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4 21:34

미셸조-9월11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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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탁마-『광기의 역사』2부 1, 2장 / 2013.9.11 / 수업 후기 / 최태람

 

  우리의 경험은 어떤 식의 제도적 ‧ 담론적 실천들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채운쌤은 “경험의 역사적 두께”는 제도적 ․ 담론적으로 켜켜이 쌓이다, 습곡, 단층작용을 겪으며 두께를 형성해간다고 설명하셨습니다.
푸코는 우리에게 퇴적, 습곡, 단층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 다른 모습으로 늘 변형중인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또 르네상스 시대에서 고전주의 사회로, 고전주의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행을 왕조사 중심이 아니라 '광기'를 둘러싼 제도적, 담론적 실천들의 변화로 읽어낸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마구 오독하고 있긴 하지만 읽는 재미가 쏠쏠 한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광인들을 배에 태워 쫓아버렸던 르네상스인들과, 비이성의 영역으로 내몰린 많은 사람들을 수용했던 고전주의 시대, 광인을 질병에 걸린 환자로 다루는 근대 사회. 박애, 휴머니즘이라는 표어가 등장하게 된 근대 사회는 더 나은 사회가 아니라 다르게 경험하고 있는 사회라고 말하는 게 맞는 거겠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대가 전 시대보다 더 낫다고, 덜 잔인하다고 믿고 싶어하지요. 푸코는 그게 얼마나 오만한 태도냐고 일갈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배제 장치가 있었고, 지금 우리 시대에도 동물, 광인, 장애인……등 엄청나게 많은 존재들을 배제하고 있죠.‘중심’은 언제나 ‘주변’을 만들어내는 활동과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죠.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시설에 가두고, ‘디자인 서울’이란 이름으로 ‘정상인’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비정상인들’이 섞이지 못하도록 아예 공간을 구획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 혼잣말 하고, 혼자 낄낄 거리며 웃는 사람을 보면 금새 피해버리고 불편해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미시적 차원에서 배제 장치를 작동시키고 있는 거겠죠.

 

 

  우리의 경험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거시적, 미시적 차원의 눈으로 들여다 보는 순간 나의 경험이 전혀 다르게 보이게 되겠지요. 공부를 하면서 그런 다차원적 눈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건 지금 여기서 '잘못'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오만함과 자기 기만이 아닌 방식으로 잘 들여다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지금 우리의 가치를 기준으로 전 시대를‘규탄’하거나 폄훼할 수 없다는 것. 그 시대에는 지금 우리와 다른 경험 방식이 존재했던 것일 뿐이라는 것. 또 역사는 언제나 단절점 위에 또다시 새로운 지층을 만들어간다는 것. 우리의 경험도 언젠가 습곡, 단층 작용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단절을 겪는다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수용이 광기에 대한 제도적 실천이라면 이번에 우리가 읽은 내용은 담론적 실천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부 <서론>에서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에는 네 가지 형태의 의식을 통해 광기를 표면화시킨다고 합니다. 우선 비판적 의식과 실천적 의식. 이 둘은 이성으로 광기를 비난하고 배제하는 관행, 심판하고 배제하는 의식입니다. 또 언술적 의식과 분석적 의식. 이 둘은 광기를 인식하고 식별하는 의식입니다. 이 네 가지 의식은 상호작용합니다. 이런 의식적 경험들과 함께 수용이란 제도적 실천이 존재했던 거지요.

 

 

  고전주의 시대에 광인을 식별하는 자는 학자나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광기는 현자, 철학자, 비평가, 회의주의자, 모랄리스트에 의해서 식별되었습니다.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는 아직 이론적 앎의 영역에 흡수되지 않았고, 여전히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었던 거지요.

 

 

  식별자들에 의해 광인은 직접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때 광기는 광인의 특징 아래 모습을 보입니다. 광인은 “주변적인 파악, 비스듬한 시각을 통해, 간접적이고 동시에 부정적인 일종의 순간적 추론을 통해 이루어”(313) 집니다. 소바주는 그토록 확실하지만 또한 그토록 혼란스런 이런 파악 방식을 명백하게 밝히려고 시도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 시기엔 광인을 식별하기 위해 무리하게 논리적 추론적 지식을 동원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광인은 그 존재양태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뭔가 ‘다르기’ 때문에 의심 없이 식별됐습니다.

 

 

  이때 광기는 이성에 ‘대해’ 실재했습니다. 여기서 광기와 이성의 이중적 관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광기는 이성으로부터 배제되지만 언제나 이성의 시선 아래 있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거죠! 이성은 이성과 광인의 이성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거리를 헤아리면서도, 스스로를 광기의 내용, 본질, 담론, 급기야는 ‘근거’로 인정합니다. 이는 광기가‘비이성적인’것을 규탄하는 움직임 자체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광인은 이성과 비이성의 뒤얽힌 현존이었습니다.

 

 

  하지만 광기는 여전히 모호한 문제로 남습니다. 광기는 도대체 뭐지? 답은 질병 분류표에서 찾아졌습니다. 광인은 인식되지만 광기는 연역되었던 겁니다. 18세기 분류학자들은 자연사 저자들을 본받아 인간의 수많은 질병을 체계적인 질서 속으로 집어넣고자 하였습니다. 광기가 18세기의 질병분류학으로 편입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그러나 고전주의적 사유는 이런 종류의 분류를 거부했습니다.

 

 

  이후 병리학자와 의사들이 질병에 관심을 쏟으며 과거에는 신이 내린 벌이라고 믿었던 질병이 이제는 신이 질병의 형태들을 조직하고 분류한다. 신이 질병에 관심을 쏟는다. 질병의 신, 종들을 보호하는 신과 동일한 신이 있게 되고, 병의 주의를 기울이는 이 정원사는 사라진 적이 없다. ... 이제 의학은 징벌의 범주에서 벗어나 병리학적 범주로 다가가는 것이어야 한다.(327)”라는 식의 인식은 고전주의 시대의 것이 아닙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분류방법은 다릅니다.“18세기에는 분류법의 분명하고 명백한 개념들은 실효성이 없었다.”(335)

 

 

  다만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가 많은 “성격”으로 다양화되고 질병학이 “도덕적 인물묘사”들로 채워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기가 구체적 인간과 합류하고자 할 때, 광기의 경험은 도덕과 마주쳤습니다. 광기를 도덕적인 문제로 규정하느냐 안 하느냐가 고전주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를 가르는 분할선이 되는 거지요.

 

 

  요컨대 고전주의 시대의 담론적 실천은 도덕적 비이성의 경험이었습니다. 17-18세기는 종들의 정원에서 불확실한 집단들을 판별할 뿐이었습니다. 질병학 체계들은 구체적 모습을 갖추지 못했죠. 광기의 실증성이 탐색되는 바로 거기에서 이성만이 재발견되었을 뿐입니다.

광기를 질병학 체계로 만들지 못하게 만든 방해요인으로 다뤄지는 게 광기로 정의되었던 정념, 상상력과 정신착란의 선험성입니다.

 

 

  <2장 정신착란의 선험성>은 이에 대한 분석입니다.

 

 

  전통적으로 신학자, 결의론자들의 전통, 법률가들과 재판관들은 광인이라 해도 영혼은 미치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광인의 육체에 깃들인 억제할 수 없는 힘으로 말미암아 광인의 자유가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타격을 받았을 뿐이라고. 그래서“이 불쌍한 영혼은……자기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고, 대뇌의 흔적이 형성하는 이미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죠. 즉 광기는 파괴를 의미하고 회복되면 이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그들은 광인의 영혼은 파괴되지 않았고 육체가 손상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의 의학 텍스트에서 광기, 정신착란, 정신병이나 정신질환이 문제일 때, 거기서 가리키는 것은 생체병리학의 영역과 대립하는 심리적 장애 또는 심령현상의 영역이 아닙니다. 푸코는 윌리스가 조광증을 머리의 질병으로, 히스테리를 경련질환으로, 소바주가 실언, 현기증, 이명, 야릇한 언동을 ‘정신착란’ 항목에 넣는다는 것을 늘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즉 이 시기 광기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이 함께 문제되는 것이었습니다. 광기가 정념의 문제라고 할 때, 정념은 영혼과 육체 약간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푸코는 그리스-로마 모랄리스트들은 광기가 정념의 징벌이라고 생각했고, 이 점을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해 정념을 일시적이고 완화된 광기로 만들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엔 정념의 본질을 근거로 하여 광기의 망상을 설명할 뿐 아니라, 광기는 정념과 함께 시작되므로 영혼과 육체의 합리적 통일성 속에서의 생생한 움직임일 뿐이고, 비이성적인 것의 층위이지만, 격렬함과 혼미스러움과 무의미한 파급 속에서 ‘비합리적’ 움직임일 뿐이며, 바로 그때 광기의‘비현실’이 드러난다고 하지요. 이렇게 광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 jerry 2013.09.20 20:56

    음.. 뭔가. 듬성듬성 중요한 것들이 빠져있는데.... 담시간에 우리 앞에서부터 다시 확인해보아...흐흐.. 내가 그날 삼천포로 빠지다보니 조원들을 미궁에 빠뜨렸나보이 내탓이오 내탓이오 나의 탓이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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