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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김봉진

  
   이런 유의 질문에 답할 때, 남들처럼 대학교육의 정규코스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식으로 교육과정과 학우들과의 관계 등을 엮어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과 그에 따른 남다른 결단 등을 드라마틱하게 서술하면 쉽게 끝날 일인데, 나는 처음부터 내게 있어 공부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제기!
  나는 한번도 아카데믹한 공부의 정상코스를 단계 단계 밟으며, 커리에 따라 지식이 쌓여가고 있다는 충만감이나 성취감을 느껴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맺은 인간관계 등이 내가 진창에서 뒹구는 수모를 당하도록 그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위감을 맛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 공부는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듯하다. 단지 나는 책을 읽는다. 먼저 읽은 책에서 모티브를 얻어 또 다른 책을 읽는다. 이런 방식으로 독서의 대열을 형성하다보니 책꽂이에는 물리, 문학, 생물학, 교양잡지, 만화, 미학, 철학 등 근대학문의 다양한 이질적 분과들과 성속聖俗이 구분 없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최근 몇 년 사이에 직시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감 때문인지 책꽂이는 서서히 분과의 대오가 정비되어가고 성과 속에 분별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속적인 것들은 서적으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라면 혹은 사과박스에 감금되어 한쪽으로 치워지거나 헌책방에 떨이로 팔려나가기에 이르렀는데, 그 보다 더한 경우는 고물상에 근수로 팔려나가는 수모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 속적인 것들은 사라져 버린 지 한 참이 지났다. 그래서 오랜 세월 속에서 물든 내 욕망이 반사적으로 그것들을 그리워할 때라야 그 자리를 기억해낸다.
  이렇게 읽고 또 읽다가 내 인생행로에서 남다른 어떤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실행할 때 나는 내 공부의 축적이 현시한 것으로 믿는다. 내게 공부는 구체적으로 이런 것이다. 대학의 정규과정을 쫓아 연수가 쌓이고, 커리에 따른 과목을 하나씩 섭렵하면서 축적된 것이라기보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내게 있어 공부는 모든 익숙한 것들과 맺었던 정서적인 유대나 물질적 자양분을 뒤로하고 어떤 보장도 성립하고 있지 않은 곳으로 떠날 수 있게  하는 용기의 원천이다. 그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런 것이기도 하다. 즉, 공부는 평온하던 일상에 섞인 수많은 변주와 보통은 잘 감각할 수 없는 섬세한 감성들을 느낄 스 있도록 한다. 따라서 익숙한 것들은 낯설게 되고, 일상은 이질화 한다. 이것이 나를 몹시 불편하게하고 나로 하여금 일상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고미숙선생의 표현을 빌린다면 공부는 나의 신체를 이 전과는 다른 조성으로 변화시키고 결국 달라진 신체의 조성은 기존의 땅에 적합지 않게 되므로 나는 살기위해 필연적으로 새로운 땅을 찾아 유목을 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끊기나 열정의 부족이거나 병적으로 진행 중인 결벽성 때문인지도 모르는 ‘떠남’을 정당화할 적합한 표현발견. ‘심봤다’ 수유와의 새로운 접속에 대한 기대충전!
   그리고 공부와 용기의 등식이 성립하기 전 나에게 있어 공부는 진실을 보는 눈에 해당했다. 관용적 표현으로 ‘속지 않기 위해, 속이지 않기 위해’ 최근 영화에서 진실에의 추구가 압축적으로 표현된 멋진 장면이 있는데 네오가 삼킨 빨간 캅셀의 의미가 그것이다. 그런데 진실은 있기나 한가? 이런 의미에서 진실은 있다. 예컨대 ‘화씨911’에서 마이클 무어가 보여준 것처럼, 부시나 측근들의 아주 사적인 경제적 이득을 위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과 권리를 유린하는데 동원된 언론조작, 대중홍보 그리고 그 당위를 고양하기위해 활용하는  설득력 있는 종교적 표상은 진실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진실은 있다. 영화를 본 후 우리나라의 스포츠 신문이나 연예뉴스가 가장 양심 있는 언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한 매트릭스를 벗어나는 지식의 효과는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공부의 실용적 측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아주 희귀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내가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보수반동들을 설득하데 요긴하게 사용되곤 한다.  
    그리고 공부와 진실의 부등식이 성립하기 이 전으로 가보자. 그 때는 푸코를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물리적 폭력의 열세를 논리적 폭력으로 만회하여 또래사이에서 우월감을 획득하고 나아가 그들 위에 굴림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열심히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서로 고도로 엄밀한 언어구사를 한다고들 착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우격다짐으로 나열한 관념적 어휘들의 말잔치에 불과했다. 이것도 자체 검열의 강화 그리고 사고의 복잡 다변화와 두뇌의 순발력 저하라는 피할 수 없는 노화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어쨌든 이런 사실은 나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적과의 언어적 공방에서 급기야는 인신공격으로 대미를 장식하곤 했던 그 시절만큼 책을 읽는 것이 신나는 때도 없었다. 예컨대 푸코를 읽는다고 한다면, 독서하는  내 내 그의 어휘로 어떻게 적의 심장을 공략할 것인가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에 몰입하는 식이었다. 그 때와 같이 지식이 실천적으로 쓸모 있다고 생각되는 예는 그 이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립다. 그 시절!
  열정과 끈기가 부족한 내가 그 나마 공부를 한다고 지금까지 매달리는 이유 중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에 있다. 실제 지금도 돈만 있다면 미술작업에 매진하고 싶다. 내 앞에서 고흐 따위의 실패한 인생들을 들먹이며 예술혼 운운 하지말라. 개인적 판단으로 그는 삶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고집쟁이 얼간이다. 이중섭은 고은이란 작자가 몸값을 불려놓는데 일조해서 그렇지 내가 보기에 이중섭은 그림만 그리는 바보였다. 예술적으로는 대성했다고? 삶이 실패했는데 예술만 남아 성공할 수는 없다. 얼굴이 없는데 웃음만 남아 있는 경우는 엘리스 한테나 가서 물어 보시지. 미술작업은 돈이 엄청 많이 든다. 그래서 예술 혼에 불타 막노동을 해가면서 번 돈을 족 족 미술작업에 투자한다?! 예상하기에 혼은 혼대로 불타 사라지고, 그는 백발백중 미술만 하는 얼간이나 천치 혹은 미술 하는 수전노나 주당 등등 가장 비참한 인간상의 말로가 기다리고 있다(아닌 사람 빼고). 그러니 돈 없는 자여! 미술 판에 얼씬도 하지 말라. 차라리 양서를 사서 읽어라. 내게는 기본적으로 세상의 구조를 알고 싶다는 야심에 찬 포부가 있다. 그래서 2년 정도 미술 판을 기웃거리다가 앞서 열거한 인간상으로의 필연적 귀착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미술계의 얼간이 보다는 세계의 구조를 헤아리는 가난뱅이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작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그것은 ‘놀이’가 되었을 뿐.
  
      뽀나스! 희망사항 그리고 에피소드 하나
  
1. 돈 얘기가 나온 김에 앞으로 수준 있으면서 쉽고 재미있는 책을 써서 떼돈 벌고 싶다. 그래서 멋진 개인서재를 만들어 내 책들이 이사할 때마다 라면박스에 장시간 감금당하는 수모에서 빨리 해방되었으면 하고, 또 그들이 치약이나 칫솔, 밴드 등의 잡화와 심할 경우 양말이나 팬티 등의 각종 너절한 것들과 멀리 떨어져 그들 고유의 아우라를 배가 시켜주는 개인전용서재에 꽂혀 볼 영예를 안겨 주고 싶다. 그들은 이제 거의 책으로서의 자아를 상실한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다. 처음에 빳빳한 모서리와 선명한 제목들은 훈련 조교의 날선 눈빛 같아서 내가 나태할 때, 노려보며 독려했었는데, 이제 제대말년 고참병의 그것이 되었다. 문고판 서적의 태생적 한계와 관리부족이 빚은 가슴 저미는 현실이다.
  
2. 예전부터 알았지만 친하다거나 서로 호감을 느끼는 사이는 아닌 어떤 사람과 우연찮게 산행을 같이하면서 나눈 대화 내용이다. 어떤 맥락에서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불쑥 공부를 하면 할수록 겁나는 것이 적어진다는 말을 한 것부터 기억난다. 교육학박사를 밟고 있는 그는 유명한 인도 교육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내게 공부의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 두 사람의 감정대립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이 말만으로 칭찬이나 격려라고 손쉽게 해석하겠지만 지나칠 만큼의 성실함과 지식인의 양심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남을 간단히 욕보이는 소질을 타고난 것이 그임을 알기에 나는 그것이 공치사였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 인도교육학자는 자신의 교육철학의 요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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