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 고고씽 서양철학 2<네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

2014.4.27.

채운쌤 강의

<2> 세계의 근원을 묻다 : 밀레토스 학파와 피타고라스 학파

자혜 후기

   

 

1 잔상들

일단 익숙한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름은 늘 익숙하면서도 낯섭니다. 분명 어디에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어떤 일을 한 사람의 이름이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고, 분명히 아는 이름인데 입으로 말해보라고 하면 망설이게 됩니다. 뭔가 발음하다가 단어가 꼬일 것 같아서요. 그런데 오늘은 그나마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름들이 많은 건 꽤나 반가운 일입니다. 왜 이 사람들의 이름이 익숙했을까요.

제가 읽은 대부분의 화학 서적에서는, 도입부에 탈레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만약 제가 화학에 관한 정말 많은 책을 읽었다면 대부분의 화학에 관한 책들은 갖가지 원소설을 주장한 그리스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을 텐데, 그토록 많은 책을 읽지 않은 관계로 실제로 대부분의 책이 그러한지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본 대부분의 화학 책에서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명제를 주장한 탈레스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화학서적은 그의 주장이 왜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다른 주장이 그 이후에 어떻게 등장했는지가령 돌턴의 원자론이라던가그리고 어쩌다가 우리가 지금과 같은 원자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탈레스의 시대로부터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흘렀는데도 만물의 기원은 하나라는 가설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변용된 생각도 많았습니다. 연금술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여전히 판타지 소설 속에는 그런 세계관이 무궁무진하게 많이 등장합니다. 많은 판타지 소설 작가들이 마나같은 이름을 빌어서 단일 원소 기원이라는 설정을 자주 차용합니다. 만물의 기원인 무언가가 있으면 세상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설명하기가 엄청 수월해지거든요.

그런데 정말 알 수 없는 건, 세상의 기원이 하나라는 말이 꽤 일반적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많이 들어와서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 된 것인지가 도무지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만물의 기원은 하나라는 주장이 어디에나 있을 법 하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의 기원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는 동양 철학서들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제 머리가 너무 서구화되어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만물의 기원이 하나라는 게 보편적인 생각인 건지,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철학에 관한 신비적 직관이 모두에게로 확장된 것인지는 묻는다고 해서 답을 알 수 있게 되는 종류의 질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가 있습니다. 굳이 제가 공대생이라서가 아니라, 수학이라는 과목을 배운 모든 이들이라면 피타고라스가 정말 낯익은 이름일 겁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제외한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길이의 제곱과 같다정도로 표현됩니다. 수식으로는 더욱 간단한 정리는, 기하학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명제가 되고, 무리수의 탄생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2 질문의 시작

수업에 늦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늦어서 가는 길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비도 추적추적 오는 듯 안 오는 듯 내리고. 도착한 다음에는 의자도 조심조심 빼서 앉았는데 별로 소리가 작았던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서 앞부분의 강의를 듣지 못하고 강의안은 눈으로만 훑어보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질문을 하기위해 창안되었다.”(에릭호퍼)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저렇게 되어도 한가지요, 이렇게 되어도 한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적에는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을 때에는 태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며, 올 때에는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갈 때에는 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무너지고 안 무너지는 일에 대해 내 어찌 마음을 담아 두겠는가.”(열자)

읽으면서 습관적으로 위에 옮긴 내용에 밑줄을 그었는데, 그냥 있어 보이는 문장들 밑에 중2병이라도 걸린 듯이 밑줄을 친 건지, 아니면 진짜 고민을 하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써 보려고 옮겨 적기는 했는데, 계속 망설이게 돼서 그냥 인용문들을 옮겨 적기만 합니다.

  


  

3 신비적 직관

착각인지 아닌지 모르는 어떤 생각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설정도의 단어로 표현하는 게 바람직할 겁니다. 이 중에 어떤 가설은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주장에 대한 근거도 지나치게 신비롭습니다. 솔직히 자연철학자들의 요약된 생각, 즉 한 문장으로 줄여진 생각들을 읽으면 이런 주장은 나도 하겠네 싶을 때가 있습니다. (. 2! ㅇㅅㅇ)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말을 막 던지는 건 쉬운 일 같이 보입니다. 저 역시 하나 던져보라고 하면 지금도 할 수 있어요. 물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집어넣거나, 하나를 두 개로 늘이는 식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겁니다. 물론 중요한 건 말을 던진 다음이겠지만, 말 자체를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너무 패기 있게 말을 막 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저는 이런 자연철학자들의 사상을 공부하는 의의가 어디에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무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장난처럼 그 문제를 생각하다가 이번 기회에 와서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작년 이브에서도 자연철학자들에 관한 얘기가 있었죠.

다만, 어쨌거나 이들의 사상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무엇이라 말하는지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그 당시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그들의 사상이 없고서는 현대의 철학을 설명할 재간이 없어서 그런 건지 궁금해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들이 사상의 시초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에 관해 배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서양철학은 그리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강의를 들은 후에, 발전이라고 우리가 부르는한 과학 위에 있기 때문에 제가 볼 수 없는 것들을 그들은 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비과학이라 치부하는 것들 속에서도 그들은 저보다도 자신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고, 우리 은하가 얼마나 거대한지 아는 우리보다도 더 넓은 우주를 보고 있었을 겁니다. 확신할 수 없는 문제기는 하지만, 마치 탈레스가 그리고 아낙시만드로스가 근원은 물이라고, 아니면 아페이론이라고 확신했던 것처럼 저도 약간의 확신을 가지고 말해봅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영원히 과학을 손에서 놓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압니다. 니체가 철학적 사유의 발걸음을 받쳐주는 것은 하나의 낯설고 비논리적인 힘, 즉 환상”(니체, <그리스 비극시대의 철학>)이라 말했더라도, 저는 그 말이 과학을 배재한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과학 역시 사유의 폭을 넓혀주는 일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4

갑자기 강의를 두 시간 정도 듣고 굉장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후기를 쓰고 있나 싶은 생각과 걱정이 스쳐 가는데, 사실 중요한 건 이런 다른 생각이 들었다는 자체가 아니라 여기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일 겁니다. 강의야, 5년 전에도, 지금도 일 년에 몇 번 정도는 언제나 계속해서 들으니까요. 쓰고 있는 후기와는 무관하게 제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뇌에서 나도 모르는 새에 잊어버렸나 하는 회의감도 드네요. 실존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이곳에 내가 있음을 긍정하는 것 등의 유물론적 접근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작년 이브에서도 했었던 것 같은데, , 계속 잊어버리면 그만큼 새롭게 볼 수 있는 거라고 이해해도 되는 거려나요. 최대한 긍정적이게.

채운쌤의 강의를 들으면서, ‘아쿠스마티코이보다는 그래도 마테마테코이와 비슷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남은 시간도 열심히 듣겠습니다. 무속성이라 불리는 것이 생성이라는 운동을 하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 기대하고 있습니다!

  


  

 

PS. 써 놓고 다시 읽어봤는데, 길이만 길지 강의에 대한 얘기는 진짜 없네요. 으으 다시 쓸 수도 없고.rabbit%20(5).gifrabbit%20(1).gif




  • 태람 2014.05.01 16:54

    공대생의 철학수업 후기..재밌다! ^^

    자혜가 말하는 "영원히 과학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게 뭘까 궁금해진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우린 어떤 종교성이나 철학적 사유의 흔적을 엿볼 수 있잖아.

    과학은 과학 철학은 철학으로 명확히 경계를 그을 수 있는 문제일까. 그 둘이 실은 중첩되어 있음을 자연철학자들이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앞으로 더 고민해보도록 하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청소년] 철인 3종 프로젝트 시작합니다! 수경 2015.07.04 1340
공지 [고고씽]세미나 제안합니다! 15 인석 2014.09.29 12192
59 파울 클레 2강 후기입니다! 4 file 현옥 2014.10.26 2575
58 스피노자 첫번째 시간 후기 1 현옥 2014.01.15 2547
57 스피노자 번개 세미나 안내 1 jerry 2013.12.27 2441
56 스피노자 7강 자유와 지복, 후기 3 혜선 2014.03.01 1491
55 스피노자 6강 후기요~ 1 혜원 2014.02.24 1880
54 스피노자 2/13 5강 수업후기입니다 3 윤차장 2014.02.14 2110
53 미술특강 6강 후기 1 동하 2014.09.09 1943
52 미술특강 5강 후기 2 효진 2014.08.29 580
51 미술특강 4강 후기 1 최미혜 2014.08.27 1939
50 미술특강 3강 후기 올립니다~ 2 김덕순 2014.08.04 440
49 미술특강 2강 후기입니다. 인석 2014.07.28 893
48 미술 1강 후기요~ file 신자 2014.07.22 608
47 늦은 후기요^^;; 5 소현 2014.01.26 2373
46 고고씽-원전읽기모임- 두 번째 시간 공지입니다. 10 인석 2014.10.20 3588
45 고고씽 시즌3 후기 - 첫 번째시간, 플라톤<국가>- 1 인석 2014.08.08 3522
44 고고씽 서양철학1탄 4강(14.03.02) 후기 1 김완수 2014.03.10 569
43 고고씽 서양철학 첫번째 시간 후기 1 효정 2014.02.15 3469
42 고고씽 서양철학 3탄 6강 에피쿠로스 학파의 자연주의 (후기) 3 김호정 2014.09.19 2069
41 고고씽 서양철학 3탄 4강 후기 (2014.8.24) 1 지호 2014.08.26 1711
» 고고씽 서양철학 2탄 <2강> 세계의 근원을 묻다_후기 1 자혜 2014.04.30 62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