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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연, 사건, 길들 : 잭슨 폴록 VS 장 뒤뷔페> 후기

 

앙드레 바쟁은 <영화란 무엇인가>에서 클루조의 영화-피카소의 비밀-를 이렇게 비평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작자 자신이나, 우연이나 질병이나 죽음에 의해 많건 적건 자의적으로 절단된, 창조적 유출의 수직적 단면에 다름아닌 그림밖엔 알지 못했다. 그러나 클루조가 마침내 우리에게 드러내보이고 있는 것, 그것은 회화’, 즉 시간 속에 존재하고, 자신의 지속과 자신의 생명을,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죽음도 지니는 한 폭의 그림인 것이다.” 강의에서 이 비평을 듣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항상 그림을 볼 때 나는 완결된 것을 본다고 생각했다. (실은 완결된 것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난 지금 완결된, 끝마친 그림을 보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까.) 그러나 그림 한 점에는 하얀 캔버스에 툭 찍어진 시작부터 작가가 손을 놓은 끝도 있는 것이다. 시작과 끝 사이의 무수한 중간과정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회화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강의에서 이 피카소의 비밀이란 영화를 잠깐 보았다. 영화는 말없이 피카소의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만을 나열했다. 하얀 바탕에 툭 하고 어떤 선이 그어진다. 왜 하필 그 곳에서 시작했을까? 이 시작은 피카소의 계획 속에 있었을까? 아니면 그 날 그 시간에 피카소의 감성이 우연히 캔버스의 그 지점에 꽂힌 것이 아니었을까? 그 선이 다른 선들을 낳는다. 형태가 생기는가 싶더니 또 지워진다. 이런 과정들은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일까? 3강은 이처럼 회화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우연과 사건 그리고 길들에 관한 것이다,

잭슨 폴록이 본격적으로 뿌려대기 전에 미국 미술은 디에고 리베라풍의 회화가 지배적이었다. 세계 미술판의 대세적인 흐름은 유럽의 초현실주의. 폴록도 43년 이전 작업은 다소 초현실주의적이었지만 구겐하임 집에 그렸던 벽화가 하나의 방향이 되어 이후 그는 그린다는 행위를 지우고 드립핑 기법에 의한 전면회화 작업을 한다. 폴록의 작업 영상을 보면 그는 아무 생각조차 없이 뿌려대는 것 같다. 폴록의 작업은 그렇다면 완전한 우연일까? 그의 작품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해보면 그가 계획적으로 어떤 패턴을 갖고 작업을 했다는 것이 보인다. 동시에 (어떤 계획하에서 작업을 했겠지만) 기법 자체가 뿌리기와 흘리기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롯되는 우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 우연한 흐름에서 또 계획 자체가 바뀌기도 할 것이다.

강의가 재밌어서 많이 웃기도 웃지만, 이번 3강 중 가장 빵 터졌던 부분은 역시 장 뒤뷔페의 이 한마디! 소화불량 환자들의 예술, 관절 환자들의 예술이 없는 것처럼 광인들의 예술이라는 것도 없다.” 어찌나 통쾌하던지! 뒤뷔페는 1945년 스위스 여행 중 스위스 정신병원에 보관된 환자들의 조형물을 접한 후, 이를 수집하고 아르 브뤼라 명명하고 1949년에 최초 전시한다. 이 전시도록의 선언문이 <문화적 미술보다 나은 아르 브뤼>. 여기서 알 수 있듯 뒤뷔페는 문화적 미술(제도화된 미술이라고 해야 할까?)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고전미술이나 유행미술의 상투적 방법에 의거하지 않은 자신의 고유한 순수 자원으로부터 이끌어낸 미술, 즉 자신의 고유한 충동만을 출발점으로 한 순수하고 원초적인 예술활동을 지향한다.

뒤뷔페의 작업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그가 그린 풍경화는 배경과 인간과 건물 등 모든 것의 구분이 없다. 뒤섞여있다. 지금까지 고전적인 풍경화는 자연을 대상화한 풍경화였다. 극히 인간중심주의 사고다. 누드 또한 아름다운 여성 나체가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린 누드는 형태를 깨버린 누드다. 아름다운 여성이 누워있는 누드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는 아름답지 않다. 우리는 여성이 아름다운지를 잊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망이라는 것이 실존의 중심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걷어내고 남아있는 본질성에 집중했다. 이질적 재료들을 혼합해서 생겨나는 반발들이나 협력들을 방치해서 그림자체에 스스로균열이 생기게 놔둔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이것을 길이라고 보던지, 강이라고 보던지, 실오라기라고 보던지 뒤뷔페는 상관하지 않았을 것 같다. 뒤뷔페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캔버스를 물질적으로 변형시켰다.

강의는 점점 더 재밌어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미술 언저리에 있는 내가 이런 대가들을 볼 때 가장 감동받는 것은 역시 그들의 엄청난 양의 습작들이다. 반복해서 같은 주제를 그리는 것은 기본이고 모자란 부분(모자란 부분이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을 계속 연습하기도 한다. 갓 신내림 받은 무당처럼 홀려서 그림만 그리는 작가에게 재능을 얘기한다는 것이 오히려 무례한 얘기일 것이다. 이런 대가들의 우연은 당연히 나의 우연하고는 다르다. 내가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가 우연히 괜찮은 수준과 이런 대가들의 백 개의 습작을 거쳐 생겨난 하나의 우연이 어떻게 다르지 않을 수 있나. 대가들의 우연은 그들이 무수히 연습한 그 손에 새겨진 무의식 속의 계획이지 않을까? 참 멋지다.

  • 채운 2014.08.04 12:47

    으흠, 덕순여사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후기야~

    한 가지 수정사항. '잭슨 폴록이 뿌려대기 전', 그러니까 30-40년대 미국미술은 디에고 리베라 풍이 아니라 벤튼 류의 지역주의 미술에 유럽에서 건너온 초현실주의, 앵포르멜(비정형) 등이 공존하고 있었지. 잭슨폴록은 뉴딜사업의 일환인 벽화작업을 했는데, 그런 벽화 사업이 멕시코 벽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거라는 말씀.^^

  • 김덕순 2014.08.05 17:13
    앗!! 제가 쓴 글씨를 제가 봐도 모르겠어서 ;;; 필기보다 더 엉망인 제 기억을 더듬어서 쓰다보니 잘못썼네요. 우헤헷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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