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6강 후기를 적고 있는 저는 모영환이라고 합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분위기에 적응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두 차례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래도 일요일 오전의 짧은 수업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정신이 맑은 때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저로서는 아직은 수업분위기보다는 지하철역에서 강의실까지 오가는 거리의 풍경과 주변 분위기가 더 새롭고 즐겁기도 합니다. 특히 강의실 오는 길에 보이는 북악산과 집으로 돌아갈 때에 오른쪽으로 보이는 인왕산은 아담하면서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기세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수업 후 지하철로 향하는 길의 어느 삼계탕집 앞에 매주 어김없이 길게 줄을 선 중국 관광객들도 재미있습니다.

   

인근 동네 명칭들의 유래에 대해선 모르지만, 효자동이 조선 중기 문신 조원의 두 아들로부터 유래한 명칭임은 알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길에 나선 조원의 네 아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왜군과 마주했습니다. 첫째가 맨몸으로 막아서다 칼을 맞자 다시 둘째가 막아서다 역시 칼을 맞았고, 그 사이 셋째가 어머니를 업고 도망칠 수 있었죠. 어머니를 구하고 죽은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후에 선조가 그들이 살던 곳에 정려문을 세워준 것이 효자동의 유래입니다. 부친인 조원의 호가 운강이었고, 그 후손들이 바위에 새긴 운강대라는 글씨가 지금 경복고등학교 안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사실은 예전에 이옥봉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찾다보니, 조원과 효자동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옥봉은 허난설헌처럼 재능이 탁월했고, 그래서 더욱 불행하게 살다간 조선시대 여류시인입니다. 아버지는 왕실 후손의 고위관리였지만, 어머니가 첩이었던 까닭에 이옥봉도 양반과의 혼인은 불가능했습니다. 비록 서출이지만 문장에 능했던 딸을 아낀 아버지는 여기저기 사정한 끝에 간신히 조원의 첩으로 이옥봉을 출가시킬 수 있었죠. 하지만 10년 만에 조원에게서 쫓겨난 이옥봉은 자신을 다시 받아주길 바라다 임란 중에 죽습니다. 그녀의 시는 난설헌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학자들에 의해 조선이 아닌 청나라에서 출간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마지막 두 구가 애달픈 이옥봉의 <몽혼>이란 시를 찾아보시길^^

 

지난 6강의 <고대 그리스 비극의 탄생>은 앞선 강의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헤시오도스와 5강까지는 별 부담없이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지만, 6강은 사실 조금 당황스럽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예습도 못하고 서양철학에도 무지한 저의 경우에 한해서만 그렇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아도 슬픈 결말보다는 헤피엔딩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리스 비극은 오히려 정형화된 틀을 벗고 인간의 감성이 깨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극 작가들의 전제는 인간 실존의 불합리성과 모순이다.” 신에서 영웅들로, 다시 인간 자신에게로 눈을 돌리면서 비극의 서사시가 생겨난 점은 역시 인간 존재의 근원이 본래 불완전하고 부족한,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음에서 연유한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인간들이 자각한 존재의 막막함은 또 예술을 통해 승화되고 스스로의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예술이야말로 판도라의 항아리에 남겨진 마지막 그것이 아니었는지... 분장한 합창대가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고 공연하던 합창시의 단계에서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흥미롭습니다. 비극의 기원이 된 이 축제에서의 합창대의 공연은, 실제 시민들로 구성된 합창대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함으로써 아테네 민주정과의 관련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이 또한 그리스 비극이 신이 아닌 인간의 문제, 나아가 자신들이 사는 사회의 문화와 정치에 연결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후 아테네의 정치적 변동, 페르시아 전쟁과 해상제국으로의 부상, 아테네의 몰락 등은 민주정의 전개과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 비극의 발전과 쇠퇴의 현실적 배경이기도 합니다.

    

명성이 높은 비극시인 아이스퀼로스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특히 친족살해를 모티브로 삼은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은, 흥미로워서 언젠가 시간 내어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잠깐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봤는데, 자막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아직 다른 비극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인과관계에 따른 복수와 살해의 연쇄를 배경으로, 각종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당성이나 용맹함과 같은 이념의 틀 안에서 인간 내면에 담긴 내용물을 여러 방식으로 끄집어내어 살펴보는 것이 비극의 유용한 수법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방식과 효용은 물론 현대의 연극이나 드라마에서도 일정 부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사람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또 다른 특징은 숙고와 결단을 통해 자의식을 점검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스인의 사고와 행동을 이러한 인간의 자기결단으로 극화시켜 훗날의 보편적인 양식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 아이스퀼로스의 의의가 있습니다.

 

다시 2천년을 뛰어 넘어 조선의 사람들이 느꼈던 막막함과 한계도 생각해봅니다. 차별과 편견. 여성차별 뿐 아니라 반상의 구분, 적서의 차별로 많은 평민들과 서자들이 느꼈을 좌절감은 그 사회가 지속되는 동안엔 절대 바뀔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현재 우리들의 좌절감이나 막막함은 해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근대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조선,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 비극에 대한 인식, 비극을 다룬 예술 등은 어떻게 다른가도 흥미로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익히다보면 언젠간 통찰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갈 길이 멀겠죠?

 

 

  • jerry 2014.03.21 11:33

    효자동에 불효자들이 모여 공부하는 규문이 있다니 이런 역사적 아이러니라니...ㅋㅋ

    규문에서 공부도 하시고 서촌 구경도 하고... 계속 오실거죠? ^^

  • 효정 2014.03.21 11:44

    효자동의 유래..... 매일 왔다갔다하는 곳인데 모쌤 덕분에 알게 됐어요^^

    음.. 조선 시대의 평민들과 서자들은 차별에 대한 막막함이나 좌절감을 느끼기 보다는 이미 받아들이고 산 것으로 여겨져요. 어쩌면 몇몇 사람은 차별에 대해 인식하고 나름대로 해소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궁금해지는데요! 후기로 얻어가는 게 많네요ㅎㅎ

    서양철학... 저도 들을수록 어렵다고 느끼지만 계속 함께 가보아요 쌤!

     (다음 고고씽 공지도 곧 올라올 예정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청소년] 철인 3종 프로젝트 시작합니다! 수경 2015.07.04 1340
공지 [고고씽]세미나 제안합니다! 15 인석 2014.09.29 12192
39 고고씽 서양철학 3탄 6강 에피쿠로스 학파의 자연주의 (후기) 3 김호정 2014.09.19 2069
38 미술특강 6강 후기 1 동하 2014.09.09 1943
37 미술특강 5강 후기 2 효진 2014.08.29 580
36 미술특강 4강 후기 1 최미혜 2014.08.27 1939
35 고고씽 서양철학 3탄 4강 후기 (2014.8.24) 1 지호 2014.08.26 1711
34 [미술특강] 파울 클레, 더 페인팅 27 채운 2014.08.25 2453
33 고고씽 시즌3 후기 - 첫 번째시간, 플라톤<국가>- 1 인석 2014.08.08 3522
32 미술특강 3강 후기 올립니다~ 2 김덕순 2014.08.04 440
31 미술특강 2강 후기입니다. 인석 2014.07.28 893
30 미술 1강 후기요~ file 신자 2014.07.22 608
29 [고고씽!서양철학] 3탄 “자기배려와 공존의 기술 : 그리스,로마시대의 철학” 개강! 23 채운 2014.06.19 2573
28 [미술특강] 명상하는 눈, 걷는 손 37 채운 2014.06.02 3010
27 5. 25일 후기 인석 2014.05.31 231
26 고고씽 서양철학 2탄 4강 후기(2014.5.18) 4 지호 2014.05.22 476
25 고고씽 서양철학 2탄 <2강> 세계의 근원을 묻다_후기 1 자혜 2014.04.30 622
24 <1강> 철학이란 무엇인가: "현재의 철학"을 위한 질문 몇 가지 _ 후기 1 최미혜 2014.04.27 573
23 고고씽 서양철학 1탄 7강(03. 23) 후기 1 김성민 2014.03.30 540
22 [4.20 개강] 고고씽 서양철학 2탄 _네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 33 file 규문 2014.03.24 1309
» 고고씽 서양철학 1탄 6강(03. 16) 후기 2 모영환 2014.03.21 634
20 [20140313] 9강.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후기 4 앗람 2014.03.14 95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