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7 18:29

미술특강 4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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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술을 본다고 말한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다라고 말할 때 쓰는 단어도 (볼)관에 (볼)람 자이다. 보고 보는 것. 이렇게 거듭 말하는 ‘본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지금 내 눈에 바로 맺히는 상, 캔버스 화면 위에 그려진 어떤 것 그것이 본다는 행위의 전부일까. 미술을 보면서 이 본다는 것의 의미가 모호할 때가 많다. 시각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보이는 것만 보아야 할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아야 할까. 어디까지 보아야 할까, 무엇을 보아야 할까. 미술, 크게는 예술을 본다라고 했을 때 마주하는 난해함은 대체로 이미 현실에서 익숙한 풍경이나 인물보다는 뜻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추상 작품을 접했을 때 발산된다.


 사람이 있고, 나무가 있는 그림 한 점이 있다. 그 그림이 소묘인지, 유화인지, 질감이 어떤지, 재료의 농도가 어떤지는 대개 먼저 고려되지 않는다. ‘어떻게’보다는, ‘무엇을’ 그렸느냐를 먼저 염두에 두게 된다. 내가 현실에서 보았던, 이미 눈에 익숙한 실체가 화면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바로 인지하고 그 뜻까지도 이미 익숙한 개념 안에서 짐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술을 보는 방식은 대체로 이러하다. 본다는 것의 범주를, 일차적으로 접하는 신체 감각인 시각과 개인의 경험치 내로 한정지었을 때 예술은 한계에 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초월하는 것, 물론 시각적인 것은 예일 뿐이고, 고정된 것, 결코 불변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무엇, 시대상 제재된 막다른 골목으로부터의 비상, 그것이 바로 추상화가 나오게 된 지점이 아닐까. “자신이 보는 것을, 자신이 믿는 것을, 나아가 자신을 무화시키지 않고서, 세계를 긍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굳이 세계를 긍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식의 초월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 같은 시대”를 바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일어난 추상실험의 전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폐허, 즉 파괴가 일어난 황무지에서 다시 예술이 시작되었다.


 그 19세기 말에 러시아에서 두 작가가 태어났다. 추상화를 탄생시킨 혁명가 칸딘스키와 추상화를 극단으로 끌고 간 말레비치. 내가 알기론 19세기 초부터 유럽은 문화적 부흥기가 일었던 때이자, 예술 간 상호작용이 경계를 허물고 정점에 달할 만큼 빛난 시기였다. 회화를 음악적 차원으로 이끈 쇤베르크와의 만남도 바로 이러한 연장선상이 아닌가 싶다. 칸딘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작품은 무언가가 지각될 때 발생하는 변화들을 표현해야 한다.” 즉 “예술가의 임무는 지각하는 주체와 지각되는 사물들을 ‘넘어’ 변화와 강도에 입각한 잠재적 운동과 생성을 포착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최근 작업하는 책 중 하나가 디자인서인데, 그 저자가 그런 말을 했다. 글은 머릿속에서 즉각적으로 표출된 이미지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때론 단어로 구사하는 것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측면, 그런 맥락에서 칸딘스키가 추구하려 했던 부분이 이해된다.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마음의 울림, 그것을 시각을 통한 울림으로 재현하려 했던 이가 칸딘스키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처럼 음악의 흐름을 띤다. 곡선과 직선, 색상의 경계가 모호하게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는 느낌이다. 그의 그림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오로지 감각을 통해서만 몸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이에 반해 말레비치의 그림은 뭐랄까, 뭔가 사람을 압도하는 묵직함이 있다. 실제로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 화면 앞에 서면 기가 푹 눌리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게다가 백색 바탕 위에 턱하기 올려놓은 투박한 원과 네모는 보는 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감흥은 고사하고 머리가 멍해진다. “우리의 사회질서 속에서 현상의 밀도는 아직 백색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 도달한 것은 오직 미술 분야, 즉 절대주의, 검정색과 백색의 정사각형 안에서 만이다.” 말레비치의 이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정신이 멍해진다. 어떤 현상들이 존재하는 우주공간이 백색이며, 이것이 말레비치가 말하는 절대공간이라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만능 필기도구인 화이트를 생각하면 될까. 싹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점의 상태. 시작과 끝이 가능한 상태. 그걸 백색의 공간으로 이해하면 될까. “모든 것의 잠재성이자 제로의 색채인 백색”. “참된 것을 보기 위해 화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백색으로 침잠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레비치의 말.


 보는 것을 파편화하고 직관하는 데 중점을 둔 이 두 작가의 세계는 낯선 만큼 좀 더 알아가고 싶다. “일상의 미화된 감각을 전복”시키고자 한 두 작가의 예술 철학. 감각을 전복시킬 때 예술은 예술로서 더 큰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흐름을 깨는 것, 내 몸에 흐르는 전류가 역류하는 듯한 짜릿함. 그래서 이 둘의 작품이 더 매력이 있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그 둘이 했던 말로 후기를 마친다. “나의 작품은 그 자체로 삶이다. 작품이 태어나고 죽는 그 자체의 생명이 삶이기 때문에.”


 강의는 신 나게 들어놓고 기억의 고삐가 풀려 후기를 잊고 있었습니다. 이 죄인을 부디 용서해주시기를 바라며...ㅠㅠ 선생님의 강의안을 더듬거리며 뒤늦은 후기를 쓰긴 했는데 결국 제 개인적인 의견 위주로 정리를 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는 너무도 행복한데, 글 쓰는 건 왜 이리 어려운 걸까요. 그럼, 이틀 뒤 금요일에 뵐게요.

  • 신자 2014.08.28 14:22

    어쨌든 늦게라도^^

    미술은 볼 때는 좋은데 뭐라도 써 보려고 하면 참 어렵죠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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