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 동사서독/ 반역의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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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청조는 소수의 이민족이 다수의 토착민 세력을 다스리던 대표적인 사례였다. 약 1백만의 만주족이 2억이 넘는 한족을 통치하는 과정에서 당시 지배층은 수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데 특히 한족이 지닌 뿌리 깊은 중화주의는 청조 내내 정권의 기반을 뒤흔드는 심각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5대 황제인 옹정제가 1728년 맞닥뜨린 쩡징 사건 역시 그 배후에는 여유량으로 대표되는 한족 지식층의 화이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화이론은 한족이 바로 세계의 중심이자 문화 그 자체이며 오랑캐는 중심으로 동화 되어야 할 주변일 뿐 진정한 타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사고방식이었다.
옹정제는 나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권력 메커니즘을 동원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주접․팔기제 및 명대의 관료제 등 법가적 조치들을 활용하는 시스템적 전술이었다.
하지만 텍스트화된 경전을 바탕으로 거대하고 유서깊은 문명을 이루어온 토착세력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였으며 다수를 정신적으로 설복시킬 논리적 틀이 필요하였다. 특히 서양과 달리 동양은 지식인과 관료의 일치로 인해 제도와 담론이 통일 되어 있었고 이는 중화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었기에 중화주의를 혁파하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한족의 담론이 요구되었다.
옹정제는 한족의 지식체계를 통해 중화주의를 공략하는데 華와 夷의 기준을 문화로 보고 華와 夷의 분할선을 문화여부에 따라 인간과 금수의 분할선으로 옮기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또한 청이 명을 대체한 것도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함이었으며 그것 역시 힘으로가 아닌 덕으로 행하였음을 강조하는 등 한족이 그동안 주장해온 논리로 중화주의의 모순점을 파고들어 간다.
이 같은 시도를 통해 옹정제는 쩡징 같은 당시 일상적 상식을 지배하던 한족 지식인을 대상으로 교화를 추진해나갔고 대의각미록은 그 교화의 산물이자 옹정제의 자기 정당화의 논리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민족 왕조가 깨버리고자 노력했던 중화주의는 19세기에 이르러 중국문명을 야만으로 치부하는 서양세력이라는 진정한 타자를 만나게 되면서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데 이 때 붕괴되는 것은 청왕조인지 아니면 중국 전체인지 우리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앙! 반장님 후기다.. 그 망할 회식의 태클을 뚫고 후기를 올리시다니.. 반장님이 후기 안 올리면 추석연휴를 영혼없이 보낼뻔 하였다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