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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게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바로 그 '작은 전향', 조고각하로부터 불교가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러나 이 회향을 주저합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큰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 아니기에 그 당당함이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다른 사람들과 주변 여견을 비난하는 권리를 줍니다. 이 합리화 과정은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기에 거의 '의식'조차 되지 않습니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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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입는 데 호사를 부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육신의 배고픔보다 영혼의 허기를 부끄러워하라. 초라한 의복 말고 빈약한 내면을 다급히 여기라. 아무리 맛난 음식도 한번 침이 닿기만 하면 개밖에 먹지 않는다. 들어갈 때는 다른 것 같아도 나올 때 보면 다 같다. 그러니 냄새나는 똥을 위해 아등바등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곳간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해야 한다.<다산어록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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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 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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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삶이 무엇인지를 내면으로 터득한 자는 죽음 역시 깊이 깨닫는다(운행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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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말로 하는 것은 끝내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스스스 보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믿어야 합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며 모양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도리어 방해가 되지 않지만, 다만 말로 흉내내고 흉내 내더라도 도리어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대혜종고, '서장-선 스승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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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불행, 고립, 내버려짐, 가난 등은 각자의 영웅들을 가지고 있는 전쟁터이다(....) 견고하고 희귀한 천성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가난이, 거의 항상 계모이되, 가끔은 생모이기도 하다. 결핍은 영혼과 지성의 힘을 잉태시킨다. 절망은 의연함의 유모이다. 고결한 이들에게는 불운이 좋은 젖이다. <레 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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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계급이나 사회 문제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참여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을 지는 한에 있어서 참여적이 된다. -『고다르ⅹ고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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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책들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숨구멍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삶의 이야기들을 보여준다오. 그런데 골치아픈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저 달덩이처럼 둥글고 반반하기만 한 밀랍얼굴을 바라는 거야. <화씨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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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누구도, 조물주라고 부르는 브라흐마조차도 우리를 구원하거나 완전을 성취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 밖에 누가 있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데이비드 깔루빠나 외 <혁명가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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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 오로지 자기가 갈 길만 돌진하는 꽃이나 개울의 흐름 같은 자연적인 에고이즘을 나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것만이 세계에서 해야 할 유일한 소명이 아닐까? 더할 수 없이 맑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존재하는 것 말이다.

<양의 무리를 지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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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려)는 인간은 물속에 몸을 잠근다. 그리고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잠근 탓으로 혹간 몸에는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생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며, 마침내 '변덕'이 범접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화'하고 마는 것이다. <김영민의 공부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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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란 자기 자신을 한 작품의 절대적 완벽성 속에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 성실성과 자신의 정열에 대해 시종일관 책임있게 대하는 자세로 드러난다. (<봉인된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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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작가에게 있어서 세계는 타인의 담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그러한 타인의 담론 한가운데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그러한 담론의 독특성을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청각이 있어야 된다.

- <도스토예프스키 시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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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도 우리 사이의 제3자만큼 가치가 있지 않다. 즉 우리는 오로지 제3자를 통해, 제3자에 힘입어, 제3자 속에서 진정으로 함께 살 것이다. 3인칭은 1인칭과 2인칭에 앞선다. <천사들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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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게으르지 않은 사유에는 어디나 완전한 정당성은 불가능하다는 의식이 낙인처럼 찍혀 있다. 그것은 마치 아침의 달콤한 잠 때문에 빼먹은,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수학 시간이 있다는 것을 꿈속에서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사유는 빼먹은 수업에 대한 회상이 그를 깨워 가르침으로 되돌려주기를 기다린다. [미니마 모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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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기나긴 길을 갈 때 가장 쉽게 직면하는 것은 두 가지 난관이다. 그 하나는 기로에 섰을 때다. 묵자는 통곡을 하고서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울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다. 먼저 갈림길 머리에 앉아 조금 쉬거나 한숨 잔다. 그런 뒤 갈 수 있어 보이는 길을 택해 간다.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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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화가에 있어서 사물들은 스스로의 분위기를 창조해 내고, 모든 색채는 하나의 발광이 되며, 또 모든 색채는 물질의 내밀성을 드러낸다. 만일 예술작품을 응시함으로써 그 창조의 싹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상상력에 아주 깊숙이 각인을 찍고 있는 커다란 우주적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꿈꿀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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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쏟아져 흩어져 있는 책들을 보는 그의 뇌리에는, 10여 년간 가난한 월급생활에서 절약하고 아낀 돈으로 한 권 한 권 사들이던 때의 고통 섞인 기쁨이 되살아난다. "생활을 어떡하려고 또 책을 사들여와요?" 하고 나무라던 아내의 얼굴이 책더미 위에 떠오른다. 아내의 꾸지람을 듣지 않으려고, 대문 밖 기둥 뒤에 포장된 책을 숨겨놓고 태연하게 방으로 들어가서는, 옷 갈아 입고 다시 나와 기회를 보아서 서재로 들여다 책장에 꽂던 죄책감 섞인 스릴도 되살아난다. <리영희 산문선 중 D검사와 이교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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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이 물었다. "제사를 지낼 때 벽을 향해 위패를 설치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나를 향해 위패를 설치하는 것이 옳으냐?" 손병희가 대답했다. "나를 향해 위패를 설치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자 최시형이 말했다. "그렇다. 나를 향해 위패를 설치하는 것이 옳을것이다." <해월신사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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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란 만 가지 물건이니 진실로 하나로 할 수 없거니와, 하나의 하늘이라 해도 하루도 서로 같은 하늘이 없고, 하나의 땅이라 해도 한 곳도 서로 같은 땅이 없다. 마치 천만 사람이 각자 천만 가지의 성명을 가졌고, 삼백 일에는 또한 스스로 삼백 가지의 하는 일이 있음과 같다. 오직 그와 같을 뿐이다. -그물을 찢어버린 어부, 이옥전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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