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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과 명령에 무기력하게 길들여진 나약한 신체가 아니라 다른 이의 욕망과 접속하면서 나날이 건강해지는 신체,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대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변모시키고 확장하는 신체. 그런 신체는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예술의 달인 호모아르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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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기, 이야기하기, 나를 관처럼 가두는 말(言)의 창백한 가죽을 기워 주문 잣기.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하기. 용이 덩굴과 안개를 태워 길을 내듯 내가 기어가는 곳마다 타락한 웅얼거림을 앞에 쏟아놓기. <그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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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존재로부터 단절되고 분리되어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실체로서의 시간'을 부정하고 있다. 주어인 존재 그것은 이미 시간성을 내장하고 있다. 무상이라는 것은 존재로부터 단절된 시간을 전제로 하여 그 시간 속에서 무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존재자신이 시간이며 '존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시간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ㅡ무상의 철학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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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글자를 다스려 문장을 짓는 데 있어서 성실을 세웠으니, 한 글자를 쓰는 것은 바로 생사(生死)와 관련되어 있었다.  <강재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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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성인들은 진화의 과정을 사회적 균형을 이룬 어느 단계에서 동결시키고자 한 자신들의 의도를 성공시켰다. 심지어 도가 철학자들은 무(비존재)의 태내로 피신함으로써 그 과정이 역전되기를 바랬다. 사람들은 옛것이 평화, 조화, 소박 , 평온한 사회질서 등의 가치를 구현해 주기 떄문에 옛것을 애호한다. (부와 권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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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공포보다도 무서운 벌을 빠빠라기(백인, 문명인)에게 주셨다. 투쟁이라는 벌. <내 물건>이 아주 조금밖에 없거나 전혀 없는 사람과, 그것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도록 하셨다. 이 싸움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밤낮도 없다. 이 싸움은 오만 사람을 다 괴롭힌다. 삶의 기쁨을 씹어 없앤다. 가진 자는 나눠 줘야만 하는데도,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갖이 못한 자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싸우는 전사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다만 약간 늦게 와서 약탈에 미처 가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운이 좀 나빴거나, 기회가 없거나 했을 뿐이다. 약탈의 대상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는 극히 드물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에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듣는 자도 좀처럼 없다. - '빠빠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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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지금 예순일곱 살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청춘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곧 인생이 끝나게 되겠지만,  젊게 느껴진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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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제우스의 눈은 원하기만 하면,

도시가 그 안에 품고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정의인지도 볼 수 있고, 결코 그것을 놓치는 일이 없소.

<신들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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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다름을 아는 것이지만, 다름이 있으므로 안다는 사실이 발생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앎이 발생하는 순간은 다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결국 '안다는 것'과 '다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사실이면서도 서로를 성립시키는 것이 됩니다. -돈황본 육조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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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자기 의견과 다른 의견을 만났을 때 기를 쓰며 다투어서는 안 된다. 나의 체모만 손상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따르지 않는 것이 옳을 뿐이다. <사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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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희망이 달려있는 한 가지 단어를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환대라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지방과 테이블과 참을성, 그리고 귀기울여 듣는 습관을 회복하면서 환대의 관습을 부활하여, 거기로부터 덕성과 우정의 묘판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재생을 향하여 빛을 발산하게 될 희망 말입니다. <우정에 대하여-이반 일리치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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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하여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예컨대 그의 길앞잡이속처럼...

<모래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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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천사(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는 과거의 모습을 본 것이다.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우리 앞에 펼쳐지면 그가 보게 되는 것은 파국 뿐이다. 쓰려져 넘어진 폐허가 끊이지 않고 쌓여 발아래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이다. 그는 좀 더 머물면서 죽은 자를 일깨우고 부서진 것을 다시 이어 붙이고 싶다. 하지만 저 낙원으로부터 폭풍이 불어와 그의 날개를 놔주지 않는다. 폭풍이 너무 심해 천사는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 없다. 이 폭풍이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로 그를 쉬지 않고 밀어붙인다. 그러는 사이 그 앞에 쌓여 가는 폐허는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 폭풍이.

<역사 개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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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지 연장을 빠짐없이 갖추고도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고도 물고기를 잡지 못할 수는 있지만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지 않고도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로써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는 것은 사람이지만 물고기를 잡고 잡지 못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음을 알겠습니다.<황극경세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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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치의 최고의 불가사의가, 사람들이 마치 구원을 위해서 싸우는 것처럼 노예상태를 위해 싸우며, 한 사람을 찬미하기 위해 자신들의 혈기와 일생을 소모하는 것을 수치가 아닌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기만의 상태에 잡아두고, 허울 좋은 호칭의 종교로써 그들을 꼼짝 못하게 억제하는 두려움에 덮어 감추는 것이라고 해도……"(<신학정치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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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 방식을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 진리의 과정은 어떤 '결정'으로부터 유래하는가? 이제부터 사건적인 잉여적 부가물의 관점에서 상황에 관계하려는 결정으로부터이다. 이를 충실성이라고 부르자. 사건에 충실하다는 것은, 이 사건이 잉여적으로 부가되는 상황 속에서 움직이면서 사건'에 따라' 상황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고는 실천이자 입증이다.) 물론 이것은 상황 속에서의 새로운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을 발명하도록 구속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사건은 상황의 모든 정규적 법칙들 밖에 위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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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

었다데 우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으리니, 활짝 피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의,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 '찬미가'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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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실재는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존재 안에 존속하고자 노력한다.

<에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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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비구들아. 나는 너희에게 아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 하여 정진하도록 하라."(대반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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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런 것'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서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요. 적어도 '그런 것'에 대해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언어로 의견을 밝히도록 준비해두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변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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