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뇽하세요. 수빈입니다 ^^
어제까지 이어진 연휴를 뻑쩍지근하게 보내느라 후기가 좀 늦었습니다;; 헤헤
고작 두번째 에세이 발표였지만, 에세이 발표는 매번 할 때마다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이 제 머리를 스쳐가는터라 잘 추려내고 정리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첫 에세이 발표 때는 지난 토요일 보다도 훨씬 길게 느껴졌었는데, 오히려 이번 발표가 좀 더 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했더랬습니다. 고작 한 시간자고 왔지만 전보다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건 단지 적응해서일까요.. ?ㅎㅎ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를 쓰면서 오랜만에 고전학교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난 번 수업의 채운 선생님의 말마따나 4월 에세이 이후로 복잡복잡한 이유로 왠지 모를 침체기에 빠져있었는데, 에세이 '3장'!!!이라는 과제를 눈앞에 두고 그래도 뭔가 꾸역꾸역 채워내느라 높이 쌓아둔 책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일이 오랜만에 땀흘리며 운동한 것과도 같은 개운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자 붙은 선생님들과 제가 무슨 인연이 있다고 이러고 공부를 하고 있는지 투덜투덜하는 시간들이 많았는데, 일단 써야 되니. 뭐 어쩔 수가 있나요... ㅎ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번 에세이를 계기로 '그냥 공부 하나 해봐야지'가 아니라, '내가 고전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긍정할 수 있었습니다.
에세이 발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도의 회복이, 귀족적 품위의 회복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라는 것은 고리타분하고 꼬치꼬치 따지는 듯한 깐깐함이 아니라 철저하고 적극적인 자기 통제를 통한 숭고함의 표현이라는 말은 결국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예를 모두에게 요구되는 규칙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하니 어떤 틀 밖으로 마구 뻗쳐나가고 싶은 마음같던 욕망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욕망을 조절한다는게 사회에 적응한 인간이 되기 위해 내가 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으로의 진전을 위해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니 '욕망을 가꾼다'라고 표현했던 선생님의 말씀도 좀 더 마음에 와닿을 수 있었습니다.
또 새로웠던 내용은 親親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효는 가족주의가 아니고, 자애는 정서적 유대가 아니다. 오히려 군신관계의 축소판에 가깝다는 말은 '일이관지'의 생활밀착형 설명으로 들렸달까요. 가족에 대해서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셨으니 좀 더 특별히 사랑하고 신경써야할 것 같은 부채감에 시달리기 쉬웠는데, 이 또한 새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사회에 대한 사랑?(옛날의 군신관계는 지금시대에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요?) 은 그 시작이 같다는 것으로요. 물론 가족은 그 관계가 더욱 가까우니 나타나는 방식이 군신과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 행동의 이유는 윤리적인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마음, 곧 내가 나를 품위있게 가꾸고자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효'가 어색하지만 끈적끈적하고 느글느글하고 찐덕한 관계가 아니라 보편적인 마음?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관계라는 해석은 요즘 교착 중이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효가 구체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그러면 묵자의 겸(each?)와도 연결되는 구석이 있을 것 같은 생각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의 문제가 곧 나의 비젼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글쓴이의 비젼이 극대화된다면 가만히 서 있어도 드러난다는 성인의 품위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뭔가 낭만적이네요♥_♥! ㅎㅎ
전 언제쯤 제 글의 입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헤헤
무식이 하늘 모르고 치솟는 수빈이지만 선생님들이 항상 새로운 것들을 잔뜩잔뜩 나누어 주셔서 아주 더디지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려요 !!
그럼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분발해보도록 하겠습니당!
즐거운 한 주 보내시고 토요일에 뵈요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