시작한 광기는 비이성이 아니라 문명의 산물로 규정되며 이성 밖으로 추방이 아니라 이성의 인간 내면에 잠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미친 사람을 어떻게 아는가
우리 주변에는 미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미친 자들에 대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직도 우리에게 광인과 정상인의 구분은 모호하다. 각종 테이타에 의한 지표를 가진 자들이 정신병동에 있다. 근대에 실증적으로 대상화된 광인들은 배제와 치료가 종합된 환경에 격리되었다. 튜크의 은거처의 신화는 광인에게 자연적인 공간에서, 종교적, 가족적 환경 속에서 자유로움을 준 것을 의미했고, 피넬은 수용소의 광인들이 시스템내에 도덕적, 사회적 유형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런 자유는 감시자의 절대성과 권위로 위계화된 시선에 의해 소외를 내면화시키고 그렇게 제압된 광기가 죄의식과 뒤엉킨 채 무의식으로 숨어들어가는 효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근대의 인간은 스스로 늘 주체화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인간성상실의 소외를 되풀이 경험한다.
이제 보편의식으로 내재화되는 광기는 누가 판단하는가. 이성이나 질서의 관점이 아니라 권력을 부여받은 근대시민으로서의 자유인들에 의해 스스로 판단된다. 인식에 의해 내적인 것으로 실증되면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죄의식을 내포한 불안한 인간의 모습. 근대적인간은 이렇게 탄생했고 프로이트는 19세기 정신의학의 길을 열어갔다.
그런데 전 자꾸 자유의 선용, 이란 말이 뭔가 역설적 뉘앙스인 것 같다는... 그래서 그렇구나! 무릎 쳤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