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1 17:15

0618 수업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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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후기.hwp  


<안전, 영토, 인구>의 또 다른 제목, 푸코가 염두에 둔 제목이 통치성의 역사이었다는 말은 그의 강의 도중에도 등장하지요. 나는 통치성의 역사를 보고자 했다그러니 우리가 파악해야 할 건 일단 통치, 혹은 통치성의 의미. 그리고 통치성의 역사를 통해 푸코가 보고자 했던 것이겠죠. 지난 시간에 주로 이야기 된 것은 18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통치성의 의미, 그리고 이의 단초가 된 그리스도교 사목 권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여길 제대로 정리해두어야 이어서 나올 국가 이성을 정리할 수 있겠죠.

앞에 공지에서도 언급된 이야기입니다만 푸코는 국가를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말자고, 통치를 통해 유지되는 현 국가 체제 국가의 통치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공격하거나 빼앗아 와야 할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국가의 통치 테크놀로지를 분석할 것.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지배와 구분되는 권력 개념을 사유할 수 있게 된답니다.

그럼 통치란 무엇인가? 강의 초반에 읽은 토마스 렘케의 짧은 글에 이런 문장이 있었지요. “푸코에 따르면 통치는 통솔, 정확히는 행실의 통솔로 규정되며 따라서 자아의 통치로부터 타자의 통치까지 포괄한다. 대체로, 푸코는 통치성의 역사를 통해 근대 주권 국가와 근대의 자율적 개인이 어떻게 서로의 출현을 상호적으로 결정했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조금 뒤에는 이런 문장이 있군요. “푸코는 자신을 통제하는 자율적인 개인의 능력과 이 능력의 정치적 지배 방식 및 경제적 착취 방식에 연결되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통치성을 도입했다.” 그러니까 푸코의 통치 개념은 두 가지 테크놀로지를 연결합니다. 자아의 테크놀로지와 지배의 테크놀로지. 혹은 주체의 구성과 국가의 형성. 개인의 능력은 신장하지만, 하여 개인은 능동적으로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정치와 경제 시스템에 개개인이 복종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요컨대 능동적이며 복종하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 푸코는 이를 곧 자기 시대(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시대) 특유의 통치성으로 본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봐야 할 건 시대의 정치적 합리성이랍니다. 억압과 강제를 때려 박아 대중을 관리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사실, 개개인을 관리하기 위해 권력은 합리적인 관리와 지도, 조형화 방식을 취한다는 사실.

18세기 특유의 통치성의 조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지점이 어디인가. 이에 대해 푸코는 16세기를 지목합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전편에서 주장하는 군주의 수완과 역량을 소위 반마키아벨리문헌들은 통치술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는 거죠. 마키아벨리즘과 반마키아벨리즘은 그럼 뭐가 다를까요. 하나, 군주의 단독성과 외재성, 초월성을 주장한 마키아벨리와 달리 반마키아벨리즘은 통치자와 통치의 실천이 복수적이라고 말합니다. 통치는 가정에서 부모가 하기도, 수도원에서 신부가 하기도 하니까요. 국가 통치는 복수적 통치 중 하나라는 거죠. 그러니 초월적이지도 않고, 국가에 대해 내재적 관계에 있게 됩니다. 이미 가정과 수도원을 이야기했습니다만, 통치의 특유한 점은 주권과 달리 연속적이라는 겁니다. 국가를 통치하길 원하는 자는 자신을 통치할 줄 알아야 하고 가족을 통치할 줄 알아야 하죠. 반대로 개인의 품행을 관리하고 가족의 경제를 관리함으로써만 올바른 국가 통치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內治) 여기에서 푸코는 또 하나의 주장을 펼치지요. 16세기, 더 정확히는 18세기 통치란 곧 경제적 통치랍니다. 이전까지 가족의 통치로 여겨진 경제 개념이 내치와 더불어 국가 수준으로 확장된 거죠. 케네는 이렇게 말했다네요. 훌륭한 통치? 그건 경제적 통치다. , 여기서 우리는 통치성의 핵심을 발견합니다. “개별적으로, 동시에 전체적으로!” 이제 한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개인과 가정의 감시 및 통제와 더불어 주민 전체의 감시 및 통제 전반을 의미하게 됩니다. 푸코는 이를 두고 사물의 배치를 통치한다고 표현하는군요. 통치는 주권처럼 영토와 그 안의 거주민을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통치의 대상은 사물과 인간으로 구성된 복합체가 됩니다. 가령 선장이라면 배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배의 안전 상태와 실려 있는 화물 그리고 일하는 선원들을, 암초와 폭풍우 같은 변수들 전반을 고려해 책임져야 한다는 거죠. 국가의 통치 역시 사물을 가장 안전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인바, 부를 증식하고 지키는 것이 그 핵심이 된답니다. 이처럼 통치란 곧 흐름의 관리입니다. 한 번 더 반복하죠. 주권 권력이 영토를 대상으로 한 것과 달리 통치는 사물을 대상으로 합니다. 사물의 배치, 흐름의 관리, 이것이 통치입니다.

그런데 사실 18세기 이전까지는 여전히 공고한 주권의 틀과 일관되지 못한 가족 모델 덕에 통치술이 충분히 확립되지 못했답니다. (155페이지부터 이어지는 중상주의 케이스를 참조하세요.) 그럼 통치술의 장애물은 어떻게 제거되었는가? 여기에서 포인트 중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인구. “주권이라는 법률적 틀을 넘어서 통치의 문제를 사유하고, 고찰하고, 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인구라는 특유의 문제가 지각됐다는 거죠. 당시까지 주권 권력 하에 작동하던 통계학이 차츰차츰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나? 인구의 고유한 규칙성입니다. “사망자 수, 병자 수, 사고의 규칙성 등이 그것이죠. 그런데 이 인구는 가족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더라는 겁니다. 예컨대 대역병, 풍토병의 만연, 노동과 부의 연쇄 상승등은 가족 현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거죠. , 이렇게 하여 가족이라는 틀로 환원 불가능한 인구의 특수성이 등장합니다. 하여 이제부터 가족은 인구의 한 요소, 인구의 통치를 위한 도구가 되고(<비정상인들> 기억나시죠? 부르주아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를 어떻게 관리했고, 부르주아 가정이 어떻게 의학 권력의 거점이 되었는가), 인구 그 자체가 통치의 도구이자 동시에 최종 목표가 됩니다. <말과 사물>에서 보았듯 정치경제학의 출발도 인구의 등장에서부터 시작!

이 같은 설명 끝에 푸코는 염려스러웠던지 주권 권력과 규율 권력과 통치성의 순차적 배턴 터치를 생각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제 주권과 규율의 문제는 다른 관점에서 중요해졌다고 봐야 한다는 거죠. 차라리 트라이앵글을 이미지화합시다. “주권, 규율, 통치적 관리라는 삼각형의 핵심 표적은 인구이고, 핵심 메커니즘은 안전장치다, 이렇게.

뭔가 오늘 유난히 길어지는 기분인데, 이제 사목 들어갑니다; 푸코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문헌들을 들여다봤더니 통치라는 단어가 참 다양한 의미로 쓰였는데, 하나같이 대상이 국가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거슬러 올라가봤겠죠. 그리고 발견한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을 통치한다는 관념이 없었다, 하지만 동방에서는 있더라. 도시국가인 그리스에서는 일방적 권력 관계가 없고, 정치를 하는 이들이 도시국가 속의 개개인을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일도 없더라는 겁니다. 반면 동방, 특히 히브리인들에게서 그는 목자와 가축 무리의 관계로 표상되는 신과 그 백성의 관계, 하나의 비가역적 권력 관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통치성의 단초를 발견하게 된 거죠. “사목은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이고 바로 이 측면에서 통치성의 기원, 통치성이 형성되는 지점, 통치성이 결정화되는 지점, 통치성이 발아되는 지점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통치성이 16세기 말과 17~18세기에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 근대 국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통치성이 계산되고 숙고된 정치적 실천이 됐을 때에야 근대 국가가 탄생하는 듯한데, 그리스도교의 사목은 이 절차의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히브리인들의 사목에서 보이는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 이동하거나 움직이는 무리에게 행사된다. , 善行을 위해 권력이 존재한다. , 개인화한다. 세 번째가 특히 주목할 만한 것 같습니다. 목자는 모든 양을 이끌고 보살핍니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하나의 양들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여기서 다시 나오네요. 개별적으로, 동시에 전체적으로. “목동은 전체와 각자를 동시에 주시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동시에 개별적으로 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목과 관련된 권력기술, 그리고 제가 언급한 바 있는 인구테크놀로지에서 재정비되는 이른바 근대의 권력기술 모두가 맞닥뜨리게 될 중대한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체적인 동시에 개별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사목권력은 영토가 아니라 무리에 대해 행사되고, 어떤 목표에 이르기 위한 권력이며, 마지막으로 전체와 개체를 동시에 목표로 하는 권력입니다. 이 같은 사목권력이 서구세계에 도입된 데 매개 역할을 해낸 것이 그리스도교 교회랍니다. 그리스도교 교회를 통해 장차 서구 문명은 자기 자신을 양떼 속의 한 마리 양으로 여기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줄 목자의 구원을 갈구하도록배우게 된다고…….

, 물론 우리는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그리고 피타고라스학파의 전통에서 희소하게나마 목자 은유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플라톤의 텍스트에서는 정말 많이 언급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결국 플라톤의 텍스트에서 정치란 직조 모델을 따릅니다. 정치인? 그건 직조공이랍니다. 목자와 달리 정치인은 무리를 총괄적으로 돌보지 않습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이란 그저 방추를 가지고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공동체로 결합시키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목이 있었다 해도 그리스에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활동이었다고 푸코는 말하네요. 도시국가의 목자는 일종의 의사나 체육교사(제리 언니 표현으로는 트레이너;)일 뿐이라고. 나 히브리인들, 특히 교회 성립 이후 히브리인들에게 이 주제는 완전 중요하죠. 통치성의 진정한 모델이 되어준 사목은 그리스도교 교회 성립 이후, 기원후 3세기경 출현해 18세기까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합니다. 역사상 끊임없이 사목권력과 관련된 투쟁들이 발생했습니다만, 그 어떤 것도 사목을 제거하지 못했고 오히려 사목을 강화했죠.(8강에 나오는 대항품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사목권력의 형성과 재조직화를 뒷받침하는 것은 사목권력에 대한 저항과 거부라는 거.)

푸코가 3세기부터 6세기 사이에 신자 공동체와 교회에서의 사목에 대해 쓴 텍스트들을 봤더니(공부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겠죠, ) 사목의 특성이 다음과 같더랍니다. 사목은 개인과 공동체를 구원으로 인도한다. 사목은 명령과 계율, 을 따르는지 신자들을 감시한다. , 사목은 구원을 위한 진실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푸코 왈, 그리스도교 사목을 이런 차원에서 정리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건 어떤 권력이든, 심지어 그리스의 폴리스를 운영하는 행정관도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여 푸코는 그리스도교 사목의 특성을 다른 수준에서 보자고 제안하지요.(채운쌤에 따르면 여기가 핵심!)

하나, 공덕과 죄과의 새로운 관계. 목자는 모든 양 하나하나에 대해 책임을 지고(분석적 책임), 양들을 개별적으로 감시하면서 그들의 행위를 자신과 동일시합니다(즉각적 전이의 원칙). 목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함으로써 구원될 수 있으며(희생의 반전), 마지막으로 양들의 약함이 목자의 구원을, 목자의 약함이 양들의 교화의 절차가 됩니다.(교대적 대응의 원칙) 뭔가 말이 복잡한 듯한데, 아무튼 이제 구원은 신이 운용하는 세밀한 경제체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럼 이 경제체제란 게 뭐냐, 그게 바로 공덕과 죄과의 기묘한 교환인 듯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세세히 관리하고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의 행위상의 공덕과 죄과를 함께 나누는 존재인 거죠. 다시 말해 목자는 아주 열심히 관리해야 합니다, 한 마리 한 마리 양들의 공덕과 죄과를.

, 절대적 복종. 목자는 법관이 아니라 차라리 의사에 가깝습니다. 그는 각각의 경우를 개별적으로 다루면서 그들의 영혼과 질병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규범화가 아니라)개인화를 도모합니다. “목자는 각각의 양을 개별적으로 돌보는 자이고,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필요한 배려를 베풀어주며 각자의 안녕을 위해 불침번을 서는 자입니다. 이렇게 하여 목자와 양떼 간의 전면적 의존관계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법의 외부에서 개인과 개인 간에 맺는 복종 관계이며, 도무지 끝도 없이 삶 전체가 코드화되는 절차이자, ‘자기 포기라는 그리스도교 식 아파테이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양떼 속의 개별적 양들은 물론이거니와 목자조차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거 깝깝하군요)

, 숨겨진 진실의 생산. 목자는 사목적 교육을 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일상 안에서 품행 전반을 감시하고 단속하고 매순간 인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하여 양떼에 대한 항구적 지식을 구축해야 하고요. 또 한편으로 목자는 양심지도를 수행합니다. 그것은 항구적으로 이어져야 할 하나의 의무가 되지요. 양심을 점검함으로써 타자에 대한 개개인의 의존도는 높아지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일정한 진실의 담론을 만들어내게된답니다.

, 이상이 그리스도교의 핵심입니다. 공덕과 죄과의 새로운 관계, 절대적 복종, 그리고 숨겨진 진실의 생산. 푸코는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교 사목의 특수한 개인화 방식 세 가지를 발견하는 거지요. 분석적 판별에 의한 개인화, 종속화에 의한 개인화, 그리고 숨겨진 진실의 생산에 의한 개인화. “그리스도교 사목의 역사는 서구가 밟아온 개인화 절차의 역사 전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특수한 주체는 그야말로 근대 서구의 전형적 주체이자 통치성의 단초 역할을 하는 거지요. 여기서 무시무시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개인의 능동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 여기에서 우리는 앞서 말한 통치성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봐도 좋겠습니다. 개인에게 파고듦으로써 지배하기, 바로 그것이 통치성의 특성이었지요.

 

오늘 정리가 좀 길었습니다. 아무튼 핵심은 그리스도교 사목의 세 가지 특성과 이를 통해 보는 통치성! 이어 다음 시간에는 18세기 통치성 및 국가이성 개념을 잘 정리해봅시다.

 

  • 공가 2014.06.22 19:27

    와~~ 정리 한번 끝내주심. 수업 중간에 빠져나와야 해서, 다음에 못따라 가면 어쩌나 했는데... 앞으로도 이런 정리 완전 환영~~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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