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의 체계와 음양의 논리에 다들 어느 정도 길이 들어가는 듯싶습니다. 불교적 사유는 물론이고, 스피노자나 니체 등을 인용, 언급해가며 역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네요. 생명과 우주, 그리고 인간의 삶의 핵심(核=心)에 육박해 들어가고자하는 노력이나 그 설명 방식이 동서고금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들을 자주 해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東思西讀해야할 밖에 없다는 건데,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공부 또한 제 길을 찾아들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더 깊게, 멀리 뻗어나가 경계 없는 곳까지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허황한(?) 생각까지도 감히 해보게 되는군요. 시공을 가로지르는 멋진 콜라보가 가능해지는 그날까지~~!
드디어 남회근 선생의 <주역 계사 강의>를 다 읽었습니다. ‘한 소식’ 접한 분인데다 의리적 역해석을 마무마구 밀고나가는 바람에 길을 헤매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떻게 주역과 계사를 읽고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친숙한 언어로 풀어주신 덕에 그나마 쉽게 입문할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특히, 중국 사유 전반에 대해 환하게 꿰고 계신 분의 글이라 드넓은 시야 속에서 주역의 현재적 의미나 역할, 사상사적인 위치 등에 대해서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감사 감사~~.) 이번 학기 끝날 때까지 곁에 두고 반복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강독 시간에는, 하권 1장과 2장을 읽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음양이니 강유, 길흉, 괘, 상, 효 등과 같은 개념어적인 표현들보다는, 움직씨(동사)들이 힘차게 가슴 속으로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推, 變, 化, 動, 通, 勝과 같은 말들요. 서로를 밀고, 바뀌고, 되고, 움직이고, 통하고, 겨룬다는 것! 사실, 이 작용이나 동작을 나타내는 말들이 역의 정수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세계는, 그게 음양이든 힘이든 실체든 뭘로 설명하든간에 그것들의 움직임으로서만 우리 앞에 현현하게 될테니까여. 그러니, 음양이니 강유니 모두 그 자체로는 죽은 말들, 아니 움직임을 통해 드러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나중에 갖다 붙인 말들에 다름 아닐 테지요.
1장의 강독 내용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變通者 趣時者’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변,통’은 우주만물의 자연스러운 이치이자 법칙인데, 이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취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趣時는 무언가? 내가 時에 따라 호응하여 그것에 합치되는 것이겠지요. 남회근 선생임은 시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도 하시는데, 뭐 크게 다른 얘기는 아닐겁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채운 샘은 시간이라는 게 공간과 분리되지 않을뿐더러 내 밖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시라고 하는 것이 나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표상일 뿐이고 사실은 내 안에서 나의 생명과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時를 내가 이미 구현하고 있는 것이니, 나를,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바로 시를 趣하는 일이 되는 셈이죠. 우리가 이 時를 알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우리의 마음 자리가 온갖 쇠항아리 같은 껍질에 의해 단단하게 둘러쳐져 있기 때문일거고요. 잘 받아들여지시니요? 어쨌든, 자기를 보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時運에 맞게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만큼은 분명.
1장에서 하나 더 새겨야 할 것이, 易의 세계는 簡하고 易(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상 강조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주역이 뭔가 거대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표상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소위 ‘인간의 길’을 걸어오면서 이 간이한 세계와 결별하기 시작한 것이겠지요. 그 발자국들을 지우거나 되돌리지 않고는 쉽지 않은 노릇일텐데요, 공부라는 건 어쩌면 이 簡과 易에 대한 믿음을 단단하게 매조지하는 일일거라 생각합니다.
2장에서는, 주역에 담긴 인류학 또는 역사철학을 확인할 수 있었네요. <계사>의 저자는 복희씨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생기고 변화 발전하는 과정을 하나하나의 ‘괘’와 연관지어 살피고 있습니다. 앞뒤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데다 뭔가 작위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기도 했습니다만, 주역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역사를 보면 또 이렇게 설명하는 것도 일리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편, 복희씨에서 신농, 요순을 거쳐 문황 같은 이후 성인들의 업적을 통해 문명의 전개를 설명하는 그 흐름을 보노라니, 초월적 신이 아닌 영웅적 인간들을 그 중심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문화의 인간중심적이고 현실주의적인 면모가 새삼 눈에 들어오기도 했던 거 같고요. 그리고, 이 대목들을 읽으면서 우리, 괘의 형태와 조합, 그리고 이름에 대해 하나하나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물론, 바로 바로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습지요. 앞으로 주역을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으면, 자주자주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전, 요즘 시험 감독하면서 중간 중간 헛기침해가며 이거 머릿속에 주워담고 있는데, 시간 무쟈게 잘 갑니다.^^) 참, 2장에도 빛나는 구절이 있었지요. 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절대 진리 아닌가요? 두고두고 새겨보아요.
각 조의 토론 시간에 나온 내용 정리는 재길샘과 재원샘이 올리실 테니 기대해 주시고요, 다음 시간부터는 드뎌 <중용> 읽기에 돌입합니다. 주역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들어가는 거라, 그냥 읽었을 때랑은 좀 다르지 싶기도 합니다. 자, 기대감을 안고 중용의 세계로, 고고~~~!
읽을 책 : <중용>(현암사, 이동환 역) : 분량은 채운 샘께서 직접~~.
발제 : 이현옥 샘.
다함께 : 공통과제, 맹자 암송.
간식 : 크누, 제리 샘.
채운 샘께서, 진도 관계(?)로 중간 에세이를 건너뛰시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아이고, 아쉬워라^^). 나름 중간 정리 잘 하시고, 지금까지 안고 있던 고민이나 문제의식을 학기말까지 이끌고 가시면서 심화 확장할 수 있어야겠습니다(내가 써놓고도 웃음이~~^^). 일교차가 매우 심한데, 몸들 잘 챙기시길요. 안녕.
지가요, 집안일로 이번 주에도 - 이번 주 딱 한번만 더 하고 이제 안할께요- 결석을 하게 되었습니다요.
지난 토요일날 맛난 안주에 술까지 걸지게 얻어먹었는데 수영쌤께 발제 바가지를 씌우게 되어서 너무너무너무 죄송합니다요! 꾸벅^^ 그리고 저희조 반장님께도 죄송하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