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05 02:26

나는 왜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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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부하는가

  고전학교 첫 숙제인 “나는 왜 공부하는가?”는 그리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한 주간 이 숙제를 하기 위해 일상처에서 난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공부는 ‘무지로부터 앎의 세계로의 지향’ 즉 앎의 세계의 확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식함에서 유식함으로의 전환이 공부를 하는 이유였던가? 그렇다고 한다면 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통해 너무나 유식한 인간이 되어 있어야 한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해서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대학, 대학원 그리고 박사과정을 수료하기까지 입학, 졸업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공부라는 것을 했다. 긴시간을 공부를 했다는 지금의 나는는 博士아닌 薄士의 면모만 드러날 뿐이다. 박사과정 수료! 막막했다. 고학력 둔재에게 공부라는 것이 답답하고 두려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무엇으로 학위논문을 써야하나? 논문을 쓰기위한 공부를 시작해야하는 것일까? 석사 3년 박사 3년의 기간동안 나는 책상 앞에서 어떤 공부를 해 왔던가? 그렇다면 나는 논문을 쓰기위해 공부를 하려고 했던 것인가? 나는 이 불안한 시기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 왔던 공부와 다른 또 다른 공부방법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런 근황 속에서 우연히 고전학교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난 그 즉시 등록을 하겠노라고 했다. 이에 그간 나의 학습 태도를 지켜봤을 선배는 다짜고자 등록을 하겠다는 나에게 “수업은 2~3시간이지만 30시간 이상의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 명심해라”라는 당부와 우려의 말을 남겼다.

독서
‘공부하다’는 나에게 ‘독서 하다’로 인식되었다. 독서를 통해 정보가 입력되고 그 정보의 활용이 적절히 외부로 표출 될 때 그 사람은 똑똑하게 비춰진다. 내 나이 31세. 근 20여년의 시간을 독서했다. 그 독서의 시작은 우리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우리 아버지는 책을 사서 집안 곳곳에 꽂아놓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다. 대형서점과 헌책방을 오가면서 별별책들을 사오셨다. 번쩍이는 책표지의 전집류들과 제목을 읽을 수 없는(한문으로 표기된) 오만가지의 책들. 이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당사자는 바로 나 오직 나뿐이였다. 책을 구입하는 아버지 그 책들을 읽어야 하는 나. 어린 나에겐 불합리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주말이면 우리 집으로 초대되는 책들이 나에겐 반가운 손님이 될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를 통해 전수받은 독서방법은 이러했다. 우리 아버지는 아침에 출근을 하시기전에 책을 지정해 주시고 퇴근하여 오셔서 독서된 내용에 대하여 질문을 하셨다. 무작위로 펼쳐진 책 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그 책의 스토리와는 전혀 개연성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런 질문과 나의 명쾌한 답을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엄격한 표정....숙제를 검사하시는 선생님이었다.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상황이면 으레 회초리를 맞았던 기억. 반면에 이 독서퀴즈를 무사히 통과하게 되면 우리 아버지는 흐뭇해 하셨다. 자신의 딸이 점점 똑똑해져 간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100권 300권 1000권이란 책권수를 세고 계셨다. 그리고 자신의 딸은 아버지의 남다른 교육의 일환으로 훗날 위인전에 기록될 인간으로 성장하리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에게 독서와 공부는 검사와 평가가 수반되는 긴장의 시간이었다. 매일 저녁이면 거행되는 이 시간은 초등학교졸업과 동시에 그간의 독서지도로 자발적 독서가 충분히 이행되리라는 아버지의 배려?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난 이미 이러한 반복된 생활 속에서 책에 대한 증오감에 불타 있었다. 사춘기 시절 (중학교 시절)부터 난 아버지 몰래 책을 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두권 그러다 전집류를 푸대자루에 넣어서 대담하게 버리기 시작했다. 서고의 책들이 없어질 때마다 난 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책들을 내가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다녔던 기분이었을까? 어찌나 많은 책이었던지 그 책을 버리는 내내 아버지는 눈치 채지 못하셨고, 21살 가을 이사하는 어느 날 나는 부러 비 오는 곳에 책을 놓아두었다가. 그 많은 책들을 아주 깔끔하게 폐품 처리해 버렸다. 이젠 끝났다. 성인이 되면서 나에겐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책세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우리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중풍으로 자리에 눕게 되셨다. 이젠 읽을 책도 나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사람도 없게 되었다. 이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아버지께 죄송하다. 내가 지금까지 독서를 하는 이유 중에는 아버지에게 대한 이러한 미안함을 속죄하고자 하는 나의 죄책감의 일환일 수도 있으리. 사실 대학원에 들어오기까지 난 단 한편의 독후감도 써 본 일이 없었다. 어린시절 책 읽는 것이 서러워서일까 학교행사가 있을 때면 독후감을 대신해 포스터를 그려갔었고, 그때 받은 상장은 아빠의 질책으로부터 벗어났다. 나에게 독서는 제목과 목차에 나열된 일련의 사건과 인물을 기억하는 것 일뿐 더 이상는 의미와 감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the end'였다.

공부
석사논문을 쓸 당시 머릿속에서 빙빙도는 말들이 글로 옮겼을 때 전혀 새로운 의미로 변질되고 있었다. 무척 힘겨운 시간이었다. 논문이 통과하고서 난 다짐을 했다. 다시는 공부란 것을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책을 버렸다. 책을 버리면 공부를 하지 않게 되리라 생각되었다. 한날한시에 나의 책들이 쓰레기통속에 안치되었다. 논문이 통과되고 졸업을 하고 나는 서둘러 결혼을 준비했다. 또다시 내 마음이 동요되어 공부를 하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 였을까? 결국 그 불안감은 현실에 반영되었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나는 또다시 학교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결혼준비를 하면서 내 맘속에는 자꾸 뭔가 미루어 놓은 것을 해결하길 바랬던 것 같다. 결혼이란 새로운 삶의 터전이 펼쳐지리라는 아련함 속에 나는 또다시 뭔가를 찾고 있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책이 읽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새 책장을 이리저리 메우고 있었다. 다시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젠 지긋지긋하다며 책이라고는 쳐다볼 것 같지 않았던 내가 책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또다시 책을 구매하고 책을 읽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박사과정 3년이 흘렀다. 지금 내 위치에서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냥 좋아서라고 말한다. 진짜 좋아서 하는 걸까? 내 생활 속에서 공부는 언제나 비교우위에 서 있나? 나에겐 남편의 아내로 아이에겐 엄마 시어른들에겐 며느리 알바 하는 학생들에겐 선생님 학교에선 학생.... 명칭이 이렇게 많다. 학자? 김진희이기에 앞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래서 그 틈틈이 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 틈틈이 속의 공부는 배우고 익히기에 힘쓰지 못했다. 앞선 역할을 적당히 둘러대고 그 여가시간의 일부를 활용했을 뿐이다. 나의 공부는 한평생이라는 시간 속에서 독서를 즐기다 보면 지적인 인간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안일함 속의 여가생활이었다. 가끔 선배들이 너 공부 제대로 안할래? 하면 나는 궁색맞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너무 바빠요. 애기도 아프고 시댁에 일도 있고, 알바도 해야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럼 언제 공부할래?’라는 말을 선배들은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늘 또다른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내 전공에 필요한 책을 읽고 있어요. 라고 나의 명칭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대견하게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있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부끄럽다. 화장을 하고 악세사리를 하듯이 나의 몸에 착용했다 벗어던지듯 공부를 했다.

공부는 왜 해야하는가
미우라 쿠니오『인간주자』책을 읽고 있다. [논어]에 “학문이란 다다르지 못할 것처럼 해야한다. 그러고도 또 잊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해야한다”라고 했다. 시간을 아쉬워하며 싫증을 내지 않고 촌각을 다투어 공부해야 한다고. 열심히 공부하진 않는다면 학문에 뜻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사한 여가를 즐기듯 공부했던 나에게 공부를 왜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좋아서 공부를 해요’라는 난 말했다. 그리고 독서했다. 촌각을 다툴 만큼 읽은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두려함 없이 늘 느긋했다. 반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을 통해 나는 변화되리라 믿는다.
또한 주자는 오늘날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진보가 없는 것은 단지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동안에서 밤에 종 치는 소리 듣고 그 메아리가 아직 귓가에 맴돌로 있는데 마음은 어딘가에 가버리고 그 곳에 없다고 한다. 그때 문득 학문이란 "마음을 오직 하나로 하여 뜻이 거기에 미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긴 시간 공부를 했고 앞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늘 저 먼 곳. 저 높은 곳을 향해만 뻗쳐있었다. 그래서 ‘여기 이곳’의 소중함을 미처 궁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공부는 ‘저 멀리서’‘ 언젠가’ 이루어질 허상의 세계였다. 또한 지금 여기 이곳에서의 가르침을 다른 곳에서 찾았고, 도래될 어느 날 나를 위해 준비된 학습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느긋함으로 치열히 공부하지 못했다.
나는 왜 공부하는가,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의 가르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난 공부한다고. 매 순간 나에게 향하는 것을 배움의 대상으로 하려한다. 그리고 그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촌각을 다투어 공부할 것이다 라고 정말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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