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무엇일까요. ‘철학’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스피노자, 푸코 등등 이미 귀에 익숙한 이름들의 나열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연상됩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했는지는 몰라도 철학자라는 것쯤은 누구나 압니다. 그들이 말했던 철학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어려운 말들의 조합으로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왜 어렵게 느껴질까요. 일전에 들었던 한 강의에서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은 바가 있습니다. 낯설기 때문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어렵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정보처럼 철학의 개념을 반복적으로 접해 친숙해진다면 더는 철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고고씽 서양철학 2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느껴지는 지루함 때문에 이 공부를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하려" 한다는 문제제기에 매료되어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체 '철학함'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이 사람을 철학하게 만들까요. 그렇다면 다시, 철학이 무엇인지 되짚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의 글들은 채운 선생님의 강의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플라톤은 철학자의 파토스를 ‘경이(놀라움)’로 정의한다. 일상적인 감각 현상들이나 자연현상에 대해 경이를 느낀 자는 당혹감과 의문(철학적인 난제)을 품게 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로고스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철학은 로고스에 의한 합리적 추론의 산물이다. 이러한 철학이 적극적인 개념을 띠게 되는 때는 소크라테스에 이르러서이다. 그 개념이란 ‘자신의 영혼을 돌보기 위한 인식’으로, 이는 철학에 대한 윤리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각자의 혼이 최선의 상태가 되도록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으며, 또 다른 말로 너 자신의 존재 방식이 최선의 상태가 되는 것은 로고스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시대는 지금 철학하고 있을까. 근래 들어 인문학 붐인 것처럼 인문이라는 단어는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인문학마저도 기업가가 주도권을 쥔 실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시대에 도대체 철학이 무엇일 수 있을까.

 

니체는 그리스인들의 철학을 이야기 하면서 제 때, 제 타이밍에 철학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철학은 오히려 행복할 때, 성숙한 장년기에, 용감하고 성공적인 장년기에 열렬한 명량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적당한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적당한 여유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여유가 있을 때를 말하며, 이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 B.C. 5~4세기 넓게 6세기에서 4세기까지의 그리스가 그렇기도 했다. 아마 그래서 철학자가 이 지역에서 많이 나왔다고 해도 부정하기에는 어렵다. 그러나 니체가 말하는 것은 이와는 다르다.

 

니체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경제적 풍요로움이 아니다. 사회가 복잡한 것이 혼란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여러 개의 가치가 공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원래 무역이 발달한 해안지역에는 여러 개의 가치가 공존한다. 전국시대가 혼란한 시기였던 동시에, 제자백가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여러 사상이 공존하는 시대였음을 말한다. 어떤 시대를 혼란하다고 말할 때 그것을 나쁘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혼란하지 않은 시대가 이상한 거다. 오늘날은 어떤 논쟁도, 어떤 가치의 공존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비슷한 정서와 목적을 두고 살아간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곧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바로 지금 이 시대이다.

 

니체가 예찬한 그리스인들의 명랑성도 ‘고통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말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굉장히 불안정하기에 인간은 굉장히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토 나는 세계를 제대로 볼 때 비로소 구토를 멈출 수 있는데, 이 고통이 지속되는 유일무이한 세계의 현존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되고, 현실세계에서 느끼는 구토가 없는 더 완전한 세상을 꿈꾸게 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없다.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생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오로지 다른 세상을 꿈꾸지 않는 자만이 이 멀미나는 세상에서의 구토를 멈출 수 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철학하는 것이다. 이 삶의 조건이 철학을 시작해야할 유일무이한 조건이다. 니체가 비극을 예찬하는 건, 비극작가가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 이 지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설정해 놓은 인간상에 따라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끊임없는 자기 비하를 한다. 현실에서 느끼는 당혹스러움에 대해 호흡을 가다듬고 그 당혹스러움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는 대신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시대는 점점 더 무기력해진다. 무기력한 것은 아픈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철학이 부재함을 말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철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반 일리치는 유목이 아닌 정주를 되찾아야 할 삶의 기술로 제시한다. 정주는 이 시대에 필요한 삶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사람은 다양한 것으로부터 양분을 흡수할 수 있을 때 철학하기가 이루어진다. 그런 철학하기는 삶에 대한 배려로 이어진다. 그리스인들은 끊임없이 철학함의 문제를 삶에 대한 문제로 인식했다. 우리의 영혼을 훈련시키고 삶의 양식을 조형하는 식의 실천이 바로 그것으로 이어진다.

 

철학-삶이라는 개념 외에 그리스철학의 특징이자 키워드는 우정이다. 데리다가 말년에 숙고한 문제 중 하나도 우정이었는데, 유명한 경구 “오 나의 친구여, 친구란 없는 것이라네.”에 대해 다른 학자들과 달리 데리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앞의 구 “오 나의 친구여”는 친구를 만들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뒤의 구 “친구란 없는 것이라네”는 친구란 없다는 것 없는 친구에 대해서 갈망함을 의미한다. 현전하지도 않고 현전하지도 않을 친구들. 다시 말하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친구, 영원히 같아질 수 없는 절대적 타자를 말한다. 그리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친구란 동일자를 의미했다. 내 뜻에 동의하는 자가 바로 친구였던 것이다. 그리스에서 말하는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것을 완전히 비튼다. 진정한 민주주의에서 친구란 나에 대해서 완벽한 타자인 존재이다.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친구. 반면, 친구가 또 다른 나라는 그리스에서의 개념에 대해 데리다는 동조하지 않았다. 내가 계속 해서 나를 재생산하고 있을 때 제3의 관점에서 나를 부숴주는 사람이 친구였고, 그런 친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정공동체인 그리스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타자를 배제한 민주주의였다. 결코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었다.

 

왜 친구가 필요한 것인가. 상대에게 존재하는 틈(해독불가능성, 투과불가능성), 상대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틈이 사물의 의미를 바꾸고, 그것은 세상을 바꾼다. 모든 것을 발생시키는 것이 바로 틈, 빈 공간인 것이다. 철학하는 이들은 늘 친구를 갈망한다. 사유라는 것 자체가 타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군인지를 드러내주는 누설자가 친구이며 그렇기에 친구가 필요하다. 철학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스승이기도 하면서 친구이기도 하다. 왜 철학에는 누군가가 필요할까. 앞으로 그것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삶으로부터 제기된 철학의 시작, 철학에 절대적인 친구라는 존재. 이것은 철학에 대해 가졌던 기존의 무거운 이미지, 철학은 삶과는 동떨어진 사유의 구성물이라는 관념을 벗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 함께 공부해야 하는지, 왜 더욱 철학을 해야 하는지. 철학에 대한 궁금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공부가 더욱 기대됩니다. 이상으로 늦어도 너무 늦은 후기를 마칩니다.

 

추신: 제가 오늘 강의에는 개인적인 일로 참여가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앞으로의 결석은 없도록 노력할게요. 오늘 강의록(녹음이라도 ^^;;) 갖고계신 분은 공유 부탁드릴게요.

  • 태람 2014.04.27 09:56

    그리스 철학자들의 말이 어렵다는 건 우리의 편견일 듯.ㅋㅋ 쌤 말대로 삶으로부터 제기된 철학이 바로 그리스 철학인 듯해요. 갈수록 흥미진진해질텐데.. 이번주에만 빠지시고 다음부터 꼬박꼬박 출석하기로 약속! 그럼 다음주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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