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는 '힘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 the Will to Power'('힘의 의지'->No!!, '힘의지', '힘-의지', '권력의지'->Ok!)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공통과제를 써오기로 했었죠. 하하하! 정~~말 어렵더군요. 니체의 저작을 몇 권 읽지는 않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유난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은유와 패러디로 가득한 시여서 그런 거야! 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네, 저는 압니다. 조금만 낯설어도 접속하지 못하는 저의 무능력과 두려움을요. ^^;;
잠깐 수요일 낮 토론을 상기해 보면, '힘의지'라는 이 이상야릇한 말에 다들 정신을 못 차린 건 '힘'이나 '의지'가 그다지 어려울 게 없는 단어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네, 저희는 늘 그 함정에 빠지죠. '힘'이 뭔지, '의지'가 뭔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힘'은 누군가가 소유하고 휘두를 수 있는 역량쯤으로, '의지'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주체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니체의 힘의지를 해석하려 했던 겁니다. 이미 안다고 여기는 우리의 생각엔 이처럼 주체의 사고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듯합니다. 하여, 나는 어떻게 '내가 가진 힘'을 고양시키고 '나의 힘'을 느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되는 거죠. 나! 나! 나! 아이고~~~ ㅠㅠ
이런 질문도 나왔어요. 누구나, 가치의 파괴자이자 창조자인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면 그건 힘의 질의 문제냐 양의 문제냐구요. 신체가 힘의 각축장이고 어떤 행동이 가장 강한 힘의지의 결과라고 한다면 양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뭐 이런 결론을 어거지로 내긴 했습니다만, 그렇다면 힘의 질적 차원이란 뭔가라는 의문이 남죠. 힘을 양으로 생각하는 건 힘에 대한 우리의 표상때문일 터. 그렇다면 (채운샘이 언젠가 살짝 언급하신 것 같은데) 힘의 질이란 뭘까요?? 암튼 말을 하면 할수록 꼬이고 미궁 속으로 점점 빠져들더군요.
나의 모든 감정, 행동, 생각이 힘의지의 결과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아침놀>의 기억을 상기해 보면 니체가 그리스인들을 소환한 건 그들이 엄격한 자기절제를 통해 스스로의 윤리를 창안했기 때문이었죠. 우리가 계속 같은 패턴의 행동이나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 많은 힘 중에 어떤 힘이 지속적으로 돌출하는 조건 속에 스스로를 방치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조건을 바꿔 다른 인연의 장 속에 들어가거나 공부를 하는 등의 수행을 통해 다른 힘이 솟아오르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늘 헤매지만 유독 더 헤맸던 지난 토론 시간을 생각해 보니 엉뚱하게 변죽만 울리고 정작 힘의지가 뭔지를 자기 말로 해석하지는 못 했던 것 같습니다. '힘'과 '의지'에 대한 오해 속에서 (니체가 비판한) 자유의지론와 결정론 사이를 왔다갔다한 토론이었습니다. ㅠㅠ
니체는 왜 자연과 인간을 힘, 에너지의 차원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걸까요? 사춘기 때 많이 했던 생각 중 이런 게 있었어요. 이건 진짜 내가 아니야.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 ㅋ~ 뭔지 모르지만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웠나봐요. 이상적인 나에 비해 현재의 찌질한 나는 언제나 결여일 수밖에 없으니 늘 우울하죠. 행복은 꿈속에서나 있을 뿐입니다. 살기가 너무 힘들 때도 그런 생각이 들겠죠. 이런 건 사는 게 아니야.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니체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나약하고 무능력한 인간들이 신과 천국을 만든 거니까요. "신은 죽었다!" 니체의 이 선언은 인간들의, 대지와 실존의 불완전성에 대한 사고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인 듯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어. 그런데 왜 그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인 신이 만든 인간은 살면서 이처럼 고통스러울까. 그건 육체 때문이야. 영혼은 신과 닮았으나 쾌락과 욕망에 더럽혀지는 몸을 가진 인간은 그로 인해 죄를 짓게 되는 거지. 그 벌로 고통을 받는 거고. 그러므로 평~생 고통을 감내하며 속죄해야 돼. 고통은 죄의 증거이며 하여 삶은 부정의하다! 이와 같은 기독교의 논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서의 삶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에 다름 아닙니다. 이런 사고 속에서 고통, 욕망, 감각, 감정은 부정되고 정신과 이성의 힘 아래에서 통제받아야 할 것으로 전락하죠. 이건 거의 분열증 아닌가요? 자신의 몸을 부정해야 하고 들끓는 욕망, 감정을 늘 제어하고 억눌러야 하니까요.
힘의지는 이 분열증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실존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을 정의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힘의지는 “생명 그 자체Leben Selbst”로 무의식적 차원의, 감정, 느낌, 사고, 정서 등이 뒤섞여 결합된 복합체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고 감정을 느끼고 감각하는 것은 이미 의식의 차원으로 표출된 것, 다시 말해서 무의식적 차원의 힘의지가 의식의 지평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성의 작용이라고 하는) 생각, 판단도 힘의지가 발현된 것이고 (감각의 작용이라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이성이 감각의 우위에 설 이유가 없죠. 모든 것은 힘들의 각축 속에서 가장 강한 힘의지가 발현된 것일 뿐이니까요.
생명은 그런 다양한 힘들의 역학관계인 겁니다. 하여 힘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다른 힘과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들뢰즈는 니체의 힘개념을 설명합니다. 이처럼 여러 힘들과의 관계에서 갖게 되는 힘의 방향성, 차이 때문에 힘에 ‘의지’라는 말이 붙은 것이죠. 힘은 늘 다른 힘에 작용하면서 존재하므로 ‘힘-의지’인 것입니다. 하여 그 모든 힘들에 명령하는 힘의지가 있고 복종하는 힘의지가 있게 됩니다. 바로 이 명령하는 힘의지가 다른 힘의지를 복종시키고 발현되는 것이죠.
후기 읽고 문득 든 생각---> 어떤 일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 다른 사람들 의견과 반응을 많이 염두에 두는 걸 보면 내 신체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확실히 복종적 의지로구먼. 그건 그렇고... 실은 나 아직도 힘의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능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