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지난 주 세미나에서는...> 


 신이란?

‘신의 죽음’이 테마였던 지난 주, 세미나는 ‘나랑 신의 죽음이랑 도대체 뭔 상관~? 나는 신을 믿지도 않는데....’ ‘신은 왜 죽이는데...?’ 같은 작은 불평들로 시작되었슴니다.. 종교를 믿지 않아 신이란 단어는 좀 낯설어서요.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신이 정말 그 기독교의 신, 그 뿐일까? 질문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신'인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이 돈. 돈이면 다 된다 그러죠 요즘도. 이 불안한 삶에서, 통장 잔액이 변화없이 그대로 남아 있어 준다면, 알록달록 통장이 여러개 라면, 그래도 한숨은 돌리며 옆구리가 든든하지 않겠어요. 은행이 파산한다면 거기서 신의 죽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또는 돈처럼, 신은 우리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아픔, 슬픔을 생각하지 않게 해주거나,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믿는 나름의 의지처들이 아닐까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뭐가 있을까요. 나는 거지는 안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부모님? 평생 외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는 연인?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없게 해주는 대학 졸업장? 쓰고보니 정말 찌질하네요..

 

제 때 살고 제 때 죽어야 한다..?

니체가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에서 얘기했던 ‘제 때 살고 제 때 죽어야 함’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제 때 산다는 건, 자기 신체가 원한다면 힘이 들더라도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그 때 그 때 하는 것 같았어요. 공통과제 하는 것을 예로 든다면, 어쨌든 신체가 공부를 원해서(?) 세미나를 하고 있고, 그래서 공통과제를 쓰는데, 신체가 원하는 것인데도 힘든 것이 사실. 하지만 제 때를 아는 사람은 자기에게 명령을 내리면서까지 그것을 피하지 않는 사람. 여기서 센 사람과 약한 사람의 모습이 약간 다른데, 센 사람은 스스로를 위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자기에게 명령내릴 수 있는 힘인 반면 약한 사람들은 과제나 약속과 같은 타율적인 것에서 힘을 빌립니다... 제 때 산다는 건 정말 편하진 않은 일이예요... 에너지를 써야하니까요. 결국, 제 때 살지 못하는 건 신체에(충동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정말 매일 매일을 그저 피로하게 사는 것 같아요.

 

신체란?

신체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았습니다. 분명 신체는 죽은 몸인 인체와는 다른 데, 신체라 하면 아직도 하얀 백지에 인간의 형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인간의 몸은 여러 가지 화학물질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화학물질들은 죽어 분해된 또 다른 생명들로부터 온 것이라, 다른 생명들을 쏙 빼놓고 인간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또 대기와 물과 같은 인간의 몸 바깥의 것들이 있어야 몸이 작동하죠. 따라서 인간도, 대기도, 물도, 화학물질들도 다 신체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체는 여전히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요. 신체는 좀 더 큰 개념일 것이다, 즉 신체는 여러 힘들과, 그 힘들이 부딪혀 생겨나는 모든 것들이라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눈 앞에 있는 책상도, 힘들이 부딪혀 생긴 것. 인간과 책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나무, 철(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힘’으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이 만나 생긴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신체는 언제부턴가 경멸해야 할 것이 되버렸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부턴가 변하지 않는 것에서 고귀함을 찾았기 때문에. 신체와 영혼의 이분법도 그래서 생긴 것입니다. 신체는 변하지만 영혼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 영혼도 물질적인 작용인데 말이죠. 옛 부르주아들이 사랑은 고귀한 감정인 척 위선을 떨었었죠, 사랑도 몸이 원하는 것이고 신체의 정동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요. 이와 같은 이분법은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이 삶을 부정하도록 만듭니다.

 

요즘 달관 세대들, 사자와 같은 부정의 정신이 없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토론내용. 요즘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데 만족하며 사는 달관한 젊은이들이라는 프레임이 핫한데요. 이게 반항의 외침인지, 만들어진 질서를 수용하며 그 안에서 내가 어쩔 수 없이 택한 삶인지... 후자라면 달관 세대라 할 수 없다. 정말 달관 세대라 불릴 수 있으려면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자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달관세대로서... 취직 안해! 이러고 살고 있지만 나는 정말 부정을 외치고 있는건지... 회피인지 나는 어떤 식으로 부정을 외칠 수 있는지 생각이 복잡했슴다.

    

<강의를 듣고~>

 

이번 강의를 듣고, 저는 제 스스로 어떤 것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왜 행복하고 싶은지 궁금해졌어요.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요즘, 채이기까지 하고 나서는 ‘난 행복해지고 싶은데 왜 그럴 수 없는 거냐!’며 있지도 않은 누군가를 정말 원망했기 때문이죠. 행복해지고 싶고,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지극히 당연한 것인 줄 알아서, 행복은 궁핍함이고, 추함이고,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 만족이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말과 행복은 피로감의 산물이라는 채운 샘의 말씀이 좀 충격이었어요. 사람마다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고통을 모르게 해주는 편안한 상태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디 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주는지... 절대 그렇지 않잖아요. 이 세계의 성격 자체가 카오스. 무질서와 변화. 이런 세계에서 내가 바라는 그대로, 고통 없이 편안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 변화무쌍한 신체의 언어에 어긋나는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 만족’일 뿐이죠. 또 그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갈구하는 신체는 피로하고 나약한 신체임을 인증하는 것..ㅋ  그리고 자신의 행복이라는 어떤 상들에 도달하지 않는 현재를 괴롭다고 밖에 느끼지 못하는 감수 능력의 궁핍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주위의 모든 일들이 원망스럽고 괴로웠는데, 이젠 마냥 괴롭다고만 느끼기는 싫더라구요. 혹시 피로한 제 몸을 각성시켜주는 자극제가 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말은 이렇게 하는 데 막상 또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또 똑같을 수도...)

또, 제가 지고 있는 정신의 짐들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내 몸은 의식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수많은 힘들이 가로지르는 힘들의 장이고, 우위를 점한 힘이 의식으로 발현이 되는 것이라고 아침놀 읽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지만, 제가 알고 있는 저의 모습은 정말 제 안에서 여러 힘들이 싸우고는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극히 일관적이라는 데서 괴리가 느껴졌었죠. 니체가 신체를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라고 말한 것은, 신체는 그 무수한 힘들의 싸움들을 매일 겪지만 그 싸움의 결과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보존을 위해서, 가면을 쓰고 있는 꼴이죠. 정신이 인간의 세포가 생기고 죽듯 훅훅 변해버리면 그게 인간일까... 어후 정말 무서울 것 같은데요. 나에 대한 표상인 자아와 습관, 도덕 같은 것들이 바로 힘들에 논리를 부여하는, 정신에 코드를 부여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에 너무 치우쳐 자기 selbst의 명령에 귀 기울이지 못하면 우위를 점한 힘은, 충동은 발현되지 못하고 무의식 속에 꼭꼭 숨어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무의식 또한 점점 비슷해지게 되고, 결국 자아와 습관, 도덕은 정신의 ‘짐’이 되버리고 맙니다. 이것들에 치우쳐버리게 된다는 건 뭔지. 의식이 너무 강한 것인데, 의식이 너무 강해진 이유는 뭘까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를 ‘잘’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잘 사랑한다는 게, 그저 가깝고 익숙한 것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낯설고 멀리 있는 것과 친숙해지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를 ‘잘’ 사랑한다는 건 나에게서 가깝고 익숙한 것만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모습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나와의 수직적 관계 세우기. 나의 의식을 다듬고 다듬어서 무의식에 귀기울이는 데 최대한 활용해야 할 듯. 의식을 다듬으려면? 왠지 글이 무척 도움이 될 것 같은. 의식의 흐름을 스스로 볼 수 있고, 바꿀 수 있어서요. 그래서 글 쓰는 게 그렇게 힘들고 하기 싫은가봐요... 글이라도 써야 무의식이 비슷해질 대로 비슷해진 저는 저의 무의식에 귀를 바짝 대고 들을 수 있을 듯하네요ㅋ

  • 수영 2015.03.02 10:56

    짜라짜라-! 수업 들을 때나, 후기를 읽을 때나 '아-!'했다가 다시 또 내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도 헷갈려지는 짜라. 그래도 계속 읽게 되고 뭔가 쓸려고 하게 되는 건 요 어디서 우리 몸이 뭔가를 섭취(?)하고 있어서인걸까요..?~.~ 암튼 셈나도, 수업도, 후기도(!) 흥미롭습니다와요-0- 요번주 수업도 다함께 고군분투를ㅋㅋㅋㅋ

  • 수경 2015.03.02 11:27

    혼자 읽으며 이해한 게 세미나하는 도중 한 번 깨지고, 강의 들으며 또 한 번 깨지고, 마지막으로 공지 올리거나 후기 쓰기 위해 다시 읽으며 또 한 번 깨지고... >.<  

  • 윤차장 2015.03.02 12:54

    짜라짜라라짜~ 그대는 참으로 아름답고 알 수 없는 사람~ ㅋㅋ 그래도 문정아~ 같이 열심히 헤매다 보면 무슨 길을 찾게 되겠지. 

  • jerry 2015.03.02 13:13

    사자처럼 울어야 할텐데 말이야..NO라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니체 4학기 개강] 이 사람을 보라! file 수경 2015.06.11 1114
공지 [니체3학기] 니체의 계보학- 선악의 저편 / 도덕의 계보 file 수경 2015.03.26 2573
공지 [절차탁마] 니체를 읽자(10.1개강) 36 채운 2014.08.19 34101
173 니체 2학기 쫑! 1 수경 2015.03.27 329
172 0325 수업 공지 5 수경 2015.03.20 330
171 2015031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피로(에 지쳐) 쓴 후기 3 김덕순 2015.03.13 3958
170 0318 수업 공지 2 수경 2015.03.12 228
169 3월 4일 후기 2 윤차장 2015.03.08 216
168 0311 수업 공지 1 수경 2015.03.05 249
» 0225 짜라짜라 제 1부 후기 4 문정 2015.03.02 382
166 0304 수업 공지 2 수경 2015.02.27 250
165 2월 11일 수업 후기 3 ya 2015.02.17 332
164 0225 수업 공지 수경 2015.02.13 247
163 2월 4일 후기 (즐거운학문 5부) 2 수영 2015.02.06 310
162 0211 수업 공지 1 수경 2015.02.05 327
161 1월 28일 수업 후기 4 구이진 2015.01.31 1197
160 0204 수업 공지 2 수경 2015.01.30 1026
159 즐거운 학문 3부 후기 2 김덕순 2015.01.25 1250
158 0128 수업 공지 수경 2015.01.23 1287
157 0114 수업 내용 수경 2015.01.16 605
156 0121 수업 공지 수경 2015.01.16 627
155 1월 7일 후기 2 윤차장 2015.01.12 61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