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동사서독은 쉰다는 기ㅃ...아쉬운 소식 전해드리며 공지겸 후기 시작합니다^^
이번주는 어쩐지 조별토론에서 서경의 권위가 한층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사기의 너무도 정제된 역사에서 거부감을 느낀 몇몇 조원들이 서경을 오히려 생생한 역사로 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달까. 그러나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 자기 개념을 되묻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역사를 보는 관점'을 묻게 됩니다. 습관은 정말 깨기 어려워요.
우리는 지금 주관/객관이라는 이분법에 익숙해서 역사의 객관적 서술이 좋은 것이고 주관이 들어가면 바로 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대 동양에서 역사를 편찬하는 사관에게도 지금 우리의 주관/객관 개념이 있었을까요? 혹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것은 과연 객관적인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동양 사관의 기본 전제는 술이부작이었다고 합니다. 사마천도 결국 술이부작을 전제로 하고 사기를 썼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기에 사기는 완전히 작作한 책처럼 보입니다. 사마천은 어떻게 이 방대한 역사를 썼으며, 인물들의 세세한 대사나 행동, 그리고 전설적인 이야기는 대체 무슨수로 알고 집어 넣었을까. 사마천의 사기는 두말할 것 없이 사마천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이 질문에는 역사는 팩트를 보여줘야 하며, 작作이란 기본적으로 허구라는 나 자신의 개념으로 사기를 보는 것입니다. 사마천에게 작은 주관이나 왜곡이라는 뜻이었을까? 사마천에게 作이란 무엇이며 述이란 무엇인지 그것부터 물어야 결국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고 있는 역사와 패트라는 개념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됩니다.
팩트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 진실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은 과연 팩트를 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팩트를 말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인식이 객관적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디 그렇던가요. 방금 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판국에.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서술할 때 반드시 탐문하여 들은 사실만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과 기록은 그 자체로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내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보고 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 현장에 있던 모두에게 팩트가 될 수 없으며 모두가 자기를 거쳐서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이죠. 결국 역사의 진실은 역사를 쓴 사람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록하는 자의 진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역사 서술자의 관점이 뚜렷하다 못해 드라마틱한 사기와 서술자가 부재하는 것 같은 서경, 그리고 고고학적 탐사를 바탕으로 서술된 중국 청동기 시대. 어떨 때는 이 책이, 어떨 때는 저 책이 더 그럴듯하고 신빙성 있어 보이면서 나머지는 작가의 배경 때문에, 혹은 위서 의혹 때문에 왜곡된 역사라고 생각하며 갈대처럼 흔들거리지만 사실 모두 각자의 정합성 아래 진실을 말하고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해야 하는 건 결국 자기의 갠념을 깨뜨리는 것이죠. 그래야 다른 개념도 비로소 보인다는 말씀^^
역사에 관해 하나의 토픽을 정한 다음 의문점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면서 읽어나가야, 에세이...크흡...에세이를 쓸 때 손에 쥔 재료가 없다고 우는 일이 없겠죠...
다음주는 쉽니다. 중요하니까 두번 말합니다. 5월 황금연휴 잘 보내시고 5월 10일 봐요.
<중국 청동기 시대 下> 안 읽은 나머지
<사기> 주본기, 백이숙제열전
<서경> 주서 중 10편
니체, <반시대적 고찰>중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나눠드린 자료들 <중국정치사상사-선진편>,<성인제왕론과 양생술>, <고대중국>
읽어옵니다. 종류가 여전히 많습니다. 공통과제에 잘 녹여 보아요^^
발제
청동기, 사기, 서경은 영수쌤
삶에 대한 역사적 공과는 혜원
간식은 윤정언니, 완수쌤
연휴 잘 보내시고, 다음시간에 봐요!
5월 10일이라니~~~ 아하, 멀다. 그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요?ㅋ 푹 쉬고, 마알간 얼굴들로 뵈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