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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저서에서는 본디 저자라는 개인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그만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몰라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구성 체계와 논리를 이해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오늘 읽은 『명상록』의 독법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저자의 내면을 음미하는 것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제목도 『자기 자신에게』입니다. 제국의 신민들에게 '한 말씀' 하자는 것이 아니라, 황제 자신의 삶을 숙고하며 쓴 일기장 같은 책입니다. 지난번에 읽었던 스토아철학서 『엥케이리디온』은 '~하라'와 '~하지 마라'가 너무 많아서, 비인간적인 도덕 교과서 같았는데, 『명상록』은 마음의 저항 없이 읽을 수 있었다고 다들 입을 모았습니다. '전쟁'이 비유가 아닌 일상이었던 시절에,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정에 다다를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황제에게 저절로 공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스승이 선물한 『엥케이리디온』은 완전 소중한 책이었던 모양입니다. '나에게 달려 있는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삶에서 겪는 이런저런 경험을 생각해 보는 건, 지도자 과정을 성실하게 밟던 마르쿠스에게는 삼시세끼 밥 먹는 것 비슷한 일이었을 테고, 그런 명상 습관이랄까, 고도의 사유 훈련을 통해 그가 다른 스토아철학자들보다 예민하게 사유한 것은 인간의 판단 또는 정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주와 자연 전체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의 원인에 따라 생겨날 뿐,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물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거기에 덧붙이는 우리의 의견이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의 질서 잡힌 섭리에서 도출된 이성으로, 의견을 버리거나 수정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개인이 인생에서 겪는 모든 사건은 전체 자연에서 보면 인과연쇄 안에서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므로, 자연을 알면 섭리 속에서 내 운명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 스토아철학의 윤리학입니다. 전체 자연의 일부인 나에게 자연의 섭리가 깃들도록 열공(!)하자는 것입니다.(지난밤부터 가을비가 내렸던 일요일 아침, 전에 없이 진지한 분위기-_-//) 

 

 오랜만에 여섯이 모두 모였습니다. 각자 바쁘게 살기 때문에 리듬도 제각각이지만, 희한하게도 그때그때 누군가는 꼭 중심을 잡고 이어갔습니다. 기댈 수 있는 학인이 꼭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강의만 듣고 끝났다면 의문도 없고 답도 없었을 건 분명하고요. 오늘도 저희는 자력으로 주워 담지 못하는 질문들을 잔뜩 던지고 보았는데요.

 그 가운데, 스토아철학이 유신론이다, 아니다 유물론이다, 아니 유심론 같은데? 아니 관념론은 또 뭐지? 이런 논란이 있었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본성이고 이성이고 신적인 것이므로 유신론이다 그래서 기독교가 섭리의 자리에 그리스도를 집어넣고 스콜라철학을 만든 거다, 아니다 스토아철학에서 운명과 섭리는 자연을 떠나서는 얘기할 수 없으므로 물질세계와 분리할 수 없는 유물론이다, 아니 그럼 유신론 유물론 유심론 관념론 그거 다 해석하고 정의부터 내려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이성 얘기 나오면 근대적 이성하고 헷갈리고 답답하다 도덕이 충동에서 나오는 거라 카던데, 다음 학기 중세철학 할 때 분명 답을 해주실 거다...

 

 헬레니즘철학을 알지 못했을 때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설명해주는 어떤 철학이나 종교나 사유체계를 막연히 기대했고, 뭐 그런 게 있다 해도 내 삶과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피쿠로스철학과 스토아철학도 처음에는 비판받는 부분에만 신경이 쓰였는데, 원전을 함께 읽다 보니 세상의 겹겹 모습과 여러 측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굉장히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격려하며 세미나를 마무리했습니다~

 

 

  • 채운 2014.12.02 01:16

    질문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부디  잘 모아놓았다가 꼭 다음 고고씽에서 풀어 놓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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