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채운샘에게 말씀드리고 학인 분들께도 말씀드리는 게 순서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토요일 무단결석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일단 제 사정을 말씀드리고 관두는 게 도리인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제 마음을 좀 정리해야 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전시 장소 답사 등을 추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갈등이 있었습니다. 당장 이번 달에도 그렇고, 하반기에는 9월부터 11월까지 전시가 잡혀 참석이 어렵게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제가 너무 헉헉대니 동생들도 위기를 느꼈나 봅니다. 그래서 여동생에게 한 소리 들었는데, 어제 채운샘께서 하셨던 말씀과 같았습니다.-- 끈기가 없다, 중심이 없다, 수습을 못한다, 우유부단하다, 몸은 왜 그 모양이냐 등. 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끝에 결국 제 선택은 ‘동사서독을 내려놓겠다’ 였습니다.
일요일에 고고씽 강의 끝나고 채운샘과 은영언니, 제리언니에게 제 속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샘들의 질책 속에서 어버버하며 변명만 늘어놓았네요. -- 그런 가운데 몇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다른 것도 아닌 동사서독을 내려놓느냐. 관두려면 관두지 왜 불교엔은 하겠다는 것이냐. 그리고 작업....
우선 동사서독. 좀 오래 번민했습니다. 아마도 불교 때부터였는데, 이유도 모르고 한숨만 푹푹 내쉬고 괴로워하길 반복했습니다. 원래 공부가 힘들다는 건 아는데, 도무지 꿈쩍을 안하니 정말 답답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고,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하는데 나만 모르니 이걸 계속해야 하는 건가.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어느 순간 제 자신이 너무도 심각한 결함이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동사서독 공부를 관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왜 생각지 않았겠습니까. 몇 년 간 함께 공부했던 학인들, 함께 공부했던 것들... 제 인간관계나 공부의 모든 것이 동사서독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걸 관두겠다는 건 그만큼 크게 마음 먹은 게 있어서입니다. 어떻게든 잘 해보자며 계속 버티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뭔가 제 문제를 다시 생각하며 다잡아야 할 때인 것 같은데, 그게 동사서독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너무 어렵고, 앞으로 대장정을 생각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중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매 주마다 지적받고 있는 것만 봐도 제 공부에 총체적 문제가 있는데, 이걸 고치려고 잠깐 쉬는 걸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구요. 대장정 와중에 저나 학인들에게도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줄 것 같았구요.
그래서 제 문제가 본격화된 불교공부에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못지않게 어렵고 할수록 빡세다는 거 압니다. 그럼에도 불교공부하며 제 몸과 마음을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 질문이이 몸에 있어서요.
사실 몸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이젠 정말 누구에게 말하기도 지겨울 만큼 저도 좀 지친 상태입니다. 최근에는 공복에 토마토만 먹어도 훌쩍 뛰고, 최근에는 몸의 열 때문에 새벽에 깼다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또 쇼크 오고 합병증 생기고.... 그런데 의사도 방법을 모르니...-- 운동이요? 3시간을 뛰어도 소용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좀 많이 지쳤습니다. 해답이 없는 이 고리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사실 제 몸은 좋았다 나빴다 한 적이 없었습니다. 쭉 안 좋았죠. 한 알 먹던 약이 어느 순간 여러 개로 늘어난 것밖에 없습니다. 이게 하루 이틀도 아니다 보니 어느 순간 제 몸에 대해 괜찮다는 말로 회피했습니다.
동생들과의 작업 또한 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동기야 어찌됐든, 작업 하는 동안 몸을 쓰는 게 좋았습니다. 아직 많이 서툴지만, 현장에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지금까지 써보지 못했던 근육을 써보고... 그러면서 셋이 엄청 싸우는데, 물론 연구실에서 지적받는 거, 동생들에게도 지긋지긋하게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나면 받는 쾌감이 있습니다.
채운샘께서 우려하시는 것, 어떤 건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동생과 얘기하며 피하지 말고 마주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두 이 작업이 제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찾더라도 이 안에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이 배우고 익혀야겠지만, 어느 순간 제 공부나 고민들이 모두 이쪽을 향하고 있기에 더 늦기 전에 이걸 중심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 몸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배우고 움직여서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얼마나 무모한지 압니다. 공부하는 것 이상으로 괴로울 때도 많습니다. 제 글쓰기의 문제점이 여기라도 예외일까요. 그래도 한번 가보려구요. 지금은 감독과의 대화가 절실할 만큼의 자폐적이고 난해한 작품들뿐이지만.... -- 그래도 이걸 깨기 위해 동생들과도 피터지게 싸우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전학교 아니라면 이걸 시도하지도 알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지만, 그렇다고 질질 끄는 건 더욱 아닌 것 같아 결심하게 된 겁니다. 채운샘께서 게시판 지저분해진다고 뭐라 하셨지만, 그래도 일단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길고 장황한 글밖에 못 남겼지만요. -- 공부를 다 관둔 게 아니기에 다른 시간에 뵈면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동사서독 관둬야겠다고 맘먹은 순간 샘들께 너무도 죄송했습니다. 그동안 받은 게 너무 많잖아요. 이걸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지... 죄송하다는 말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제리언니, 은영언니, 옥상언니, 영수샘, 혜경샘, 완수샘, 태욱샘, 혜원이, 윤정이, 율희, 은남샘....
정말 죄송합니다.
만나면 질책도 좋고, 욕도 좋고, 저주도...어떤 말도 상관없으니 마구 던져주세요. 제가 또 맷집은 좋잖아요. -- 모두들 대장정 끝까지 가시고 나중에 제가 좀 나아진 상태가 되면 그때 공부하신 것들 알려주세요.
아이구 효진쌤~ 토닥! 토닥!^^ 7월 끝나면 밥한번 먹어요..만난 거 사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