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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려는 이유?

연 혜 경

  
  나는 공부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편안하고 즐거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공부는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라기 보다 나름대로 스스로 즐기면서 몰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입장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의 견해로는 뭘 모르는 세월좋은 소리이거나 제대로 공부를 안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막연한 감상일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나는 공부의  첫 시작인 지식의 탐구를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 어느 개그맨의 표현대로 그냥, 저냥 뭐 대충 시험 칠 수 있는 정도로 지식 습득을 해왔고 운이 좋은지 학교 생활동안 그런 나의 방식이 크게 실패를 던져주진 않았다. 나는 공부에서 한번도 제대로 바닥까지 내려가 실패해 보지 못했다. 이것은 제대로 공부에 맞서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삶에서의 철저한 실패는 지식 밖의 세계에서는 여러번 경험하였다. 사람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실패와 실수에 대한 태도와 대응방식이 삶의 내용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실패와 실수에 관한 기억들을 삭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는데 그것은  아주 쉬운 듯 하면서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방식으로 나는 대체로 우울한 사람이 되어갔다. 인생에서 시원한게 없었다. 그런데 어느 결엔가 나는 지식이나 예술이 나에게 위로를 주고 기분을 밝게 해준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는 상당히 새삼스런 발견이었는데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사노동과 하지 않을 수 없는 의무때문에 느끼는 억눌림의 감정은 집에가서 읽을 책이 있다는 사실에 구체적인 위안을 받았다. 물론 나는 집에서 집중하여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저녁하고 설겆이하고 나면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다. 초저녁이면 잠자리에 드시는 집안의 어른을 위해 재재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야 하고 숙제를 도와주어야 하고 방을 치워야 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12시가 다 되어 불을 끄고 방바닥에 요를 깔고 누워서야 잠이 들었는데, 아이들곁에서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을 뉘일때 몸은 방바닥에 등을 대는 순간 찰싹 붙어서 결박을 당한 듯 꼼짝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잠들면 일어나서 책을 읽어야지!하고 다짐을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조차 없는 무거운 육신은 돌아눕는 것도 힘이 들었다. 어떤 날은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침을 흘리며 책 위에 얼굴을 박고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무슨 대단한 학자가 되거나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지 않음에도 자신에게 몰두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구체적인 고통을 주었다. 나는 엄마가 아닌가? 아이들의 풋풋한 살냄새와 향기로운 코웃음과 부드럽고 탄력있는 따뜻한 감촉이 나에게 왜 위안과 보람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 자는지도 모르게 지쳐 잠드는 날들 가운데서도 또 이렇게 하루가 하릴없이 지나간다는 한없는 허무의 감정이 몰려왔다. 그럴때 이따금 어린 시절 우리가 잠들면 전등불을 낮게 켜놓고 책을 읽으시던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잠결인지 꿈결인지 희미한 빛속에서 책에 열중한 엄마의 모습을 보곤 했다. 엄마도 그때 지금의 나 같았을까? 이제는 신문도 안보시고 연속극만 열심히 보는 엄마는 책을 읽으면 눈이 아프고 골이 땡긴다고 하신다. (불쌍한 엄마! 나는 엄마처럼 늙고 싶지 않아. )
   나는 책을 읽을 때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 물론 자꾸 잡념이 생겨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그러면 어떠리! 오늘 못보면 내일이 있으니..... 책을 사랑한다. 애인은 마음이 변하면 떠나지만 책은 다소곳한 모범생처럼, 무뚝뚝하지만 심성고운 친구처럼 때로는 난해하여 거만함을 풍기는 얼굴로 언제나 내손이 닿는 곳에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도서관이 붙타는 장면을 읽을 때, 그 허구의 세계에서 활활 타오르는 도서관의 불길은 나에게는 현실의 그것처럼 안타까운 탄식을 불러 일으켰다. 마음이 심란할 때, 서점에 가서 책을 감상하거나 시를 읽으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견딜 힘이 생겼다. 어느 때 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집중하여 책을 읽기 힘들었던 나는 비디오 테잎을 빌려다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 어머니는 책을 읽었지만 나는 모두들 잠든 밤에 소리를 죽여놓고 홀로 영화를 보았다. 평균적으로 주중에 한 두편을 보고 주말에는 거의 4편에서 5편을 연이어서 보았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피로해서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기가 찬듯이 박사논문 쓰느냐고 물었다. 눈의 실핏줄이 다 터지고 피곤해 있다며 잠을 충분히 자라고 했다. 한번은 이미 본 영화의 제목이 머리 속에서 빙빙 맴돌며 딱 떠오르지 않아 비디오 가계에 가서 내가 본 영화의 목록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보여주어도 제목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내가 그동안 빌려 본 영화가 천편이 넘는다고 했다. 그 말은 듣고는 나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이 보았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과 직장만 오가며 사는 나에게 영화는 세상과 연결된 소통하는 길이었나 보다. 공허함을 견디기 힘들어 하며 사는 나에게 영화는 삶은 그래도 견디어 낼 만한 그 무엇이 있다고 말해주는 친구였다. 이 경험은 지식은 책을 통하지 않고서도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주었다. 그 시절 그렇게 많이 본 영화 덕분에 요즘 영화교육 일을 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제 나는 지식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며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지식이 중요하다. 물론 공부는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라기 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인 동시에 지식의 한계를 돌파하여 새롭게 삶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식이 없는 사유는 공허하다. 그것은 거칠고 조야해서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고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왜소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다. 이런 지식은 참된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지식이 참됨을 얻게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찰적 사유이다. 사유는 각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지식의 총체가 나의 삶에 조응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만나고 어떤 의미로 이해되는가를 알고 해석하게 해주는 근원을 만들어 준다. 지식이 없는 사유가 공허 하듯히 사유되지 않는 지식은 분열적이고 파괴적으로 흐르거나 감상에 빠지기  쉽다. 그 긴장의 경계에서만이 허공을 떠돌던 지식은 나에게 선택되어 의미를 생성하고 나의 삶을 새롭게 구성한다. 공부는 나의 삶에 의미의 뼈대를 세우고 섬세하고 촘촘히 엮여진 결 고운 살을 만들어 세상으로 향해 나아가게 할 것이다. 나는 흐르며 부대끼며 바람 속에서 즐거이 나부끼며 아무런 형체없이 울림을 만들어 내고 싶다. 그래서 마침내 자유에 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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