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자취
말과 자취가 일어남은 다른 갈래의 길이 생기는 이유입니다.(명칭을 연구하고 그 모습에 집착한 사람들은 말에 의지하여 그 의미를 취한다. 그리하여 분별하는 허망한 마음이 일어나 올바른 지혜가 어두어진다).
말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절대의 도가 그 이면에 있고, 자취에는 자취에서 구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토끼의 발자국에 있지 않고, 물고기는 물고를 잡는 통발이 아닌 것과 같다).
그 때문에 훌륭한 말로써 말을 하는 사람은 말로써는 표현하지 못할 본질적인 도를 구하고, 훌륭한 자취로써 자취를 찾는 자는 자취로는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찾습니다. (말의 근본 의미만 체득하면 말은 잊고 물고기만 잡으면 통발을 버린다).
말과 자취가 끊긴 지극한 이치는 텅 비고 현묘하여, 이를 마음속에 비교하고 헤아리면 벌써 그 이치와는 어긋나게 됩니다. 하물며 마음을 표현한 말의 경우야 어떻겠습니까? (제 3장 247)
이 글을 따라가다 보면 미로를 헤매는 것 같다. 말의 근본 의미만 체득하면 말은 잊어버리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극한 이치는 텅 비고 현묘하여 이를 비교하고 헤아리면 또 이치와 어긋난다. 말과 자취가 끊긴 이치를 비교하고 헤아리는 순간 또 그 이치와 어긋나게 된다. 말을 잊거나 사려를 쉰 사람만이 마음에 통할 수 있다. 말과 사려를 너무 많이 한 한주를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