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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개인적으로 <선악의 저편>보다 <도덕의 계보>가 더 인상적이었는데, 다들 어떠셨는지? 저는 약자의 원한에 대한 설명에 머리가 계속 따꼼따꼼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읽을 제2논문은 '죄'와 '양심의 가책'에 대한 것이라 수업 시간에는 1논문과 2논문을 함께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모두 2논문 꼼꼼히 읽어오시고, 인상적인 구절도 체크해오셔요.

나눠드린 두 개의 복사물도 꼭 읽어오시고, 챙겨도시고요^^

다음 시간 간식은 현옥쌤+수영!


이제 후기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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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책을 읽으며, 남의 원한은 곧잘 비웃으면서도 자신의 그것은 잘 보지 못하는 게 대개의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원한을 곧잘 다른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지난 일에 대한 비상한 기억 능력, 타인의 정서에 대한 극도의 민감성 등등으로. 니체는 가차 없이 말하더군요. 그건 그저 무능이다! 너는 노예이고, 병자다! 더 나쁘게도, 너의 병은 건강한 자까지 전염시키려 한다!


, 다른 게 원한이 아니랍니다. 우리가 기억으로 간주하는 것, ‘민감한 감수성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다 세상에 대한 노예들의 원한감정의 표출이라는군요. 노예들은 말합니다. “네가 잘못했다!” 내가 아니라 네가 문제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노예는 자신의 선량함을 보증 받고자 합니다. 들뢰즈는 이렇게 말했죠. “나는 선량하다. 그러므로 너는 악의가 있다.” 이 문장과 너는 악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선량하다.” 이 말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니체와 철학>) 전자는 강자의 입에서, 후자는 노예의 입에서 나옵니다. 무엇이 다른가? 지난 수업 시간 전반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았던 것 같네요.


전자가 후에 만들어진 것이며 병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자 일종의 보색이라면, 후자는 이에 반해 원형이며 시원이자 노예 도덕이라는 구상에서 나온 본래의 행위이다.”(<도덕의 계보> 1논문 중)


노예 감정의 메커니즘의 본질로 니체가 지목한 것은 주체행위의 분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행위를 판단할 때 그 일을 주관하는 중립적 주체를 상정하고, 그것과 그가 행하는 행위를 분리한답니다. 이를 설명하는 좋은 예가 맹금과 양입니다. 니체의 우화 속에서 양이 맹금을 비난하기 위해 가져온 논리는 이와 같습니다. ‘이 나쁜 늑대 놈아, 너는 우리를 잡아먹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를 잡아먹는구나. 그러니까 너는 나쁜 놈이고, 그럼에도 너에게 해코지하지 않는 우리는 좋은 녀석이야.’ 그런데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힘 의지 개념을 상기해봅시다. ‘나는 그럴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반대로 너는 안 그럴 수 있으면서 그렇게 한다.’ 이렇게 늑대를 비난할 때 양이 믿는 것은 바로 주체의 자유의지입니다. 그런데 니체는, 우리의 행위는 주체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우리 신체 위를 관통하는 수많은 힘들의 싸움 끝에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승리한 힘 의지가 우리의 행위가 되는 거죠. 다르게 표현하면, 승리한 힘 의지가 그 순간 특정한 행위의 결과물인 를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양의 전제는 행위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이지만, 그러나 행위 선택권을 가지는 일정하고 견고한 같은 건 없다고 니체는 간주한 거죠.


그러니 양은 말도 안 되는 걸 늑대에게 요구한 셈입니다. 그는 늑대에게 늑대가 아니길 요구한 거죠. 하지만 양이 풀 말도 다른 걸 먹을 수 없듯 양보다 강하다는 늑대도 이것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힘 의지는 주체의 의지가 아니니까요. 주체는 힘들의 매번의 다툼을 관장하고 선택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니까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양이 나 자신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물론 냉큼 부정하고 싶어집니다. ? 나는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지는 않는데? 늑대보고 양이 되라니, 그게 말이 돼?


그런데 만약 이를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어떨까요? 가령 도무지 망각할 줄 모르는 너의 무능력이 곧 너의 약함이다, 라고 한다면. 니체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네 병명은 기억이고, 네 무능은 길러지지 못한 망각에 있다……. 변화무쌍하고 의도나 목적도 없이 진행되는 삶을 긍정할 수 없는 자가 어떻게든 지상에서 버텨내기 위한 고육지책이 기억인지도 모릅니다. 삶은 이런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저 사람은 이러저러하다, 이런 일에는 이렇게 대응해야 한다……. 마치 신경병 환자가 침대 밑에 라면박스만한 구급약통을 준비해둔 것처럼 그의 삶은 매뉴얼로 꽉 차 있을 겁니다. 어떤 사건과 인물이 출현해도 그는 자신의 앎과 경험에 따라 이를 맞아들입니다.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사람, 매뉴얼과 비교해 낯설지 않고 나를 긴장시키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는 편안히 잠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즉시 상대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그를 비난하기 일쑤지요. 자신의 기대에 어긋난다는 바로 그 점이 약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어 즉시 책임을 물을 대상을 물색하게 만듭니다.


이들에게 강자는 악한입니다. 약자와 달리 그는 자신의 힘 의지에 따라 고유하게 세계를 해석하고 좋음을 만들지요. 그의 복수는 상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거의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강도로 실행에 옮겨지지요. ‘그래서그에게는 악의가 있다고 판명됩니다. ‘그래서도덕의 이름으로,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으로, 여기 나는 선량한 존재가 되지요. 넌 복수하고 나는 하지 않지! 넌 나빠, 그러니 난 착해!


이렇듯 노예는 도덕의 이름으로 강자의 힘을 퇴화시키고 자신의 노예성을 전염시킨다는 점에서 치명적입니다. 영화 <매드맥스>(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최근에 본 영화라는 점에서 예로 가져옵니다^^;)에서 임모탄이 워보이 ‘War-boy’라는 그 이름과 다르게 너무 하찮아 가여운 존재들의 영혼을 사로잡아 그들로 하여금 오직 죽음과 구원만을 바라게 한 것처럼, 니체가 보기에 소위 민주주의 사회란 강자를 말살하고 사람들을 점점 더 나약하게 만드는 시스템인 거죠. 그러니 이 사회 안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람들은 실상 승리한 노예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게 니체의 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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