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했던 개념이나 언어의 용법, 그리고 역의 논리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계신지요. 뭔가 좀 알만하다싶으면 뭔가를 써 내야하는 때가 바로 닥쳐온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계실테고, 모르는 분들은 반드시 아셔야 한다는 거. 초장에 확 잡아놓으면 그 때에 대비하기가 그나마 좀 쉬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사서독 천지인! 이번에 세 번째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역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나 개념의 정의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확실히 이해하셨는지요. 음양을 의미하는 두 개의 기호체계로 이루어진 8개, 나아가 64개의 상을 ‘괘’라하고, 그 괘에 대한 해석 체계가 계사(‘단’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괘를 이루는 6개의 자리를 ‘효’라 하고, 그 효에 대한 해석이 '효사'라고 합니다. 효사는 384(64×6)개가 되어야 옳을 것 같지만, 건괘와 곤괘에 대해선 특별히 총론격에 해당하는 효사가 각각 하나씩이 더 있어, 총 386개의 효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효의 이름은 ‘九’, 음효의 이름은 ‘六’이라고 한다는 것도. 그래서, 6개가 모두 양효로만 이루어진 건괘의 경우는, 맨 아래에 있는 효에서부터 차례로, 초구-구이-구삼-구사-구오-상구라 부릅니다. 역경의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하는 건, 효사일텐데, 효사가 중요한 이유는 괘가 나타내는 전체의 상 못지않게, 하나하나의 자리나 그것들의 변화를 볼 줄 알아야 각자의 처지에 바탕해 ‘변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어떤 괘가 엎어지고 뒤집힌 상태인, ‘종괘’니 ‘착괘’니 하는 말들도 알아두시면 좋을 듯합니다.
저희 조에서는 주역을 공부하는 일의 어려움과 불편함, 나아가 부끄러움(^^) 등에 대해 논의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동안 주역에 대해 갖고 있던 오해나 통념 등을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흔히 주역을 보는 최종 목적처럼 얘기되는, 길흉을 아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고요. 하여, 우리는 제대로 자신을 돌아보고 살기 위해, 이제껏 그래왔듯 자아를 강화하거나 주체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반성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주역을 공부해야 한다고 입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존재 방식으로서 ‘易’과 ‘空’이 갖고 있는 유사성과 차이에 대해, 이것들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이나 사유훈련은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 등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易의 사유는 어째서 불교처럼 원대한 종교적 비전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않고, 지적 인식 훈련을 통한 지혜의 확장이나 통치 이데올로기 수립의 차원에 머물고 말았을까요? 인도와 동아시아라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건지, 아님 유교에서 일찌감치 자기네 것으로 전유하고 말았기 때문일까요? 외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넘어설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둘 사이에 있기 때문일까요? 꺼내놓긴 했지만,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해 여태껏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의문들입니다. 참, 조별 토론 시간에 현옥샘께서 하신 주옥 같은 말씀 한토막. 글을 쓰려거든 반드시 본전 뽑을 생각으로 써라. 애써 힘들여 시간들여 한 페이지 글을 쓰는데 하나마나 한 말을 갖다 붙이냐, 전에 안 해본 생각을 한번 해봐야 하지 않냐는 거죠. 조원들 모두 감읍, 초공감!
강독 시간에는 4-6장을 읽었습니다. 지난 번 내용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싶으면서도, 반복 덕에 음양의 이미지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일음일양이라는 걸, 음이 양으로 변하고 양이 음으로 변해가는 것으로, 다시 말해 음양의 갈마듦을 어떤 고정된 존재들의 변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서로를 안에 함축하고 있는 상태에서 특정한 힘이 표면화됨으로써 나타나는 변화 양상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세계는 하나의 힘이나 기운이 두 개의 다른 방식으로 나타남으로써 변화해 간다는 게 역의 기본전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해서, 일원론으로 보나 이원론으로 보나 그게 그거라는 것! 맞나요?(^^) 또 하나, 이번에 분명하게 확인한 것 것은, <주역>은 몰라도 공자가 지었다는 <계사전> 만큼은 철저히 유학 텍스트라는 사실. 易으로 드러나는 자연의 이치나 도를 깨닫고 따르는 것이 인의예지와 같은 유학적 윤리, 나아가 덕치와 같은 통치 이념과 직결된다는 것을 <계사전>은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학에서 말하는 성인 또한 천지의 운행을 그대로 내재화한 존재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를 두고, 유학은 결국 존재론과 윤리론, 정치론이 한틈 빈 곳없이 일치하는(상태를 지향하는) 사유체계라고 채운샘은 말씀하셨죠. (이같은 유학의 이상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주문도!!!) 주희에 오게 되면 이 작업은 더욱 정교하고 방대하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요. 노장 사상에도 역의 사유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데, 유학이 아니라 이쪽에서 강하게 밀고 나갔더라면 동아시아의 사유 지형도가 다르게 그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됩니다.
조금 알겠다 싶어 다시 들여다보면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그럼에도 남는 것은, 세계 안에서의 나의 자리와 처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역에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내 꼬라지를 곰곰 들여다보게 됩니다. 단, 단독자로서의 내가 아닌, 천지 운행의 한 고리로서의 나를.
다음 시간 공지.
발제 : 남회근의 <주역 계사 강의> 9-10장은 박수영, 11-12장은 혜경샘.
간식 : 제리샘, 백수영샘.
공통과제는 및 맹자 암송은 전원 필수.
지난주 간식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남은 떡도 가져가서 잘 먹었습니다. 너무 무리하신 건 아닌지요.(^^) 암튼 감사. 나의 로망 쿤우 샘은 여행 즐기시는 가운데 아조 잊어버리지는 마시고, 잘 찾아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알싸한 봄추위에 건강하시고, 토요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