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1 13:39

{한유1}공통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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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닷가 큰 강 언덕에 웬만한 어류들은 견줄 바 못 되는 어마어마한 괴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 괴물이 일단 물을 만났다 하면 변화무쌍하게 비바람을 일으키고 하늘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일도 어렵지 않으나, 물을 만나지 못하면 그저 몇 자 몇 마디 되는 곳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지요. 높은 산이나 큰 언덕, 광활한 길이나 험한 절벽이 가로 막고 있는 것도 아닌데, 곤궁하게도 메마른 곳에 처박힌 채 스스로 물을 구해 올 재간 없어, 저 수달들의 비웃음을 받아온지 여덟아홉 해가 되어갑니다. 힘 있는 자라면 그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 다른 데로 옮겨주는 것도 손 한 번 들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과목에 응하면서 누군가에게 주는 편지])

 

-명대 모곤이 편한 [창려문초] 권1의 지루한 표장을 지나면, 창려의 편지가 등장한다. 편지글은 크게 모 관리에게 자신을 끌어달라는 얘기랑 누군가에게 친구인 누구를 품평하면서 추천하는 이야기, 이번 시험에서 낙방했다는 이야기 등등. 온통 '지기'와 '지인'으로 채워져 있는 창려의 편지들. 유독 그만의 상황이진 않았으리라. 자신의 능력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원하는 마음, 그래서 시대와의 불우에 마침표를 찍고, 세상을 위해 힘쓰고 싶다는 의지. 다른 뭇 어류들과는 견줄 수 없어 '괴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자부가 그의 곤궁함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물만 만나면 세상을 튀어날아갈텐데, 문제는 물을 만날 수 없어 메마른 땅에서 헤엄치고 있는 실정이다.

신분이 낮고 가진 것 없는 독서인은 언제나 시대를 만나지 못한단 말인가. 간질히 원하는 마음으로 빌고 빌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운명이리. 그러나 비를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물기 없는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줄 힘 있는 자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기다린다. 곤궁하지만 고개를 뻣뻣히 들고 '힘있는 자'를 기다린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도 운명. 하지만 그 운명을 대하는 괴물의 자세는 그의 기다림의 철칙으로 드러난다. 절대 머리 숙이지 않아, 절대 꼬리 흔들지 않아, 절대 가련함을 구걸하지 않아. 

그런데 어떡하지? 만약 힘있는 자가 괴물의 고고함을 알아봐주지 않는다면? 한참을 봐도 이 괴물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면? "불쌍히 여겨주는 것도 운명이요, 불쌍히 여겨주지 않는 것도 운명입니다." 이거 뭐냐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건 알겠다. 그걸 운명이라 여기면서 살아갈 수 있겠다. 그런데 주위의 힘있는 자들이 불쌍히 여겨주는 것도, 여겨주지 않는 것도 다 운명이라니, 운명이란 이렇게 절대적인 수동성을 요구하는 건가. 하지만 괴물은 여기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이 모든 게 운명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리 한번 질러보는 것. 이 또한 운명입니다."  나는 이 구절의 처절함에 전율한다. 그 한편에서 운명에 저항하는 태도를 자기 운명으로 받아들인 당당함에 또 한번 전율한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죽자고 그걸 하고자 하는 유자들의 비분강개함을 오늘은 부러워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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