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3 18:52

[수업 후기]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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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세미나 시간에 우리를 멘붕에 빠뜨린, 수업을 들으면서 세미나 때 함께 한 이야기가 완전 헛다리 짚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말과 사물>의 첫 번째 수업 후기입니다-_-

 

  일단 <말과 사물>을 관통하는 질문은 “근대성이란 무엇인가?”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 푸코는 2장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에피스테메를(이건 다시 안 나온다네요), 그리고 3장에서는 무시무시한! 고전주의 시대 에피스테메를 살핍니다. 도대체 왜 알드로반디는 뱀의 역사를 다루며 요리와 형용사와 신화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왜 이 시대에 소우주 개념이 요청되었는가! 이에 답하는 것이 흥미진진한 르네상스 시대의 에피스테메이고, 왜 데카르트가 이 시대를 오류의 시대로 간주하는지, 문법이면 그냥 문법이지 왜 일반 이성의 문법인지에 답하는 것이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라고 하네요. 고전주의 시대는 여전히 아리까리한 면이 있습니다만, 앞으로 4, 5, 6장에 걸쳐 계속 이에 대한 강론이 펼쳐진다고 하니 너무 상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1장 ‘시녀들’로 돌아가면 좀 잡힐 거라니까ㅜ

 

  자, 지난 시간 핵심어는 ‘인식’과 ‘재현’입니다!(우리 조에서는 애써 이를 외면했지만;)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번 차근차근 되짚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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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세계의 산문

  이 시기는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갈게요. 르네상스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유사성이라는 건 이제 다들 아시죠? 닮음이 지식을 구축하던 시대랍니다. 하지만 뭘 가지고 닮았는지 아닌지를 알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게 있어야죠. 그래서! 표징이 중요합니다. 표징을 찾는 것, 이것이 곧 앎이 되는 것이죠. 박학점술은 그래서 지금 시대와 다르게 이 시대의 앎의 형식이 됩니다. 드넓은 세계의 너른 표징을 찾는 거죠. 그런데 이러다 보면 앎의 영역은 지극히 무한해지지 않겠어요? 유사성을 찾다 보면 세계도 앎도 끝이 없어 연쇄되며 펼쳐질 겁니다. 이에 한계선을 부여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소우주 개념. 보통 소우주는 인간이라는 소우주를 통해 대우주인 신에 대한 앎에 도달한다는 개념으로 이해됩니다만, 푸코는 여기서 소우주 개념이 왜 요청되었는지를 인식론적 배치를 통해 살피는 거죠.

하지만 사물과 사물들 사이만 닮은 게 아니죠. 언어 역시 세계의 일부로서 사물과 닮아 있습니다. 원전이 되는 텍스트는 곧 세계이고, 따라서 이와 닮은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것이 요청됩니다. 이게 곧 주석 작업이죠. 문자의 특권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물질성과 가시성을 담지한 언어, 그것은 곧 기록된 문자니까요. 따라서 여러 모로 이 시대의 언어는 불투명했다 할 수 있습니다. 유사성은 결코 아무나에게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이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거죠. 사물과 언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자, 세계의 비의를 탐구하는 자, 그러니까 사제들이 앎의 담지자가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기이해 보이는, 뷔퐁도 이해하지 못한 알드로반디의 서술. 그는 우리보다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지도, 덜 합리적이거나 덜 정확한 게 아니었다는 게 푸코의 주장입니다. 그의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우리와 달랐다는 것뿐. 이 시대의 자연은 곧 “말과 표지, 이야기와 특성, 담론과 형태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조직”(77)이라고. 따라서 알드로반디가 들리는 모든 것을 ‘뱀’이라는 기호와 함께 놓는 것은 완전 자연스러운 일인 거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사성의 시대에 지식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와 관련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말과 사물의 동일 지평을 복원하는 게 관건이 됩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알드로반디 식 역사 기술의 충실함을 느낄 수 있는 거겠죠.

 

  아무튼 르네상스 시대에 드러난 언어의 존재성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망각되고, 이후 근대에 다시 출현한다네요. 뭐 이건 2부에서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될 듯 하고요. 아래에서는 고전주의 시대와 어떤 단절 지점이 있는지를 봅시다.

 

  3장 재현하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 사이의 균열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게 푸코의 생각입니다. 대체 두 시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알 수 없죠-_-; 푸코가 여기서 보려는 것은 이전 시대와의 분명한 단절 지점이 고전주의 시대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언어의 독자성이 상실되었다는 점, 사물을 대신해 도표로 채워진 세계가 되었다는 점, 언어의 공간이 인간의 인식 내부에, 그러니까 관념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이 그것이죠. 이 세 가지가 다 맞물려 있다는 것을 차차 살펴보기로 하고요……. 암튼, 3장에서 중요한 것은 기호와 재현의 문제입니다. 근대가 인간학의 시대라면 고전주의는 언어학의 시대라고 하네요. 기호를 둘러싸고 세 가지 앎의 영역, 일반 문법/자연사/부의 분석이 이뤄지는 모습을 다음 시간부터 보게 될 테니, 염두에 두도록 하죠.

 

  지난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이룬 유사성에 대해 비판한 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 철학자 두 명은? 네, 베이컨과 데카르트이죠. 데카르트는 닮음이란 곧 오류라고 파악, 비교 행위를 통해 닮음을 거부합니다. 우리 상식대로 비교란 곧 기준점을 세우고 척도를 통해 순서대로 대상들을 나열하는 거죠. 바로 이겁니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척도를 놓고 동일성과 차이에 따라 사물을 배열하지요. 이렇게 하여 질서화시키는 것, 이것이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고전주의 시대 인식의 기반이 되는 것은 바로 동일성과 차이! 동일성과 차이에 따라 사물을 도표화시키는 것이 고전주의의 세계!

 

  그렇기에 관건이 되는 것은 더 이상 (르네상스 시대에)독해 대상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 됩니다. 우리 인식이 동일성과 차이에 의거해 세계를 도표화할 수 있게 된 거니까요. 이제 세계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도표화됩니다. 이걸 아는 게 바로 앎이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앎이란 ‘표징 찾기’였죠. 유비 관계를 통해 형성된 위계 대신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에는 분석을 통한 열거와 식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박학이나 점술이 앎이 될 수가 없지요. 내 바깥에, 이전부터 본질 혹은 진실이 있다? 언어가 세계의 일부이고 표징이다? 언어는 불투명하다? 아니죠, 언어는 이제 투명하고 중립적입니다. 언어는 마치 유리창처럼 매개 역할을 할 뿐이죠. 르네상스 시대와 달리 언어는 더 이상 사물이 아니고 그저 대리 역할을 해낼 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게 무슨 말인지 아리송한 게 사실이에요-_- 그러니 이쯤해서 기호와 재현(=표상)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회의를 통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전제? 이성의 질서지요. 이성적 존재는 질서를, 사유의 질서를 지닙니다. 대상을 판별하고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이성의 능력이라는 거죠. 그런데 판별하고 추론하는 데 필요한 것, 그것이 바로 기호라는 사실! 르네상스 시대 기호가 외부에 드러난 표징이었다면, 고전주의 시대 기호가 인식 내부에 놓인다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기호의 질서 그것은 곧 인간 정신의 질서입니다. 관념들의 질서죠. 따라서 생각하는 나란 곧 표상 질서를 가진 나입니다. 생각하는 나는 사물 및 외부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고로 정신(=이성)을 통해 세계는 표상 가능해집니다. <포르 루아얄의 논리(일반이성문법)>에서도 우리는 정신의 일반성을 가진 자라면 기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를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문법을 이해할 수 있다. 설사 서로 다른 언어일지라도 어떤 언어에도 가능한 보편성이 존재한다. 이성의 문법이 곧 언어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에 표징으로 존재하던 기호가 허락된 몇 사람들에게만 읽힐 수 있던 시대와 달리 고전주의 시대 기호는 투명해집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기호의 이론은 완전히 별개인 세 가지 요소, 즉 표시되는 것, 표시하는 것, 후자에서 전자의 표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전제로 했다.”(110) 하지만 고전주의 시대, 더 이상 사물의 질서가 따로 이를 보장하지 않아도 되게끔 변한 거지요. 이제 기호는 투명한 유리창입니다. 기호가, 표상되는 내용과 표상으로서의 기호 두 가지를 다 내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이중화된 재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호는 그 자체로 이중화되는 재현입니다. “재현은 지시이자 동시에 출현이며, 대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자 자기 발현이기도 하다.”(111) 예컨대 지도 속에 표기된 ♨ — 이 기호를 생각해봅시다. 이 기호는 물론 약속된 것처럼 ‘온천’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이 기호가 온천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지도 위에 이 기호가 기입되어야겠지요. 모든 기호는 이렇듯 자신이 재현되면서, 이어서 다른 것을 재현하게 됩니다. 기호는 재현되고 재현합니다. 인간의 인식을 통해 그렇게 됩니다. 따라서 고전주의 시대 기호는 투명하게 매개 역할을 수행합니다. 재현된 기호와 그것이 재현하는 사물의 관념이 기호를 통해 곧바로 매개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데카르트의 말처럼 생각하는 내가 곧 표상질서를 가진 존재라는 전제에서 가능해진다는 거죠.

 

  조별 세미나를 할 때는 마테시스와 탁시노미아에 대해 꽤 길게 이야기했는데,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습니다. 결국 도표 얘기였다는 반전. 볼드체라고 다 중요한 건 아니라는 반전. >_< 암튼… 마지막으로 외워둡시다. 고전주의 시대 에피스테메는 동일성과 차이의 에피스테메. 도표화된 세계. 기호는 인식 내부에서. 어떤 사물도 인간이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 언어의 투명성. 이중화된 재현.

 

  다음 시간에는 고전주의 시대의 세 가지의 핵심적 앎의 영역 중 일반 문법(말하기) & 자연사(분류하기)를 보게 됩니다. 3장을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열심히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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