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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혜원이가 지난주에 주역 점을 쳐보았던 모양입니다. 매뉴얼대로 인시에 깨어 청정하고 텅빈 심신으로 임한 건 아니었고, 할 일 없는 친구들하고 까페에서 탁자 위에 빨대 늘어놓고 중인환시리에 그 짓(!)을 했다고 하네요(洗心, 退藏於密하라 했거늘~~).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남옹께서도 말씀하시는 바, 점에 조금이라도 호기심 갖고 마음을 쓰는 자의 속사정이야 다 고만고만한 게 아니던가요? 다들 풀리지 않는 문제 한두개쯤은 있을 거고, 그 또래 아이들이 갖고 있는 삶의 판타지 같은 거도 어느 정도는 빤한 거고. 혜원이는 혜원이대로 또 동사서독 5년 짬밥의 풍월을 알차게 읊어댔을 거고. 하니, 다들 모두가 자기 얘기라고 혹하지 않았을 도리가 있었을까 싶네요. 근데, 조원들 모두가 뒤집어지거나 헉 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반전과도 같은 결말이 있는데, 바로 혜원 자신의 점괘입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다 알면서 그런 거를 왜 여기다 대고 물어?’였다네요. 놀랍지 않나요? 주역 언저리를 어슬렁댄지 몇 주만에 바로 점의 본질에 다가서 버린 거지요. 소경 문고리 잡는 격이랄지, 아님 역이라는 게 본래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임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이번에 우리 조는 그동안 책에서 배웠던 내용을 K양의 체험담을 통해 단박에 깨쳐버린 듯한 느낌들을 공유했더랍니다.

   큰 언니들 두 분께서 일이 생겨 못 나오신데다, 반장이라는 사람은 공통과제도 없어 조원들의 입만 바라보고 있고 또 한 남자는 중간에 나가야겠다는 말을 언제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지, 거기에 더해 발제 맡으신 분께서는 밤을 새셨는지 책상에 머리 박고 깊은 잠을 주무시지, 진짜 분위기 썰렁했는데(이건 뭐 부조리극 무대도 아니고 ㅋㅋ),  그나마 혜원 덕분에 유쾌한 시간을 가졌답니다. 고마워, 혜원.^^

 

   이런 사정으로 우리 조에서는 혜원과 수영이 쓴 공통과제를 중심으로 얘기를 나눴는데요, 전체 모임에서도 잠깐 언급됐다시피, 자연의 이치라는 게 끊임없이 변하고 변하는데다, 길흉이라는 것도 절대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고 한다면 굳이 점을 치고 길흉을 확인할 필요가 있냐는 혜원의 의문에 대해 좀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역이란 게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을 배워 자연의 질서나 우주의 이법을 따라 사는 법을 체득한다 하더라도, 인간인 우리로서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늘 선택과 판단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 뭔가에 의지해 눈앞에 현상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앎을 구하고 도움을 얻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는 얘기들이 나왔지요.(그래서, 남회근 선생은 점괘나 산명 같은 것은 依通이라고 하셨지요) 이에 대해, 채운 샘께서는, 노장은 그냥 자연의 질서를 따르면 되는데 인간들간의 질서나 관계, 통치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유학으로서는 늘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두고 길흉을 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여주셨고요. 그리고, ‘吉凶은 늘 외부가 아닌 나로부터 오는 것이란 말을 두고도 얘기들을 나눴는데요, 지극히 새길 만한 말이다 싶으면서도, 그렇다면 천재지변처럼 내 의지나 뜻과는 일점도 관련없이 맞딱뜨리게 되는 불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들이 없을 수는 없었지요. 아으, 세월호. 더불어 계사전의 이같은 논조는 아마도 修身이 강조되던 당시의 유학의 풍조와 일정하게 공명하는 바가 있을 거라는 얘기도 했고요. 그리고, 수영은 우리의 교육 체계 속에서 주역의 지혜나 가르침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얘기를 꺼냈고, 이는 자연학과 인간학, 존재론과 윤리론이 완전히 갈라서 버린 근대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까지로 나아갔지요. 이렇게 시간을 쓰고도 시간이 남고 남아서, 우린 문제적 텍스트 음양과 상관적 사유를 돌려 읽어가며, 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관계도까지 그려가며 집단지성을 발휘해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레이험의 <음양과 상관적 사유>, 지난 시간에 읽었던 <중국사유>보다 늦게 나온 책으러, 구조주의가 풍미하던 당시 서구 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음양 사상을 이해해 보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이랄 수 있겠습니다. 구조주의란, 어떤 대상이 갖는 의미란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다른 대상과의 관계망 속에서 결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는 사유체계나 연구방법론이 아니던가요?(맞나?) 우리가 이해하느라 애먹었던 것처럼, 계열 관계니 연쇄 관계니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는 걸 테고요. 이 같은 관점에서 음양이니 건곤이니, 길흉이니 하는 주역의 개념 쌍들이 유사와 대립의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을 거고, 이를 논리적으로 해명해보고자 한 결과가 이 책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음양을 상관적인 관계 속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그 통찰을 인정할 법도 하지만, 구조주의의 분석틀로 음양의 관계를 해명하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한 게 아닐까 하는 게 채운 샘의 생각이었습니다. 알다시피 음양오행이라는 것은 서로 견고한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는가 하면, 오행의 상생과 상극 관계 또한 긴밀하게 연동되어 돌아가는 체계이지요. 좋거나 좋지 않은 것이 고조에 달한 시점이라는 것도 그 반대되는 것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길흉의 문제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일테고요. 한 마디로 그 어떤 것도 자기만의 절대적인 힘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정치고 노동이고 역사고 모든 것들을 대립물들의 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서양의 사유체계로는, 구조주의가 아니라 구조주의 할아비라도 주역에 나타난 동양의 독특한 사유의 세계를 설명해 내기가 힘들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니 발제하신 완수샘도 그렇고 다들 그렇게 그 텍스트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씀까지(고맙게도~~~).

 

   <주역 계사> 강독 시간에는 11장과 12장을 끝으로 상편을 다 읽었습니다. 뭔가 남는 게 있는지요. 매번 비슷한 얘기들이 반복되다 보니 좀 지겹기도 했는데, 그만큼 그 논리에 익숙해져 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표현을 중심으로 정리해 볼게요. 먼저, 11장 앞부분에 나오는, ‘() 개물성무(開物成務)’. 지난 번에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이것이야 말로 역의 핵심이 아닌가 싶네요. 남옹의 번역을 따른다면, ‘개물은 물리세계의 근본법칙을 찾아내는 것이요, ‘성무는 인생의 근본법칙을 찾아내는 것이라네요. 그렇다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주역의 근본취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 되는 셈이지요. 이 때, 이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바로 재제(裁制)’이고 변통(變通)’입니다. 裁制란 마름질한다는 뜻으로, 음양의 자연법칙을 인간 세상에 맞도록 변환시킨다는 의미합니다. 요와 순, 우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은 이것을 제대로 해낸 사람들일텐데요, 이는 變通과도 통합니다. 이는 자연 세계에서는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인간에게는 음양의 갈마듦을 통해 드러나는 우주만물의 법칙을 문화나 제도, 정치 등으로 적용·확장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가적 통치의 핵심이 이 변통두 글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잘 새겨 보시길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구절이 있었지요. 그 유명한 공자의 명언. 書不盡言 言不盡意. 글은 말을 다 드러낼 수 없고, 말로는 그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종국엔 말과 글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말일 텐데요, 저한테는 말과 글을 얼마만큼 신중하고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면이 크네요. 그 정확하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요. 여튼,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그 큰 뜻에, 상과 괘와 계사를 공부하다보면 언젠가 다가설 수 있다고 하니, 주역 공부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 ‘이라는 말이 갖는 상징도 곱씹어 볼만했지요. 문을 닫으면 이라 이르고, 문을 여는 것을 이라 한답니다. 음양의 변화란 결국 한 세계 세계, 순간 순간의 문이 끊임없이 열고 닫히는 과정이라는 건데, 지금 여기 내가 선 자리에선 지금도 모든 것들이 그렇게 열리고닫히고 피고지고 살고죽고 생겨났다스러지는 일들이 진행 중인 거겠지요?(아아~~.) , 그리고 하나 더. 상권의 끝이 德行 두 글자로 마무리된다는 사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주부터는 하권에 들어갈 텐데요, 뭐 특별히 새로운 얘기가 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우리가 붙잡고 늘어져야 할 거 하나는 분명한 거 같습니다. 우리 시대는 확실히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정치 사이의 고리를 잃어버린 시대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천지의 작용을 바탕으로 인간의 질서를 세우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주역의 이념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것이지요. 채운 샘께서는 이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이를 에세이에 녹여내 보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고민고민고민~~~~~~^^

 

다음 시간 공지.

 

읽을 내용 : <주역 계사 강의> 하권 5-12()까지

발제 : 윤재원 샘

간식 : 현옥, 완소샘

다같이 : 공통과제와 맹자 암송

 

내용이 많으면 다 읽지도 않는다는데, 핵심도 없이 쓸데없이 길어져버렸네요. 안 나오신 분들이 많아서 나름 신경 쓴 것이려니 하고 이해해 주세요(ㅋ). 그나저나 이번 주에는 못 나오시는 분들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날 열공하시고, 토요일에 뵈어요.

 

 

 

  • 채운 2015.04.21 12:17

    하동샘의 후기로 알게 된 사실 둘  1)선무당(H양)이 사람잡았다 2)발제자(K양)는 띄엄띄엄 발제해놓고는 그날 토론에서 코박고 잤다! -> 흠흠... rabbit%20(11).gif

  • 하동 2015.04.21 13:25
    애들이야 떠들거나 말거나 자습시켜놓고 초를 다퉈가며 숨가쁘게 정리한 내용 중에 뭐 문제 있거나 보충해 줄거 있으면 살짝 덧붙여주셔야지, 그래, 지엽적인 거나 물고 계시단 말씀이지 말이~~~?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 열심히 토론 시간을 가졌단 얘기였는데...ㅠ 은남~~~. 미안하오. 그대가 표적이 될 줄은 내 미처 생각을 못했으니....^^
  • 제리 2015.04.21 12:42

     점괘 대박! ㅋㅋ

  • k양 2015.04.21 15:04

    아이고 들켰네요~ 반장쌤이 챙겨주신 니체 에세이 글 보고 구멍덜뚫린 글이 이런거로구나 정말 '니'자도 잘 모르는 저도 잘 알아먹게 쓰셔서 감동이었어요. 다들 띄엄띄엄 글 알아서 읽느라 애쓰셨어요... 앞으로도 뭐 금방 메꿔질 것 같지도 않고ㅠㅠ

  • 홍자 2015.04.21 17:38

    결석자에 대한 반장 샘의 배려^^

    감사합니다!~

    주역 4주차/어리둥절/ 암흑 속에 있습니다. 

    끝날 쯔음 빛을 향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주 결석 않겠습니다.^^

  • 이현 2015.04.22 06:56

    아,  홍자쌤이 절에 실습 가시는 날이었군요!  전  부득이한 일로 빠지면서도  난감한 텍스트가  찜찜이었는데... 오히려  심오한 토론이 된 듯 하네여...   반장님  목적대로,  빠진 저에게 엄청 실감나는 후기였습니다요!  감사하여요!^^yellow_emoticon%20(7).gif

  • 젖먹이재원 2015.04.22 21:28

    와 후기 짱이에요!!!  공부를 다시 하는 느낌이!!!  어떻게 같은 수업을 듣고 이렇게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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