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입니다ㅠ^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고전학교 5월 4일자 정리 갑니다~
이번 청대 철학은 여전히 어려움만 남겨주며 지나갔습니다. 이기 이월론과 이기 일원론부터 넉다운되었는데 생의라는 건 또 뭐고 우리가 읽지도 않은 주희의 철학이라는 건 당최 뭐고, 결국 기와 마음의 문제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대체 이 사람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산 거지? ㅇ0ㅇ 본성과 마음, 심과 성의 연관성, 여기서의 자유와 의지의 문제? ㅇ0ㅇ... 일단 필기 노트에 적혀 있는 것만 조금씩 정리해 보겠습니다ㅠㅠ
주희는 분명 理의 초월성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리와 기에 대한 질문을 들었을 때 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매커니즘 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기는 변하지만 영원하지 않은 영역이므로 영원한 리를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즉, 주희의 이론 안에서는 리가 초월적 법칙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기는 기질적 차원의 문제이므로 주희의 순정주의적 결벽(?)이 발동해서 아무래도 한 단계 낮게 본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리는 더 순연한 법칙이며 영원성으로 자리잡고 리와 기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면, 이런 레벨화는 아랫것이 위의 것을 지향하는 게 당연한 구도를 만듭니다.
이렇게 리와 기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사유되는 주자의 체제를 깨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해 봐야 요순 이래로 세상은 늘 혼탁한 암흑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순이 신화시대라면 결국 알 수 있는 건 한가지, 유사 이래 인간세계는 늘 암흑이었다는 것. 즉 청동기 이후 영원불변의 자연법칙 같은 건 없었다는 것. 그러므로 법칙이란 우선 현상이 있고 나서 도출되는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
이번 고전학교 강의 시간의 핵심은 아무래도 이 말 같습니다. 시대에 절망을 느끼고 사유한다는 것이 바로 철학의 시작이라는 것. 시대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것, 혹은 보려 하지 않는 암흑을 민감하게 보고 어둠을 응시하는 문제가 바로 철학의 동시대성이자 반시대성이라는 겁니다. 또 한가지, ‘탈주’를 단지 목적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고착되는 위험성 못지 않게 ‘탈주’ 자체로 끝나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 집을 나가서 무얼 할 것인가가 중요하며나가서 새로운 것을 구성하지 못하면 안 나가는 것만 못하다는 겁니다.
황종희는 일단 시대로부터 암흑을 보고 탈주를 시도한 것 같습니다. 나라의 멸망을 겪으면서 자기 근거를 상실하고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한 환멸과 의심을 느낄만한 위치의 학자였습니다. 즉 시대의 암흑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고, 그랬기에 자기 사상을 다시 한 번 독해하려고 합니다. 이전세계의 철학을 봐야 자기 세계의 문제가 보이고 그래서 철학이란 철학사에 대한 연구라고도 합니다. 황종희는 자기 시대를, 그리고 역사를 다시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독해의 산물인 <명이대방록>에서 황종희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두고 다소 갑갑한 (제리샘 표현으로는 ‘좋은 것만 취하려다 망하는’) 이상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명이대방록>에 대해 세간(?)의 독해방식은 역셩혁명과 민본주의, 의회정치와 자본주의의 맹아를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는, 그래서 자본주의가 여전히 도달해야 할 목표라고 여기는 독해 방식이라고=_=. 오히려 황종희는 당시 理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국 지식인들의 기만적인 정당화를 깨고 聖人이 되겠다는 목적론적 방향 대신 공부 자체를 본체로 하는 내재의 철학을 말합니다. 기라는 것은 통하는 게 본질이며 마음이 곧 기라는 것.
하지만 기가 막힌다면? 그 다음 문제는 이걸 어떻게 의지적으로 작용시킬 것인가입니다. 결국 의지의 문제^^ 인거 같은데 어, 여기서 더 어쩌지? 의지라는 건 또 뭔가 하는 의문만 솟다가 끝난 기분입니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