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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쿠야, 후기를 올리려고 <말과 사물>을 들여다보는데 왜 이렇게 새로운 거죠? 지난 강의가 불과 며칠 전이거늘 까마득히 먼 옛날인 것만 같다는... ㅠㅠ 아, 언어는 너무 어렵네요. 반복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듭니다. 


4장 말하기


 고전주의 시대 언어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뭔가를 생각(사고, 사유)한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표상을 갖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산'을 생각한다고 해봅시다. 산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략의 이미지가 있겠죠. 산봉우리가 있고 나무가 울창해서 푸르른 뭐 그런 대략의 모습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떠올리는 산과 저 아마존에 사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산, 척박한 사막지대에 사는 사람이 떠올리는 산을 다를 겁니다만 고전주의 시대의 사람들은 어쨌든 우리 머리 속의 산이라는 관념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구체적인 세계의 표상으로서의 관념을 사람들과 나누려면 언어가 필요합니다. 언어는 그 표상(사고, 사유, 생각)의 표상인 것이죠. 도식적으로 보면 '구체적인 세계의 표상으로서의 관념->이 관념들에 대한 표상으로서의 언어' 이렇게 됩니다. 언어는 이렇게 이중화된 재현의 과정을 거칩니다. (=표상의 표상, 재현의 재현) 물론 여기에는 '이것은 언어다'라는 언어 자체가 무언가를 재현한 것이라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어야겠죠. 그러니까 언어는 르네상스 시대처럼 세계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고, 바로 관념과 관계를 맺는다는 겁니다. 언어가 인식의 구조내에 들어온 것이죠. 언어를 분석한다는 것은 이 관념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사고, 사유를 분석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생각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의 분석이 곧 사고(정신)의 분석이며, 세계를 표상하고 있는 사고를 분석하면 세계를 분석할 수 있다.' 이렇게 나아가는 겁니다. 언어는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투명합니다.  

 

 이렇게 고전주의 시대의 언어는 사물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어떤 사고를 재현한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언제든 의미가 해석될 수 있는 말의 덩어리들, 표상, 재현만이 남습니다. 즉 담론성을 갖게 되는 겁니다. 말들만 남는다는 소립니다. 재현만 남는다, 말들만 남는다, 담론성만 남는다, 다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고전주의 시대는 비평이 중요합니다. 비평은 텍스트를 분석하는 작업입니다. 그야말로 텍스트를 갈기갈기 찢습니다. 언어를 분석하는 것이죠. 왜 분석하겠습니까? 언어를 분석하면 그 사람의 사고, 생각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분석하면 그 사람의 사고가 합리적인가 아닌가 정합적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는 거죠. 이성적인가 미쳤는가도 알 수 있겠죠. 말에 언어에 그대로 사고가 드러난다는 생각. 그러니까 이 시대의 언어에는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언어에 가시적으로 생각이 훤히 드러난다는 거죠. 지금 우리 시대는 그렇지 않죠.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도대체 그 말에 담긴 뜻이 뭔가를 생각합니다. 글도 마찬가집니다. 그 깊은 의미, 보이지 않는 행간의 뜻을 파악하고자 애를 씁니다. 고전주의 시대와는 명백히 다릅니다.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의 재현의 에피스테메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일반문법'이라고 말합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아주 특징적인 모습이라는 거죠. 일반문법은 '언어를 분석하면 사고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언어의 문법 규칙을 파악함으로써 사고의 질서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일반문법입니다. 일반문법의 정식 명칭이 '일반이성문법'인 것은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문법 탐구는 결국은 이성에 대한 탐구인 것! 실제로 일반문법을 보면 어떤 동사는 어떤 사고를 표현한다, 어떤 품사는 어떤 생각을 표현한다 뭐 이렇게 되어 있다네요. 지금의 우리의 문법과는 많이 다르죠.

 일반문법의 '일반'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일반문법에서는 언어들 사이를 비교하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언어는 언어의 형식만 다를 뿐이지 동일한 사고의 논리를 반영(reflection)하고 있습니다. 즉 '언어는 사고를 재현한다' 즉 '담론의 재현 기능을 한다'는 것이죠. 이 재현은 물론 마구잡이로 이루어지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는데 그 언어의 질서가 문법입니다. 언어는 사고를 재현하는 것이니까 언어의 질서는 곧 사고의 질서입니다. 그래서 사고의 질서가 문법인 셈이죠. 암튼 모든 언어는 형식은 다르지만 어떤 언어든 생각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문법'이라는 말이 붙은 거라는군요.

 언어의 질서->사고의 질서. 그래서 "일반문법은 정신에 내재하는 철학"이라고 푸코는 말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말해 봅니다. "언어는 사고의 재현이다." 그런데 언어가 사고를 재현할 때, '언어라는 재현'과 '사고라는 재현'이 연관을 맺는 방식에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뭔 소린지 몰라서 몹시도 헤맸던 바로 그 부분이죠. 속성(동사이론), 분절, 파생, 지시(지칭)이 바로 그 네가지입니다. 언어와 사고가 관계를 맺는 방식 네 가지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속성(동사이론): 우리의 생각을 언어로 재현할 때 관념의 덩어리들을 이어야겠죠. 우리가 '꽃' '예쁨' 이렇게 단어로 나열하지 않잖아요? '꽃이 예쁘다' 이렇게 언어화 하죠. 관념은 기본적으로 명사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명명하는 것이 명사니까요. '꽃' '예쁨'이라고 명명한 것을 이어주면 의미를 갖는 명제가 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be동사인 에트르 동사입니다. '꽃이 예쁘다'는 '꽃이 예쁨이다'처럼 '꽃'과 '예쁨' 두가지 표상을 이어놓은 것입니다. 암튼 언어가 사고를 쫓아가면서 be동사로 표상과 표상을 연결하는 것, 그래서 명제를 만드는 것. 이게 바로 언어와 사고의 관계 방식 중 속성이라는 겁니다.


-분절: 분절은 간단합니다. 언어는 사고를 분절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상이한 다른 단어는 다른 것을 표상한다는 겁니다. '사과'는 사과라는 대상만을 표상한다는 거죠. 바나나를 '사과'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언어에는 하나의 재현 내용만이 연결된다. 언어와 내용이 1:1로 대응한다. 이것이 분절입니다.


-지시(지칭): 지시는, 어떤 언어는 바로 행위와 관련을 맺는것이 있다는 겁니다. 언어는 세계를 분절하고 사고를 분절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언어와 같이 언어적 기능을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함성, 몸짓(행위의 언어)이 바로 그것이죠. 누군가 머리를 때렸다고 칩시다. 아파서 '악!'하고 소리를 지르겠죠. '악!'소리 자체는 언어가 아닙니다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디를 맞아서 아플 때 저런 비명소리를 지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악!'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언어로 기능합니다. 아픔을 나타내는 표상이 되는 거죠. 아픔이라는 상황을 지시하는 훌륭한 언어가 됩니다. 이것은 자연적 반응에서 나온 것으로 자연에 기원을 둔 언어입니다. 언어를 이렇게 사건들에 대한 자연적인 인간의 반응에서부터 시작하였다고 보고 언어의 기원을 쫓는 것이 어근입니다. 


-파생: 그럼 어근은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가하면 파생을 통해서입니다. 세상을 무한하지만 언어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유한한 언어를 가지고 어떻게 무한한 세상을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기겠죠. 하지만 걱정없습니다. 분명 하나의 언어는 하나의 표상을 재현합니다만 파생을 통해 어근을 변형 확장시키면 관념들은 무한히 늘어날 테니까요.


 위의 네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언어사변형의 중앙에 명명하기, 명사가 있습니다. 고전주의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명사입니다. 명명하기! 어떻게 하면 투명하게 사고를 재현할 것인가. 고전주의 시대는 언어로 세계의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각자의 자리를 지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사람의 합리적 이성속에 세상을 위치시키고자 했던 시대가 17~18세기 고전주의 시대입니다. 어마어마합니다.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요. 



5 분류하기 


 이제는 언어의 영역이 아니라 자연물이라는 지식의 영역으로 가보겠습니다. 고전주의 시대 에피스테메의 기반 위에서 자연물의 영역은 어떻게 질서지워졌을까요? 

 고전주의 시대에는 생물학이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생물학의 대상은 생명인데 이 시대는 생명이라는 인식이 없었으니까요.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들이 대상으로 삼은 건 보이는 생명체였습니다. 자연사는 가시적인 것을 대상으로 합니다. 가시적인 자연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명명해서 배치하려는 기획, 이것이 자연사입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자연사라고 하는 건 자연의 거대한 가시성의 장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볼 수 있고 관찰할 수 있고 명명할 수 있는 것으로 가득찬 세계가 자연입니다. 그들이 보이는 것에 마구잡이로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패턴을 가지고 자연을 봤습니다. 어떤 틀 안에서 봤다는 거죠. 이 틀, 다시 말해 가시적인 것을 제한하는 틀이 바로 구조입니다. 이 틀은 수, 모양, 비율, 상황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이 기준으로 사물을 명명했습니다.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 자연학이 특권을 가진 것은 자연학이 발달해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렇게 사물을 명명하고 배치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는 거죠. 그때에는 사물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 지식이었으니까요. 동일성과 차이를 가지고 분석하고 비교해서 이름붙이고 표 안에 집어넣는 짓 따위는 그래서 하지 않은 것입니다. 전혀 다른 인식 조건 안에 있으니 특권을 차지하는 앎도 이렇게 다른 겁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자연이란 연속성을 갖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가는 연속성 말이죠. 네 발 동물과 사람사이에 원숭이가 있는 것처럼 또 그 무엇과 무엇사이에 동일성과 차이에 따라 생명체들이 채워 넣어져 배열되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시간은 자연의 외부적인 변수일 뿐이었다네요. 만약 무엇과 무엇에 큰 단절이 있다고 하면 그런 급격한 변화는 지진이나 홍수 같은 것이 갑자기 개입되어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이처럼 단순한 외적인 위협이었습니다. 생물체에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죠. 그래서 진화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관찰한 것을 정확하게 명명해서 배치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습니다. 자연사는 가시성의 장이라고 했습니다. 자연사의 기획은 가시적인 것을 배치하려는 기획이라고요. 르네상스 시대에는 관찰, 자료, 이야기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고전주의 시대에는 관찰이 중요해집니다. 당연히 가시화할 수 없는 것은 배제됩니다. 신화나 이야기는 기껏해야 부록정도로만 취급될 뿐입니다. 그래서 푸코가 재밌는 말을 했습니다. "르네상스는 무대의 시대, 고전주의 시대는 목록의 시대"라구요. 르네상스 시대는 보이는 것을 다 늘어놓았었죠. '뱀과 용의 역사'에 보면 요리법에서 신화까지 있었던 것 기억나시죠? 고전주의 시대는 관찰을 토대로 명명하여 표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두 시대의 차이는 언어의 공간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존재와 기호의 관계가 달라진 것. 그래서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도 이렇게 다릅니다.


 고전주의 시대는 시각이 특권화된 시기입니다만 모든 것을 본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시각이 특권화된 시기이고 관찰의 시기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것만을 봤습니다. "관찰한다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 사물을 체계적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수, 모양, 비율, 상황 이 네가지를 기준으로만 보고 명명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배제되었습니다. 이런 제한성때문에 현미경과 같은 광학도구의 사용이 중요하게 된 겁니다. 이 시대가 관찰의 시대라는 건 모든 것에 대한 관찰과 세심한 관찰이 이루졌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것만을 자세히 보려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잘 보다 보니 더 잘 보기 위해 현미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거죠. 

 자연사에서 기억할 것은 자연사는 가시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언어로 재현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했다는 것. 그러므로 고전주의 시대의 식물원과 표본실은 이 재현이라는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가시화 시켜주는 공간에 다름아니었습니다.


휴~~정리가 잘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말과 사물>은 언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일 듯 합니다.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고 해야겠어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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