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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엄복의 '천연론' 수업후기

 

엄복 당시만 해도 중국의 전통 사상엔 상당한 균열이 가 있었습니다. ‘천연론’의 사회진화론과 태평천국을 이끈 기독교 신앙 모두 서양사상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더 이상 중국을 중심에 둔 전통 사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신양면하려면 과거를 보아야만 했고, 엄복 또한 여러 차례 과거에 도전하다 끝내 실패한 뒤 ‘천연론’을 번역했다고 합니다.

사실 엄복이 받아들인 진화론은 아주 낯선 사상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미 1870년대에 일본으로부터 수입되었다고 하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이 중심이란 생각은 쉽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전통과 본질에 서양의 도구와 기술을 더한다는 중체서용中體西用으로 부국강병을 꾀하자는 주장이 강해집니다. 엄복이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이었죠. 가서 부국방병을 위한 기술이나 배우고 와라. 그러나 정치를 하려면 일단 과거부터 봐라. -- 그런데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지고 영국과 프랑스 등의 서양 열강에도 시달리며 중체서용은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때 엄복 같은 지식인들에 의해 사회진화론이 활발하게 수용되는 거죠.

여기서 중국인들이 받아들인 사회진화론의 주된 논리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사회진화론에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건 그 역사관과 ‘경쟁’이라는 개념입니다. 기존에 중국 역사관은 순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진화론의 역사관은 역동적이며 거듭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걸 전제합니다. 계속 진보하고 발전하는 역사.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경쟁’입니다. 사실 기존의 유학에서도 모든 존재는 천리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으로 동등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신분과 종족 등에 따라 수직적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객체 간의 경쟁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사회진화론에서의 경쟁은 그 시작점이 동일합니다. 동일한 시작점에서 출발하는 동등한 개체들. 이걸 전제로 해야 진화론에서의 경쟁이 성립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서양사상의 유입으로 중국 전통에 없었던 개념들이 들어오고 기존 개념들마저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집니다. 가령 그때까지 중국엔 서양에서 nation이라 하는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를 자연으로 번역해도 지금까지 중국에서 쓰였던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리죠. 동아시아에는 자유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서양에는 revolution이란 말이 있지만 이걸 번역하려면 민권과 인권, 개체의 등가성 등의 개념을 가져와야 합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는 그러한 개념들은 물론 평등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죠. 지금 우리의 언어와 사유패턴을 생각하면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말이 근대 이전에는 없었던 말이란 게 참 이상합니다. 결국 우리의 근대는 서양의 근대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특히 엄복의 ‘천연론’이 기여한 바는 동아시아에는 없었던 ‘법’에 대한 번역을 증폭시켰다는 점입니다. 당시 탈 중심화된 사회의 지식인들은 국제정치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에는 객관적 심판자로서의 법조차 없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법과 자연과학이 없었죠. 엄복이 중체서용을 넘어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요청한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더 이상 中體만으로는 당시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를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서양의 법칙에서 찾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엄복은 근대인이었습니다.

이제 엄복의 ‘천연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天은 대략 상제, 그냥 푸른 하늘, 그리고 저절로 되어가는 과정 등으로 이해됩니다. 엄복에게서 하늘은 ‘저절로 되어가는 과정으로써의 하늘’입니다. 이 개념은 주역이나 노장에서 변화하고 生生不息 하는 하늘에서 가져왔는데, 헉슬리에게서 nature를 뜻하는 cosmic process에서의 ‘process'와 가장 근접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걸 그냥 天이라 해도 process의 의미를 담아내기 어려워 演을 덧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天演‘이라는 말에는 변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요, 이 변화는 사실 중국적인 순환의 의미가 아니라 계속해서 나아가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엄복의 天은 진화론과 만나 투쟁하는 자연, 생존경쟁, 자연선택이 이뤄지는 변화의 장이 됩니다. 그러한 천의 이해는 진화를 이해하는 것이며, 진화에 대한 이해는 세상 만물 법칙의 이해이자 사회변화에 대처하는 원리로 받아들여지죠. 이러한 사회진화론에 입각해서 엄복이 내세운 원칙은 ‘적응’입니다.

‘적응’이란 ‘환경에 적합하게 되기’인데, 엄복은 여기에 ‘任天’을 덧붙입니다. 인간이 외부 환경과 싸워 이겨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 또한 우주원리에 따라 간다는 논리인 거죠. 엄복은 이를 自强不息이란 말로 설명합니다. 이 말은 원래 주역에서 군자가 쉬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엄복에 의해 진화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 자강을 위한 智德體개발을 강조하죠. 결국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는 건데, 그가 내세운 개념들이 유학의 格物窮理나 修身과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엄복은 영국 유학 출신으로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해 유학의 언어를 끌어들인 것입니다. ‘천연론’에서 ‘격물궁리’라는 말을 쓴 것도 세계의 객관적 이치를 밝히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했던 거죠.

복잡합니다. 저희 조원인 구모양은 ‘스펜서가 그립다’고 부르짖을 만큼 엄복의 책은 난해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읽고 있는 담사동도 그렇고, 근대에 확 바뀐, 아니 근본부터 뒤집어진 기존개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때문입니다.

사실 저희 조에서 ’왜 天演인가‘란 문제로 한참을 얘기했는데,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채운샘 설명이 없었다면 계속 의문으로 남았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천연론‘의 모든 개념들이 다 그렇습니다. 중국 전통 사상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서양의 사상을 직역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이해와는 또 다르고....어떤 방향으로도 이해할수 없다는 건 의심되는 모든 길을 파보아야 한다는 말이겠죠. -- 정말 그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직접 따져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란 거죠.

그렇지 않아도 저희 조 토론 때 정옥샘께서 天 의 개념으로 기말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하셔서 어떻게 쓰실 건지 물었습니다.(정옥샘~홧팅!--)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경전들에서 天이 어떤 의미로 어떻게 쓰였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고 이해하고, 엄복이 무엇을 취하고 버렸렸는지 따져보고, 서양 사상과 어떻게 합해졌는지 매우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근대 지식인들의 책을 읽으며 오히려 기존의 개념과 내가 알고 있던 개념들을 되묻게 되는 것. 전 쫌 그랬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하나 따지고 되물어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개념의 두께를 파헤치는 게 정말이지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겠다는 생각에 쪼큼 겁도 나고 그렇습니다. --

채운샘께선 엄복으로부터 그가 사회진화론을 어떻게 수용했고, 그의 천 개념이 기존 개념과 어떻게 다르며 왜곡, 굴절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천연론’을 한번만 읽어서는 역시 잘 모르겠네요. 그것만 읽어서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일단 천연론을 한 번 읽고, 이후 헉슬리의 책을 한번 더 읽고, 마지막으로 둘을 비교해서 또 읽고....이런 무한반복의 독서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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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발제 땜에 쫓기듯 써서 잘 모르겠네요. --

그런데 하다 보니 후기작성이 저에게 꼭 필요한 공부란 걸 알게 됐습니다.

제 무덤 파는 일이 될 수도 있단 걸 알고 있지만서도,

앞으로도 매주 공부한 걸 제 언어로 남기도록 습관을 들여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전 주에 했던 것들 대충 보고 다음에 읽을 책에만 집중했거든요. 

그리고 에세이 전에 부랴부랴 미친년 널 뛰듯 정리하고요.

역시 저에게 필요한 건 차분하게 정리하는 습관!!!

아직까지 공부의 기본도 모르고 있었다니...-- 제 자신에게 또 한번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제에 의한 후기작성은 성장병 트리오에게 넘기는 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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