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었던 부분은 2부 1장, 2장의 영역이었습니다.
1부에서는 광인에게 이루어진 제도적인 실천을 다루었다면
2부에서 푸코는 광기와 광인에 대해서 다른 측면을 살펴보면서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 푸코는 '광기'를 어떻게 대하고 취급했는지에 대한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냐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광기는 뭐야. 광인은 뭐야)을 통해서 나머지 사람들은 어떤 것을 내면화 시키느냐, 다시 말해 어떤 배제의 활동을 통해 주체화가 이루어지느냐를 알아보는 것이 푸코의 작업인 것이죠.
우리가 보았던 부분에서(2부) 더 자세히 다루어지는 측면은 '광기가 무엇이냐'라는 담론적 실천입니다. 푸코는 끊임없이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특징을 우리에게 설명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비이성이라는 것이죠. 무슨말인가 하면 우리가 광인들을 보고 "미친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명증성, 다시 말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광기는 이성의 영역안에서만 말해질 수 있는 것이죠. 푸코는 이를 "광기는 비이성의 영역이면서 이성의 시선안에 놓여 있다"라고 말합니다. 광기는 이성의 부재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성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죠. 하지만 이 비이성이 무엇이냐. 라고 말하면 참 모호합니다. 그렇다면 고전주의 시대 '광기'가 무엇이냐라고 말해도 뭐라고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앞서 보았다시피 광인들은 잘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 '광기'와 광인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광기'는 질병의 분류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기 지식 체계의 특징은 바로 모든 지식을 격자 형식안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마치 식물들을 '뿌리, 줄기, 잎구조'를 나누어서 종을 분류하듯이 '광기'도 질병의 체계의 종으로 분류하려는 시도가 있던 것이죠. 그러나 이는 실패하기 때문에 광기는 실체없는 상태로 고전주의 시대에는 조재하게 됩니다. 그러니 '광인'은 '광기' 때문에 감금된 것이 아니라 '비이성'이기 때문에 감금되었던 것이죠. 오늘날 보면 광기와 광인을 결부시키는 것이 매우 당연한 것 처럼여기기 때문에 고전주의 시대의 이 활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는 역으로 우리 시대 '광기'를 어떻게 표상되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채운 샘은 지적하셨습니다.
자 어쨌든 고전주의 시대 광기는 정신착란이나 정념의 표현으로 고찰되었습니다. 이런 정신착란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광기를 규정하려고 했던 것이죠. 고전주의 시대 정념이나 정신착란은 영혼의 문제뿐만 아니라 육체의 문제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다만 둘 다의 문제이긴 했지만 균형을 이루진 못했던 것이지요.
고전주의 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정신착란은 이성을 사용하는 비이성, 다시 말해 이성의 오용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들 광인들은 이성을 잘 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 지탄을 받아야 되는 것이지 치료대상은 아니었던 것이죠. 광인은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들어서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때문입니다. 이들은 아예 부정되었기 때문에 누구도 광인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고전주의시대 광인들은 침묵합니다
푸코가 보기에 이 침묵속에 있는 광인들이 고전주의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성의 기준에 맞추어버렸던 고전주의 시대의 지반에서 광기는 그 안의 어둠이라기 보다는 빛을 너무 강렬하게 받아 눈을 먼,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의 부재에서 무엇보다도 이성에 대해서 발견을 할 수 있듯이 어떤 사회에서 배제되는 존재들이 그 사회를 가장 잘 보여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추석 잘 보내세요~~!
어이쿠! 빛의 속도로 후기를 올렸네그랴. 앞으로 쭉 그렇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