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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인 여러분. 그리고 불교지성사 세미나 회원 여러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깊은 울림이 전해질 것입니다.  


  修行과 知性의 發現 : 三學의 傳統과 그 前望

知性은 卓越한 知的 分別로 자기가 몸담고 있는 時代를 省察하고, 나아가 자기의 삶이 공유한 동시대의 구성원들에게 根源的 希望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불교는 오랜 전통속에서 이러한 知性의 表象을 본질적으로 성찰하고 구현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교단의 창시자 석가세존의 교단창설이 갖는 의미도 시대를 궁극적으로 구원해야 한다는 데 기원하였으며, 오랜 역사속에서 善知識의 正體를 탐색하며 발전해온 불교사전체가 바로 이 역사적 생존에 대한 구원을 목표로 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와 인연을 맺은 모든 時代와 역사적 空間이 모두 그 목표를 실현한 것은 아니다. 역동적 구현이 있기도 하였고 그렇지 못하였던 역사도 있었다. 그 인연의 소치는 다양하겠지만, 시대지성으로서의 사회적 소임을 다하지 못한 교단내적인 역량부족과 불교를 소외시키는 불행한 시대가 외적인 동인으로 서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양자적 입장 즉 홀로 생기함이 없는 인연의 입장에서 보면 그 어느 한 곳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불교가 어느 한 공간을 점유한 고립된 구성체가 아니며, 불교의 가르침이 출생한 이후로 인류역사가 공유해온 편재한 현실로 볼 때 궁극적으로는 아는 자 즉 불교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겠다고 약속한 불교인들의 책임이 우선이다. 그리고 時代知性의 不在도 누구의 탓이 아니라 工夫해서 먼저 알고 가르쳐야할 지식그룹의 책임이다.  

몸소 실천궁행하는 實質의 精神들이 그 당대를 책임있게 사랑하고, 時代精神이 진정한 精神을 간절히 그리워하게 하고는 다시 大衆들과 만나는 길 밖에 없다.

發願과 慈悲 즉 그리움과 사랑이 만날 때 기도는 성취되지만, 그리움과 발원에는 반드시 先驗的 表象이 前提한다. 대중에게는 무엇인가 그리워할 표상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갈망하기 때문이다. 지성의 역할은 그 만큼 중요하다. 불교에서도 앞서가는 表象이라 하여 善知識이라 말한다.

나아가 불교에서는 實質의 精神 즉 지성의 발현은 修行과 원인적 인과관계를 갖고 있다. 즉 구원의 궁극적 성찰은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가 오랫동안 正論的으로 담보해온 戒·定·慧 三學은 바로 수행을 통한 지성발현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戒學은 현재적 삶을 성찰하고 진보시키는 향상된 규범을 학습하는 것이며, 定學은 우리정신의 잘못된 薰習을 淨化하고 변혁시키는 독특한 三昧의 傳統이고, 慧學은 말 그대로 지혜의 영역이어서, 현재적 지혜를 동반하고 行動하는 分別의 知的 傳統을 創出한다.

그리고 이 삼학의 전통은 서로 相依的이어서 떨어져 修習되어 질 수 없는 것이다. 걸출한 禪僧의 破格이라 보여지는 경우도 그 지혜에 상응하는 非凡한 내적규범을 내함하고 있듯이, 참된 수행자는 행위와 내면이 결코 유리되지 않음으로서 내적 성찰과 외적 실천에 있어 不二한 境地에 있게 된다. 內密하게 精製된 규범이라 할 계학을 수행하고, 歪曲되고 變形되어 훈습되어온 정신의 變革 즉 과감한 털어버림으로서 無分別의 三昧로 힘을 얻는다. 나아가 이렇게 투명하게 닦아진 마음거울에 비로서 바같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지고, 자연스레 행동하나 어긋남이 없는 분별의 지혜, 삶의 窮極的 指標가 되는 知性이 발현되는 것이다.

삼학의 수습을 통해 修行의 窮極에 體現된 表象은 물론 無我와 般若 그리고 慈悲로 몸을 삼은 지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고양된 표상과 그 실현에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세간과 출세간 그 사이에 놓여있는 ‘不二門’을 통해 불교지성사를 포함한 우리지성사의 停滯的 現實을 반성해 본다.

문은 드나들지 안으면 폐쇄되어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며, 소통하지 않으면 안과 밖의 생명들은 서로 고립된다. 생명의 고립은 나아가 소멸이나 퇴보 심지어 죽음을 의미한다. 내적성찰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들어와야 하며, 지혜를 동반한 자비심 즉 세간구원의 소임때문에는 늘 활발발한 외출이 있어야 한다.

지성의 개체적 현실도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의 다스림을 포함하는 자기성찰이라는 입장에서, 수양이나 수행은 人類의 고등한 전통에서 보면 思惟 또는 工夫의 普遍的 典型이다. 관념적 분별이나 분석 또는 지식의 재생산 등 표피적인 서구식 모방만을 습득해온 척박한 오늘의 지적풍토는 반드시 빨리 넘어서야할 불행한 한계상황이긴 하나 그것이 전부 西勢의 책임이 아니다. 수용주체인 우리의 척박함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사에 나타난 고양된 인간정신들에게는 불교에서 말하는 삼학수습의 특성들이 보편적으로 體現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위대한 지성들은 자기를 향한 높은 도덕적 수양과 수련 그리고 세속적 욕망을 단호히 넘어서는 용기를 근본적으로 담지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 결과로 얻어진 생명에 대한 궁극적 사랑으로 삶을 일관한다는 점이다.

결국 修養이나 修行을 통한 지성의 발현은 특별한 제안이 아니고 回復해야할 本分事이며, 거기에 三學의 傳統과 그 修行情報는 그 本分事를 위해 유효하게 회복할 가장 가까이 있는 그러면서도 귀궁한 우리문화속의 우리資産이라는 점이다.

**** “수행의 가치와 우리의 미래” 동행포럼 취지문 /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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