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6 21:24

0114 수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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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생각해온 건데, 니체 읽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지금 하는 이 말이 비판인지 옹호인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혹은 반어로 간주해야 하는지 분간하는 게 쉽지 않아서인 듯합니다. 왜 쉽지 않나아마도 그건 니체의 문장을 읽기 전 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견고한 판단 때문인 듯. 예술, 학문, 도덕, 양심 등등에 대한 내 표상을 고스란히 가진 채 니체의 글을 읽을 때 그가 적어놓은 말들의 미묘한 의미를 자꾸 놓치고 내 식대로 판단해버리는 거지요. 그런 탓에 니체가 한 말을 반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앞에서 한 말을 뒤에서 번복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더 나쁘게는 이미 내가 다 아는 말이라고 여기는 데 그치지요.


그런데 보니까 즐거운 학문》은 역사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관념을 확 무너뜨리면서 시작되고 있네요개인적으로 첫 번째 아포리즘 <존재의 목적을 가르치는 교사>에서 붙들고 늘어질 만한 요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건, 바로 니체가 역사나 도덕 이미지를 우리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게(밀물과 썰물의 법칙) 그리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 아포리즘을 익숙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내릴 결론은 아마 이런 거겠죠. ‘아하, 예전에는 삶 자체를 존중했는데 이제는 당위만 있다는 거군! 당위만 있는 현대사회는 나빠! 당위는 나빠!’ 그런데 채운쌤이 당부한 바에 따르면, 니체의 말이야말로 정말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끝까지 집중해 듣지 않는다면 그 안에 숨은 미세한 의미들을 놓치기 십상이라는 거.

이 아포리즘도 후반에 이르러 중요한 문장이 등장하네요.긴 시간을 두고 보면 지금까지 웃음과 이성과 자연이 이 위대한 목적의 설교자들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교정하는 이 웃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현존재의 목적을 가르치는 설교자가 거듭 출현함으로써 인류의 본성이 변화하게 되어, 이제 그것은 또 하나의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목적의 설교자와 그의 가르침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 이것이 니체가 바라보는 역사랍니다. 밀물과 썰물의 끊임없는 작용처럼 인간의 역사란 '새로 등장한 힘-그것의 규칙화(당위)-규칙의 노쇠-이를 깰 새로운 힘'의 교체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거. 가장 위대한 당위를 향해 나아가는 노정이 아니라, 한 번의 밀물과 한 번의 썰물의 끝없는 되풀이일 따름이라는 거. 우리가 믿고 있는 도덕 법칙이라는 것도 그러므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이 세계에서 그저 한시적으로 유효한 것일 뿐, 절대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거.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분석이, 그래서 세상만사는 다 변하니까 윤리 따위는 불필요하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건 물론 아니죠.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새로운 것은 이전의 낡은 당위를 깨는 작업이라는 말은, 도덕(이란 곧 기존의 도덕)을 넘는 모든 시도는 곧 당위를 넘는 것 - 나는 원한다’ ‘하고자 한다는 선언으로부터 도출된다는 걸 의미한다는 거. 해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가차 없이 해내는 것, 이것이 곧 고귀한 고대 그리스 영웅의 표징이라는 거. 이들 고귀한 자는 사회가 부여한 윤리가 아니라 그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윤리를 따르는 자랍니다.

요컨대 자연만사 모든 게 변하니까 윤리 따위 불필요해, 라는 식의 허무주의가 아니라 각자 스스로 세계의 당위와 싸우길 권하는 게 즐거운 학문의 기획 의도인 셈이죠. 근데 세계의 당위와 무슨 수로 싸운담? 정치투쟁을 통해? 아뇨, 니체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길 권하죠. 자기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당위와 싸우고, 자신의 상식과 천박함을 경멸하도록 요구합니다. 요거이 바로 정열적이면서도 느린 정신의 템포인 안단테(<일종의 격세유전>). 자기 시대의 속도를 벗어나 존재하기, 어떤 좋은 음악들이 그렇듯 (내용을 지시하는 노랫말이 아니라)다른 리듬과 사운드로 사유하기, 붓다가 동시대인의 생활방식을 거슬러 무아(무소유)를 살았듯

채운 쌤 말로는 우리 또한 니체 책을 읽으며 요런 걸 해야 한다는 거죠내 안에 있는 상투성과 싸우라……. (그야말로 창조이자 파괴)!


니체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이를 염두에 둔 것 아닐까요? 안전한 곳을 원하지 않아 마치 평지를 밟듯 고지 오르기를 밥 먹듯 하는 지칠 줄 모르는 방랑자로 사는 게 곧 예술가의 일이라면(<우리들 예술가들!>, 자기 삶을 그렇게 사는 모든 존재들이 곧 예술가인 거죠. 자신으로 하여금 안전함과 평안을 느끼게 하는 것들로부터 계속 달아나기, 스스로 험한 길을 찾아 오르면서 자신을 넘어서기. 이렇게 할 수 있는 자만이 하얀 불꽃이 발밑을 핥으며 솟아오르는 파도의 화염 한가운데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범선을 띄워 미끄러지게 할 수 있는 자. 이거슨 정말이지 웬만한 에너지를 가지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능!  >.< 



...솔직히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서 뭐라 섣불리 말하지 못하겠군요; 다음 시간에 2부에 속한 몇 개 아포리즘을 마저 살핀다 하니 그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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