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간에다 한 자 한 자 새겨가며 사기를 완성해 가고 있을 인간 사마천의 얼굴과 손끝을 떠올려 봅니다. 그는 어떤 눈길과 표정으로, 방대한 자료들과 자신의 머릿 속을 떠돌고 있을 인물들의 이미지와 사건의 그림자를 글로 나갔을까요? 그리고 2천여 년의 시간. 그 동안 사마천과 사기라는 거대한 세계에 홀려 인생의 한 때를, 어쩌면 주어진 생애 전체를 탕진해 버리고 말았을 누군가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사기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요? 인생의 시간을 그렇게 써버리고 말아도 좋을 만큼 사기가 그렇게 깊고 거대한 세계였던가요?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는 이 사람은 앞으로 사기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그 동안 사기에 목을 맸을 그 누구도, 아니 태사공 자신조차도 읽어내지 않았을 그 무언가를 읽어냄으로써 사기의 세계를 한 뼘이라도 더 확장할 수 있을까, 그럼으로써 그만큼의 자유의 여백같은 것을 갖게 될 수 있는 걸까요? 참 막막하고도 두려운 느낌이 전신을 소용돌이처럼 휘몰아가는 듯도 합니다. , 찬 바람이 옷사이로 스미는 가을이라서, 돌아보니 여전히 허둥대며 살고 있는 인생이 쓸쓸하고 비애스러워져라 해도 좋습니다^^. 이번 주에 읽은 다케다 다이준과 가라타니 고진의 글, 그리고 채운의 강의는 읽고, 쓰고, 산다는 것이 갖는 의미와 그것들간의 내밀한 연관관계 및 상호규정에 대해 처절하고도 눈물겨운 심정으로 돌아보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케다 다이준(1914-1976). 근대 일본의 문예가이자 중국학 연구자로, ‘루쉰 평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다케우치 요시미와 절친이기도 하답니다.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아시아를 향해 침략의 손길을 뻗던 1937, 학도병이 되어 중국 본토로 끌려간 그는 그곳에서 정신적, 지적 조국과도 같았던 중국 문명이 자국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고 유린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답니다. 한 세계가 붕괴와도 다름없었을 그 같은 경험과 세계의 잔혹함에 대한 인식이 사기와 제대로 접속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을 거라고 합니다. 더불어 그는 문예가로서 살인, 식인, 죽음의 문제와 같은 극한체험을 다루는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는데, 이같은 성향들이 사기독해에 강하게 반영되었으리라고도 하네요. ‘사마천, 사기의 세계가 쓰여진 건 1943. 그리고 2년 후 그는 상하이에서 패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이상의 뭔가를 말씀드리고 싶긴 한데, 저도 금시초문이었던 분이고, 소세키를 비롯한 몇몇 외에는 일본 근대 소설가들이 소개되어 있지 않은 터라 저자 소개는 여기서 끝)

사마천과 함께하는 역사 여행??!! 일단 번역서의 제목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딴지를 걸고 싶을 정도로(괜히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깊이 있고 풍성한 논의들을 담고 있는 매력적인 책이라는 데 조원들 모두 동의했습니다. 더구나 역사학이 아닌, 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사기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고, 자기 시대의 문제 의식을 적극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읽고 쓰기의 전범을 보여준 문제적인 비평서라는 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우리 조에서는 주로, 다이준이 시종 강조하고 있는 정치적 개인, 공간화, 절대 지속 등의 개념에 대해, 그리고 우리 시대의 사기 읽기 문제 등에 대해 옥신각신, 갑론을박 제법 열띠게 얘기들을 나누었답니다. 논의들은 무성했지만, 좀 이질적이어서였는지 어려워서였는지 변죽만 울리다 끝나버린 듯도 하네요. 우리의 방황에 길잡이가 되어준 글이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에 대하여-다케다 다이준이라는 글이었습니다. 다이준이 사기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고진 또한 다이준으로 이끄는 듯하면서도 그 너머로 역사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개진하고 있는 터라 따라가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읽을 만한 글들은 원저자도 의도하거나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들을 건드리는 글들이었죠.^^) 채운 샘의 설명을 떠올리며 대략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은 다이준의 사기 독해의 핵심을, ‘사기라는 텍스트의 구조에 대한 관심, 다시말해 구조주의적인 접근에 두고 있습니다. 구조를 본다는 것은, 개체(개인)가 갖는 주체성 내지는 독립적인 지위를 부정하고 그 개체가 다른 것들과 맺는 관계를 우선적으로 바라보겠다는 것이죠. 여기서는 의미 또한 애초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관계체계 속에서 솟아오르게 됩니다. 당연히 어떠한 고정된 중심이 존재하지 않고, 중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한 관계 속에서 일시적으로 구성되는 것일 뿐이라 언제나 무너지게 되어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세계는 애초부터 중심이 부재하는 카오스로서만 존재하는 무위자연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어쩌면 진공 상태 같기도 한 것. 고진은 다이준이 사기에서 독해해 낸 것은 그같은 진공이었고, ‘구조를 읽으면서 그 비밀을 밝히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이같은 구조적이고 기호론적인 시각은 노장적 사유와도 통하고 다이준의 불교와도 들어맞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가 고민했던 개인이나 공간성의 문제 또한 구조주의라는 잣대를 빌리면 많은 부분 해명이 됩니다. 먼저, 다이준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인간이나 정치적 개인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주체가 아니라, 관계의 장 속에서 늘 변화하는 상징적인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플레이를 하느냐에 따라 그 역할과 의미가 달라지는 역동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항우는 고조(유방)와 그 주위의 정치적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세계의 중심으로서 의미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항우만 그렇던가요. 생각해 보면, 한 인물을 다른 편들에서 서술하는 방식을 보면 또 얼마나 다른 모습들인지, 인간은 내부에 무수한 균열들을 안은 채 다른 존재들과의 연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전체 구조를 보지 않으면 사기 속의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기가 힘들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이처럼 사기의 세계를 구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역사를 공간적으로, 공시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연결됩니다. 공간성을 사유한다는 것은 단선적이고 인과론적인 역사관에서 벗어나 중심 없는 세계의 혼돈과 무질서를 승인하고 그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변화와 운동에 주목하자는 것일 테니까요. 그 공간성의 세계에는 도덕이나 진리 같은 건 없고, 오로지 힘들의 충동만이 있을 뿐입니다. 고진이 보기에 다이준은 사기에 대한 구조주의적 독해를 통해서, 명멸하는 인간 삶의 밑바닥을 흐르는 근원적인 혼돈과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들을 읽어내고자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역사와 역사가에 대한 놀라운 견해들을 밀고 나갑니다. , 읽어 보시죠.

 

-사람은 분노수치때문에 세계의 기록을 완성하려고 할까? 오히려 세계의 기록을 완성하려는 사람에게 언제나 분노와 수치가 따라다닌다. 사마천의 분노는 아버지나 자신의 굴욕적인 체험이기 이전에 그들이 바로 역사가라는 사실에 따라붙는 것이다.

 

-역사가는 자신의 무력함과 원한 때문에 그것을 역전시키기 위해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쓰는일에만 역사가 존재한다.

 

-‘쓰는일은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일에 의해서만 분열을 통합할 수 있다는 위기에서 생겨난다.

 

-중요한 것은 역사는 사실의 기억도 기록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쓰는 일 자체를 통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쓰는일에는 처음부터 잔혹한 것이 숨어 있다.

 

-기록은 쓰는것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위기적(critical)인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비평적(critical)일 수밖에 없다.

 

역사란,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균열을 감지하고, 그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쓰는행위를 통해 봉합하고자 하는 절박한 노력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거라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역사에 대해 거의 선험적인 것으로 지니고 있던 사고나 생각들이 얼마나 나이브한 것이었나를 한방에 깨우쳐 주는 듯합니다. , 얼마나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한 건지요.ㅠ ㅠ

가라타니 고진을 읽고 난 후에, 다이준의 텍스트로 들어갔는데, 다 읽진 못하고 본기 부분까지만 읽었네요. 남은 부분은 다음 시간에 읽는다 하니 사마천과 함께하는 역사여행꼭 챙겨 오시길 바랍니다. 본기 부분에 대한 내용 정리는 세가, 열전 부분과 함께 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쓸데없이 내용만 길어진 것 같네여. 잘못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 추가해 주시면 서로서로 좋겠지요.^^

 

 

다음 주에 읽어야 할 글

1.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 3과거 쓰기

2. 프린트 논문, 조셉 니덤 중국과 서구에서의 시간과 역사

 

이상 두 글에 대한 발제는 완수샘, 간식은 유누님입니다. 그리고 맹자 등문공 상의 마지막 부분 외워 오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빠진 거 없지요?^^

 개인적으로는 졸지에 열공의 화신(?)’에서 졸음신, 산만의 아이콘으로 전락해 버린 최악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후기도 살짝 자숙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기도 하고요. 수업 중에 채움샘께서 나만 뜨거운 거냐고 거듭 울분을 토하셨는데, 다들 다음 시간에는 마음들을 조금 더 달궈가지고 오시면 좋겠습니다요. 토요일에 뵈어요.

 

  • 지나가던 수경 2014.10.14 12:10

    하동 님이 누구실까요...태욱쌤의 새로운 닉넴? 그리고 채움샘은... 동사서독에서 지어준 채운쌤의 새로운 별명..? 

  • 채운 2014.10.14 15:35

    하동은 또 무슨 가면인지... 건 그렇고, 태욱샘이 저에 대해 분열을 앓고 계시는 듯. 채운이랬다(니가 뭔데, 날  '산만'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거니? 쳇!... 뭐 이런 심정?), 채운샘이랬다, 급기야  채움샘까지(그래도 지식을 채워주니까 봐줘?... 뭐 이런 심정??) ... 다 좋슴다. 결석만 안 하시고, 중간중간 땡땡이만 안 치신다면... '수갑을 채운'이라 해도 됴아요...ㅋㅋ

  • 하동 2014.10.15 06:45
    첫째 단락은 새벽, 중간은 2교시 비는 시간, 후반부는 점심 시간의 제 마음인 듯~~ㅋ 그나저나 누가 보면 만날 결석하고 땡땡이 치는 사람인줄 알겠슴다~? 이러니 정색을 아니할 수가~~아오~~~!!!!
  • 현옥 2014.10.14 20:40

    아우~  결석한 타격이 벌써 산더미처럼 느껴집니다!!!  우째야 좋을까요...

  • 하동 2014.10.15 06:54
    우리 별로 달라진 거 없으니깐 아무 걱정 마시고요~~ 책 열심히 읽어오시고, 앞으로 더 뜨겁게 부딪쳐 보아요~~(이 느낌 뭐지~~? ㅋ)
  • 어머나 2014.10.16 01:02

    꼼꼼 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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