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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인지 공통과젠지 에세이인지 뭔지..-_- 처음이라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헤맨 결과물입니다.

자기 말로 정리하는 거 어려워요... 


고전학교 13.3.29 정리 / 료


벤자민 엘먼, 『성리학에서 고증학으로』, 1장 전근대 후기의 담론혁명


“청대 고증학의 승리는 ‘유가 사상의 결점’으로 폄하되어 왔다. 많은 현대의 학자들은 청대의 지식인들이 중요한 윤리적 ․ 정치적 이슈들을 저버리고 척박한 문헌 고증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고 생각하였다.”(69) 나도 이랬다. 고증학이란 그저 지루한 대조 작업을 벌이는 거라고만 생각했고, 딱히 깊이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러나 청대의 지식인들에게는 바로 이 작업이 중요했다. 엘먼은 1장의 제목을 ‘전근대 후기의 담론혁명’이라 붙였다. 17~18세기, 중국에서 일어난 담론의 혁명. 분명 무언가 크게 변화했다. 우리에겐 고루하고 무의미한 작업으로 보일지라도.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겠다. 이들이 해나간 작업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아주 큰 질문이다! 앞으로 일 년에 걸쳐 진득하니 한족 지식인들이 놓인 상황, 그들의 심정, 그리고 이 지식활동이 나타난 조건들과 그 효과를 알음알음 쫓아보는 걸로.^^


1.

우리의 무대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17~18세기의 중국대륙, ‘청淸’이다. 이민족 지배자인 만주족은 마크 엘리엇이 주목한 ‘팔기제’를 통해서 그들의 법도를 무려 300년 가까이 이어나갔다. 정권은 이들이 꽉 움켜쥐고 있었던 셈. 그러나 이 시기의 한편에 여전히 텍스트(文)를 장악하고 있었던 한족 지식인들이 있다. 우선 중국에서 ‘경(經)’이라는 텍스트와 정치담론 사이의 관계를 새길 필요가 있겠다. 경經이라는 글자에는 ‘상常’, 즉 불변하는 도와 법칙이란 뜻도 있다. 경전은 “사회적 질서의 패러다임과 역사의 범주를 넘어선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유가가 국교가 된 전한 이후 전근대 중국에서 유교의 텍스트, 경(經)은 최대의 권위자였다. 제왕 및 관료는 천하 경영의 이상적 모범을, 지식인은 선악판단, 도덕성의 기준을 시, 서, 예, 악, 역, 춘추에서 찾았다. 고전학교 암송 중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詩云~”의 배경은 이러했다. 자연히 고대의 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는 정치적 문제가 된다. 한족 관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텍스트를 다루는 데 있다. (지식인士이자 관리大夫) “경학”은 어디까지나 경세치용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학”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음과 같다. 17~18세기 중국에서, 경학(이라는 정치담론)에 관해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기 그쳤으며, 무엇을 말하기 시작했나.


2.

1644년 만주족 입관 이후, 한족의 정권이 이민족에게 넘어감과 동시에 정치담론인 경학(經學) 역시도 함께 무너진다. 한족 지식인들은 자문했다. 명조 멸망의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시기의 경학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답은 이러했다. “조상들의 이단적인 사상이 공자의 진실한 가르침을 저버렸기 때문에 결국 이와 같은 붕괴를 가져왔다.”(56~57) 경을 해석할 때 불교적 ․ 도교적 색채가 섞이면서 순수한 유교의 사상이 흐려졌다는 것이다. 송 ․ 명대의 국가공인 정통 해석은 정주(程朱)의 도학(道學), 리학(理學)이었다. 주자는 인간에게 있는 본연의 성性이란 인간이 우주 질서의 리理에 가장 잘 부합된 상태이자 도덕적으로 완벽한 상태라 말했다. 주자학은 바로 이런 도덕적 완벽을 발견할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이를 정치 원리와 연결시켰다. (『개념과 시대로 읽는 중국사상 명강의』136p.) 이런 구도를 염두에 두고, 이전의 경에 대한 해석(주)를 집대성한 주희의 해석이 과거시험의 공식답안이었다. 청조는 여전히 이를 인정했지만, 한족 지식인들은 아니었다.

청대의 지식인들은 그 이전의 유가들이 그랬듯 흔들림 없는 권위자인 고대로, 공자로 돌아가자며 복고를 외쳤다. 송명리학을 거부하며 한학(漢學)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는 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들은 해석이 가해지기 이전, 경전의 원래 형태를 찾고자 했다. 초점은 실증(實證)에 있었다. 주자냐 양명이냐가 아니라 고문(古文)이냐 금문(今文)이냐가 문제다. 무엇이 순수한 공자님 말씀에 가까운가. 천인합일(天人合一)과 같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무엇과 겨루는 작업. 고증학자들의 근본적인 연구방법은 ‘실사구시實事求是’, ‘무징불신無徵不信(증명할 수 없으면 믿지 않음)’이었다. 일례로, 염약거(1636~1704)는 고문 상서(尙書)가 위작임을 밝혔다. 증거를 찾아 밝히는 고증(考證)이 청 대 지식인들이 천착한 작업이었다. 다음은 엘먼이 인용한 상서고문소증 일부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그대가 『상서』를 연구하면서 한 대漢代(의 권위)를 믿고 진晉과 당唐(의 권위)을 믿지 않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역사서나 주석을 믿으면서 경전을 의심하니, 이것은 괜찮은 일인가?”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떤 경전이든, 역사서든, 주석서든 나의 관심은 오직 진실된 것에 있다. 경전이 진실되고 역사서나 주석서가 거짓이라면 경전을 기준으로 역사서와 주석서를 바로잡으면 될 것이다. 역사서와 주석서가 진실되고 경전이 거짓이라면 역사서와 주석서에 근거해서 경을 바로잡는 것은 안 되는가?” (염약거, 상서고문소증 중)


상이한 해석들은 의심할 수 있을지라도 해석들의 기반, 토대는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아냐? 경은 절대적이지 않았던가? 이 질문이 일어날 법 하다는 듯, 염약거는 자문자답한다. 실증적인 것이 권위를 가지는 것이라고. 실증된 경에 권위가 있지, 경이 곧 권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장학성, 육경은 모두 역사서다. 六經皆史) 갑자기 장자의 ‘붕’이 생각난다. 배치 안에 함몰되어 있다가 일순, 높이 떠올라 배치 전체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3.

게다가 이 작업은 청제국의 국가적인 후원 하에 집단적으로 전개됐다. (* 양자강 하류 지역의 강남학술공동체) “건륭 시기 중국의 정치 문화에서 국가는 사실상 모든 면에서 고증 운동을 지지했다. 정치 형태와 학술은 거대한 학술 작업으로 통합되었는데, 이 학술 작업은 황실이 당시의 지배적인 학술 운동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증이라는 학문 경향이 국가의 제도적 지원과 맞물리면서 하나의 장 전체가 바뀐다. 양계초의 표현대로라면 고증학이 청의 ‘시대사조’가 된 것이다.

이 고증 작업에 필수적인 것이 소학(小學)이다. 소학은 어원학, 음운학과 같은 문자 및 훈고에 관한 학문을 말한다. 이 글자가 과거의 시기에는 어떤 음으로 발음되었는지, 무슨 의미였는지를 하나하나 정확히 따져야 한다. 다음 대진의 글에 이러한 태도가 잘 드러난다.


“경은 도로 향하는 길을 제공한다. 도를 밝히는 것은 말이다. 말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는 소학과 문자(에 대한 지식)를 통해서만이 파악될 수 있다. 문자(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언어에 통할 수 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고대 성현들의 마음과 의지를 꿰뚫어볼 수 있다.” (대진문집 중)


내겐 밋밋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분명 헉, 소리 나는 말이었을 듯. 내가 가진 고루한 이미지의 고증학은 바로 이 측면만을 부각시켰을 때의 모습이다. 이런 깐깐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런데 실은 이 지난한 작업이 아주 위험한 길로의 첫걸음이었다. 권위를 증명하려던 시도는 오히려 경의 권위를 해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도학에 대한 맹공은 전체 경학 유산에 대한 거부로 가는 첫 번째 단계”였다니. “이 재발견의 작업은 경전에 가해지는 비평적 접근과 맞물리면서, 절대적인 권위로서의 고전을 위협하는 비평적인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의리에 대한 최종 결정자로서 실증적 기준을 강조하는 것은 고증학에 내포된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표현한다.” 이 함의가 무언지. 앞으로 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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