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2 12:35

10월 29일 후기

조회 수 10398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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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의 텍스트는 참 희안합니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접속이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죠. 얼핏 잘못 읽으면 빈정 상할 수 있는 '천재'에 대한 발언이 특히 그렇습니다. 니체는 신을 추방한 자리에 천재라는 또 다른 메시아를 불러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를 해방키시고 구원할 존재로서의 천재 말이죠. 하니 독재자가 갖다 쓰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의문이 들더군요. 신에 의한 구원과 천재에 의한 구원이 뭐가 다르지? 여전히 타력에 의한 구원이라는 점에서 우리같은 범인들은 수동성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하구요. 그러나! 니체는, 천재의 노예, 천재의 하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천재가 되라', '천재가 되기를 욕망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읽은 <반시대적 고찰III -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의 교육비판, 학자비판은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재적으로 읽히더군요. 마치 니체가 현대로 날아와 지금 우리의 교육현실을 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는... - -;; 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독일에서 교육이란, 지식을 설명하고 전수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죠,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에게 그 앎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었습니다. 그런데 니체는 교육을 전혀 다르게 설명합니다. 교육이란, 교양이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구요. 뭐시라~ 해방이라고!!! 니체가 <반시대적 고찰> 전편들에서 신랄하게 까고 있는 속물교양, 다시 말해 지식을 골동품 수집하듯 차곡차곡 모아 쌓으며 고상한 척, 아는 척은 있는대로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평안을 뒤흔드는 새로운 사상과 예술은 가차없이 밟아 죽이는 무리들이 당시 독일 교육에 의해 양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 유능하고 말 잘듣는 공산품같은 노동자의 생산이 교육의 목적이었기 때문이죠. 개성도 능력도 모두 고르게 평준화 하는 것이 목표인 교육은 삐죽이 솟아 있는 것들은 가차없이 잘라버립니다. 

   이런 교육 하에 우리는 자연이 만들어낸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나'를 잃어버립니다. 물론 니체가 말하는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 숲 이런 자연 아닙니다. 생성만이 있는, 생성으로서의 넘쳐나는 힘 같은 거라고 하는군요.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힘인 자연! 우리 몸은 세포가 계속해서 죽고 새로 생성되면서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생성을 쉬지 않죠. 자연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풍속과 의견 뒤에 숨는다"(391)고요. 왜일까요? 그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쉽기 때문이죠. 조금의 에너지도 들지 않아요, 저렇게 살면. 그걸 니체는 나태하다고 표현합니다. radical하다는 말은 자기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을 말한다는군요. 자기를 파고 파고 들어가 바닥을 볼 때, 그래서 한 번 죽어 자기 세계가 무너질 때 새로운 세계가 눈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급진적이라는 겁니다. 네가 파 본 그 바닥이 정말 진짜 바닥이 맞느냐고 니체가 묻는데 참 찔리고 가슴이 무너지더군요. 우리는 그 정도까지 자기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인습과 사회통념을 요구하는 이웃과 대중에 우리는 매번 굴복하죠. 그들과 맞서기 두려우니까요. 니체는 우리가 "공포와 의견의 사슬"에 묶여 있는 한 행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고 좋다고 하는 삶의 양식대로 일률적으로 살기에 우리는 너무 다른 존재들이지 않나요? 그런데도 물에 둥둥 떠가는 꽃잎 마냥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생각에 둥둥 떠가고 있죠. 

   니체는 자신을 묶고 있는 인습과 의견의 사슬을 풀자는 것이고 유일무이한 자기 자신에게 반(反)해서 편안해지려는 것을 멈추자고 외칩니다. 그것이 바로 천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재는 남들 보다 더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보다 더 높이, 저 높이로 고양되는 존재인 overman인 것이죠. 때문에 천재는 많이 아는 것, 똑똑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늘 자기차이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 자기만의 삶의 양식을 상상하고 실험하고 개척할 수 있는 존재가 천재입니다. 니체는 그렇게 살라고 우리는 부추기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니체에게 그렇게 했듯이 말이죠. 쇼펜하우어는 누군가에게 뭘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나 자신이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화내고 싸워야 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교육자인 것입니다. 니체 역시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죠. 사람은 모두가 자기 내면에 천재성을 찾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서요. 천재가 되라, 될 수 있다! 저 높이로 올라가라! 

  세미나 하면서 그런 말을 했었죠. 글을 읽는 건 참 무서운 일인 것 같다구요. 자칫하면, 아니 지금 우리가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 멋있네, 좋은 말이야~ 하면서 니체가 비판하는 교양인처럼 구는 것 말이죠. 이런 속물교양인이,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하는, 천재가 되도록 부추기고 고양시키는 교양에 가장 큰 원수랍니다. 바로 내가, 나를 나이게 하지 못하는 원수이면서 또 나를 나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니 고민이 됩니다. 어떻게 니체를 말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그 말처럼 살 수 있을까? 니체를 읽는 내내 이 고민을 놓치지 말았음 좋겠어요. 도대체 뭔 소린가 이해하기 어려운 와중에 니체에게서 나를 후려치는 강한 힘을 느껴서 좋았던 한편, 그저 그 힘에 감탄만 하고 그칠까봐 두렵고 그렇습니다. 


  • 문정 2014.11.03 11:52

    천재는 정~~말로 부지런해야 하는 듯요..무거운 이 몸부터 어떻게....ㅋㅋ

  • 수경 2014.11.03 12:02
    자네 이제부터 아침에 연구실 나와 공부하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그것부터^^
  • 윤차장 2014.11.03 15:55
    ㅋㅋ 열공하겠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도다. 일단 니체님을 열심히 영접하자구.
  • jerry 2014.11.04 13:11

    우리는 후려맞고 까먹는 힘이 강한 것 같아...그래서 맞은데 또 맞지...이건 망각의 힘이아니라... 바보야 바보...ㅋㅋㅋ

  • 김덕순 2014.11.04 14:54

    자기보다 더 높이 더 높이 고양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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