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9 14:28

미술특강 5강 후기

조회 수 580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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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미쇼sans titre 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름도 생소한 이 작가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길에서 혹은 들판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도 같고, 혹은 석양 무렵에 자유롭게 어떤 동작들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그림인데 그려진 것들이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일상적이고 반복된 몸짓을 넘어선 것 같기도 합니다. 저런 움직임은 영상으로 담으려 해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오직 회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

앙리 미쇼는 생전에 여러 병을 앓고 그 고통을 언어화 하는 작업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주로 시를 썼지만 이후에는 회화로 돌아섰다고 하죠. 환각제를 복용한 뒤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서 벌어진 일을 실험으로 보고하는 작업도 했구요. (인터넷을 뒤져 보니 시집 물결’(태학당)바다와 사막을 지나’(열음사)가 있지만 모두 절판됐네요. --)

앙리 미쇼는 신체를 관통하는 고통을 자기 안에서 이행하는 힘으로 봅니다. 나에게 발생하는 고통의 과정을 끝까지 관하여 그것을 자신의 언어와 회화로 표현하는 거죠.


내 병은 내가 침대 위에서 꼼짝 못하도록 선고한다.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내가 불안정한 상태에 이르렀는데 아무도 어떤 조처를 취해주지 않으면, 난 스스로 행동을 개시한다. 나는 내 머리통을 박살내어 내 앞에 고르게 펼쳐놓는다. 그리고 그것이 평평하게 다져지면, 나는 내 기마대를 불러낸다. 누렇고 단단한 대지 위에 명쾌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병대가 즉시 말을 속보로 달리게 하면, 말은 앞발로 땅을 걷어차면서 뒷발질을 해댄다. 이 소란, 이 다양하고 명쾌한 리듬, 전투와 승리를 갈구하는 열기는 침대에 못 박힌 채 단 하나의 동작도 취할 수 없는 영혼을 황홀하게 한다.-침대에서-


고통의 순간에 자신의 아픔을 이처럼 다양한 언어로 펼쳐낼 수 있다니. 정말 한 병치레 하는 저에겐 너무도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가령 두통만 해도 그렇죠. 앙리 미쇼의 그림을 보며 제 두통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요. 뒷목은 누군가가 줄다리기를 하듯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것 같고, 그러다 앞머리가 아프면 또 누군가 퉁퉁 치는 것 같고, 가끔은 온 머리가 화끈거리기도 하고, 자다가 몸이 저릴 땐 제 몸 안에서 꿈틀대던 것들이 갑자기 얼음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통증을 하나하나 글로 적오 보니 하나의 통증이나 아픔은 없더군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오직 아프다’, ‘고통스럽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이 고통을 어떻게 다른 언어와 상상력으로 변환시킬 것인가.

솔직히 병과 친구가 되라거나 그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라고 하면 이상한 반발심이 생깁니다. 아파 죽겠는데, 잠도 못 자는데, 이런 병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아픔을 아픔이란 말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에게 그건 억지스러운 요구입니다. 그런데 이 병과 고통이란 것을 앙리 미쇼 식으로 내 몸에서 이행되는 으로 이해하자 오히려 납득이 되더군요. 고통을 끝까지 관하라는 말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좀 감이 잡히구요.

지금까지 저를 진짜 힘들게 만들었던 병이 주는 고통은 실은 그 고통에 대한 저의 표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몸이 아플 때 우리가 취하는 행위는 정말 습관적입니다. 몸이 아프다-> 통증을 완화시켜야겠다-> 약을 먹어야 겠다... 그러다 결국 우리의 고통을 의사에게 내맡겨 버리는 걸로 끝내죠. 앙리 미쇼의 글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단 한 번도 이 고통 또한 나의 일부라 생각지 못했던 걸까. 왜 이 고통을 없애려고만 했을까. 결국 고통에 대한 저의 표상 때문이었죠. 고통을 없애버려야 할 무엇, 일상을 파괴하는 주범, 외부로부터 약을 복용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이러한 온갖 표상이 우리의 사유와 신체를 굴복시켜버린 겁니다. 이거야 말로 완벽한 패배죠.

앙리 미쇼처럼 고통을 제 신체를 지나는 힘으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지금 내 정신과 신체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잘 관하고 다른 식의 상상력을 발휘할 힘으로 전환한다면, 이 지긋지긋한 병과 고통은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쓸만한 동거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앙리 미쇼가 단순히 언어와 그림을 통해 단순히 자신의 고통을 묘사하고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고통을 응시하고 환각제를 마시며 실험을 하는 동안에도 그가 의도한 것은 자기를 비우는 순간 나타나는 또 다른 힘의 발견이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감각과 사유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에 대한 작업이었죠. 언어의 극단에서 회화로 돌아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온갖 언어적인 형상들에 얽매인 것들을 무화시키기. 환각제를 복용한 뒤 그가 쓴 글을 보겠습니다.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던 그가 환각제까지 복용해 가며 하고자 했던 작업이 무엇인지, 그러한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환각제는 근거들을 변조시킨다./감각이 의거하는 근거/그 감각이 세계를 인지하는 근거/존재에 대한 일반적 느낌이 인지하는 근거, 그 근거들이 뒤틀린다./모든 것을 어긋나게 하는 감성의 거대한 재편성이 이루어지리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힘, 몸을 관통하는 온갖 통증들과 경련을 언어만으로 표현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이럴 때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어떻게 보이는 것으로 끌어들일지 고민하죠. 여행가로서의 앙리미쇼는 동양의 사상에서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노장과 불교를 공부했고, 특히 중국의 서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Henri+Michaux+-+movimentos.jpg

Poesia Visual


사실 지난 시간에 앙리 미쇼와 함께 미불이라는 북송 대의 화가도 함께 공부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동양화의 세계는 안개와도 같아 막상 글을 쓰려 하니 제 언어로 전달이 안되더라구요. 아직 잘 와 닿지 않는 것도 있구요. -- 다만 동아시아의 그림이 작자의 뜻을 그리는 것이란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건 잠재되어 있는 것, 가령 보이지 않은 에너지 같은 것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리려면 작자가 쓴 붓이 산더미와 같이 쌓일 정도가 되고, 가슴 속에는 오만 권의 책이 담겨야 한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려면 화가의 어마어마한 신체 단련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거죠. 작자의 신체와 정신의 역동성이라야 형태상의 역동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겁니다. 서예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씨 하나하나가 작자의 신체와 정신의 힘으로 완성됩니다. 앙리 미쇼가 서예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이러한 것이겠죠. 그가 그린 서예와 같은 그림을 보면 사실 그건 한자가 아닙니다. 앞에서 보여드렸던 그림처럼 그의 서예 그림도 어떤 힘들이 표현된 겁니다. 서예를 잘 모르니 그게 어떤 힘들을 어떻게 표현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한 작가의 삶과 그림을 글로 옮겨 적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이번 학기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결국에 예술가가 해야 하는 건 세상의 온갖 상식과 표상들과의 싸움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앙리 미쇼가 말한 자신의 감각과 사유의 근거 같은 것들과의 싸움 말이죠. 그런데 이러한 근거란 것이 결국엔 자신의 상식과 감각을 형성하는 것들이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예술가의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는 거죠. 자기를 비우고 끊임없이 새로운 힘들을 발견하는 것

요즘 침을 배우고 있는데요. 맨날 아프다며 의사 앞에서 호소만 하던 제가 막상 다른 사람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침을 놓고 보니 참 이상하더군요. 병자라는 타이틀을 쉽게 떼지 못했던 제가 누군가를 치료하는 자도 될 수 있다니. 제 병이 고쳐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몸에 대한 새로운 앎으로 인해 제 역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에서의 변화 때문에 재미있게 배우고 있습니다. 몸에 대해 일자무식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앎이 잘 흡수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작업에 있어서는 제 자신을 비워내기가 참 쉽지 않거든요. 예술가가 표현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전제가 아직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어섭니다. 그래서 팀원들과도 맨날 부딪치고요. 예술가가 예술한다는 자의식을 쉽게 떨치지 못해 오히려 제대로 된 작업을 못하는 것. 때문에 이번 학기에 미술강의를 들으며 참 생각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구요. --

  • 신자 2014.08.29 15:36

    미쇼에 영감받아~ 이제 질병과 친구하는 거? ㅎㅎ

    앞으로 너의 싸움을 기대할께^^

  • 효진 2014.08.29 23:12
    친구 안할꼬라니까. ㅋ 늘 지켜봐야 하는 동거인! 그나저나 오늘 마지막 강의 듣고 나서야 핵심을 죄다 놓쳤다는 걸 알겠네. ㅡㅡ 부끄러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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