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옹이 말하는 관물(觀物)과 반관(反觀)의 뜻이 심오하게 느껴진다. 눈으로 살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살핀다는 것! 마음으로 살피는 것이 아니라 이(理)로 살핀다는 것! 그리고 나로써 물체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물체로써 물체를 살핀다는 것! 그렇게 되면 ‘나’가 없어져 나 또한 남이고 남 또한 나이며, 나와 남은 모두 물체가 되는 경지! 현대 철학 개념으로 ‘-되기’를 말하는 걸까?
그런데 궁금해지는 게 있다. 천하의 물체는 모두 理, 性, 命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그 체와 용이 다를 뿐 어떤 위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소옹 또한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스럽다”고 하면서 인간 중심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으로서 사물을 볼 수밖에 없는 것과 인간 중심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는데, 이 점에 대한 소옹의 철학은 뭘까? 이는 소옹뿐만 아니라 성리학 전체에 대한 내 의구심이기도 하다.
2. “변(變)이 있으면 반드시 응(應)이 있다.” 소응이 말하는 ‘변응(變應)의 도’에서 변화에 응한다는 건 무엇일까? “하늘은 때에 따라 변하고 땅은 만물에 응한다. 時는 음이 변하고 양이 응한 것이며, 物은 양이 변하고 음이 응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미리 짐작하여 알 수 있고 물은 반드시 따르면서 이루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양은 맞이하고 음은 따르며, 음은 거스르고 양은 순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응하는 것은 ‘맞이하고(迎) 따르며(隨) 거스르고(逆) 순응하는(順)’ 뜻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으로 “마음은 하나여서 나누지 못하지만 온갖 변화에 응한다. 이것이 군자가 마음을 비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이다”라고 하는 대목에서 소옹은 ‘변화에 응하는 마음’을 말하고 있다. 선천의 학문을 심법(心法)이라고 하면서 마음을 중요시하는 소옹에게 사물의 온갖 변화에 응하는 마음과 몸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