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을 읽으면서 루카치를 잊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네요. 루카치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한가득 물음표를 안겨주는 사람인데. 루카치가 '감정교육'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좀 감을 잡아보려고 애를 썼다고 하는 것이 맞겠네요. 한편으로는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이렇게 문학을 평론한다는 작업이 뭘까하는. 실은 조금 짜증이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뭘 이렇게 분석하면서 읽지?

 그런데 루카치는 '대(大) 서사문학의 형식들에 관한 역사철학적 시론'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제가 붙은 『소설의 이론』이  "세계의 상태에 대한 항구적인 절망의 기분에서 생겨났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구상한 해는 1914년 여름입니다.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 발발, 그리고 전쟁을 지지한 사회민주당의 입장이 좌파 지식인에게 끼친 영향이 이 연구서를 쓰게 만들었다."라고 말하는데 저 좌파 지식인이 바로 루카치입니다. 이런 정치사회적 사건 속에서 탄생한 문학비평서(?). 절망적 기분에서 썼다는. 도대체 이건 뭘까요? 이 관계는 뭐죠? 흠...

 문학의 'ㅁ'도 모르는 저는 참으로 저와 멀었던 고전 소설들을 이번에 읽으면서 문학이 뭔가 부터 문학을 평론한다는 작업은 또 뭔가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이야기 속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다시 읽다가 그가 문학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초입에 나오는데요. '문학'이란 읽고 쓰는 기법 일반을 말한다는군요. 현재 우리가 보통 말하는 '문학', 즉 언어예술 작품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의미는 18세기가 되어야 나타난다구요. 물론 루카치가 '읽고 쓰는 기법 일반'으로서의 '문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아마 보통 우리가 말하는 '문학'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고 그가 주목하는 것은 문학 중에서도 대서사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죠.  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루카치의  '총체성'이라는 개념이 그가 찬양해마지 않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 여실하게 보여질 듯 한데요.『소설의 이론』에 등장하는 근대소설들은 그 여정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을 평론한다는 작업. 사사키가 소개한 18세기 이전 '문학'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그 역시도 문학이 됩니다. 읽고 쓴다는 작업. 이건 또 뭘까요? 질문들만 늘어갑니다. 수경이 말하길 직접적으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사상서 같은 텍스트와 달리 문학작품,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 같은 것은 다 읽고 난 다음에 비로소 독자가 해야할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다 읽고 나서는 그렇게 가시적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 전혀 문자로 가시화되어 있지 않은 것, 그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라구요. 문학을 평론한다는 건 그런 걸 읽어내는 작업이 아닐까하구요. 루카치가 아니었으면 그저 주인공이 어땠네, 스토리가 저땠네, 이런 이야기만 했겠죠. 그런 면에서 루카치를 통해 소설을 읽는 일이 꽤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암튼 도스토예프스키까지 읽으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알 수 있을까요? ^^;;


   '감정교육'으로 가보면 도대체 이 지리한 이야기는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초반의 지루함을 단번에 날려주는 대반전의 사건이 1부 끝에 나오긴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프레데릭이 유언없이 죽은 백부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는 대사건이 일어나죠. 그리고 고대하던 파리로의 재입성. 그가 사모하는 아르누 부인과의 재회. 그런데 환장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계에 진전은 없습니다. 아니 이제 돈도 있는데, 왜? 그의 마음 속, 상상 속에서만 그녀와의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루카치는 이런 소설의 유형을 '환멸의 낭만주의'라고 이름붙였습니다. 『돈키호테』로 대표되는 바로 그 전 시대의 유형인 '추상적 이상주의'와는 달리 외부세계에 대해 영혼이 큰 경우가 바로 이 유형입니다. 외부세계보다 영혼이 협소한 유형의  '추상적 이상주의'의 주인공은 외부세계로 모험이나 여행을 떠났더랬습니다. 전 주에 읽은 발자크의 『고리오영감』도 이 유형의 소설이었죠. 이 유형의 등장인물들은 외부세계와 갈등을 일으킵니다. 19세기에 오면 "삶이 영혼에 제공할 수 있는 운명들보다 영혼이 더 넓고 더 크게 구상되어 있는 데에서 생기는 불균형이 더 중요하게 된다"고 합니다. 『감정교육』의 프레데릭은 외부세계와 갈등하고 싸우는 인물이 아닙니다. '추상적 이상주의'의 인물들이 밖으로 향하는 능동성이 특징이었다면 '환멸의 낭만주의'의 인물들은 외적인 갈등과 투쟁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피하는 경향, 영혼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순전히 영혼 속에서 처리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루카치는 말합니다. 프레데릭이 그런 유형이죠. 현실에서 그는 행동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아르누 부인을 사모하나 고백은 하지 못하고 주위만 빙빙 돕니다. (2권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요.) 조금의 진전도 없는 애정관계. 오직 그의 상상속에서만 꽃피는 애정이라고 할까요.

 이 '환멸의 낭만주의'에서 '시간'이라는 것이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일단 다음 시간에 2권까지 다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었죠.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긍정성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봅시다요.



다음 시간에『감정교육』2권까지 다 읽고, 루카치 '환멸의 낭만주의' 부분을 다시 읽어 옵니다.공통과제 써 오시는 것 잊지 말구요. 환멸, 서정성,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읽고 써오시면 됩니다.

공지 해드린대로 10월 18일은 수경의 강의와 규문의 가을나들이가 있어서 쉽니다.

25일에 만나요. ^^


11일 발제 같이 올립니다.

 

  • 수경 2013.10.14 12:47

    키워드에서 감성이 아니라, 서정성이었던 듯요. / 갠적으로는 이번에 특히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감정교육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겉핥기나마 전에 공부한 베르그손의 지속이랑,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기억을 어거지로라도 끄집어내봐야겠어요. 그럼 이번주 말고 다음주에 만나요. 한 주 방학이니 더 꼼꼼히 읽고, 반드시! 공통과제 해옵시다아~

  • 영은 2013.10.14 13:13
    넹~ 서정성으로 고쳤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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