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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8 고전학교 / 료


 황종희(1610~1695)에서 이제는 왕선산(1619~1692)으로. 여전히 우리의 타임라인은 명말청초다. 같은 시기 황종희가 『맹자』를 리라이팅했다면, 왕선산이 다시금 읽고 쓰기에 착수한 주요 텍스트는 바로 『주역周易』이었다. 덕분에 리理나 기氣라는 말에도 채 익숙해지기 전에 태극太極과 음양陰陽, 효爻와 괘卦들의 습격.. 비단 왕선산 뿐 아니라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이 이 세계를 어떻게 파악했는가가 역易, 변한다는 이 한 글자에 담겨있다.

 밤이 가고 해가 떠올라 아침이 오고 해가 져 다시 밤이 온다는 것. 봄 다음에는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오며 다시 또 봄이 온다. 자고이래 세상은 이러했다. 이 너무나도 당연한, 그래서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자연현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동서양의 그 시각차를 이렇게 포착한다. 이 세계는 ‘창조’의 산물인가 혹은 스스로 ‘운행’하는가.


1. 존재는 생성 중

 먼저, 플라톤은 대화편 『티마이오스』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규칙성에 대해 감탄하며, 이 세계는 완벽한 본本(이데아)을 모사한 것이라 말한다. 데미우르고스라는 선한 신이 있어서 그가 본을 떠 만든 것이 우리가 사는 우주라는 것이다. 그에게 ‘생성’ 중인 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존재’라면 변치 않아야했다. 변한다면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한편, 중국인들은 이런 이분법에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추호도 ‘생성’없는 ‘존재’를 생각한 적이 없다. 존재하는 것은 곧 생성 중이다. 주역과 왕선산이 이 세상을 본 포인트는 그저 세상이 변한다易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마냥 끝없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다. 밤낮은 “교대交代”한다. 그리고 이 규칙성을 가지는 변화가 시작도 끝도 없이(無始無終) 계속된다. “모든 현상은 그 차원이 다를 뿐 영속적인 왕往-복復을 따른다.”


2. 一陰一陽謂之道

 그렇다면 이 규칙성을 가지는 변화의 동력은 무엇인가. 『주역』하면 이것밖에 모르는 바로 그 구절을 인용해보자.


“때로는 음 - 때로는 양(동시에 음 - 동시에 양). 이것이 세계 흐름의 실재이고, 길이자 운행이다. 一陰一陽謂之道.” (주역, 계사전)


 이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무수한 사건사고로 들끓고 있다. 우리는 생성을 매순간 경험 중이다. 물론 우리 자신도 생성 중. 그런데 이런 변화는 늘 동일할 뿐인 존재(플라톤의 존재)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역易에서 말하는 변화란 ‘상호작용’이다. 즉, 차이를 가지는 것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서로 닮지 않은, 대립하는 것들. 존재의 내부에는 애초에 대립이 내포되어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그것을 음陰 양陽으로 표현했다. 서로 대립하는 음양이 만나면 서로 감응하기 마련이며, 이를 통해서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진다(現動).

 양陽이란 주도적인 기운이다. 자연에서 보자면, 양陽인 하늘天은 주도적으로 비, 눈, 번개를 땅을 향해서 내린다. 음陰이란 양에 순응하는 기운이다.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한다. 크게 보면 이 세계는 바로 이러한 천지라는 음양의 상호작용이다. 그리고 그 천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상만사 역시 모두 음과 양이 서로에 감응하여 반응하는 활동이다. 즉, 만물은 원초적으로 음양이란 ‘이원성’을 가진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원二元적인 동시에 상보적이라는 것. 그 다름으로 인해 항상 상호작용이, 생기 넘치는 만남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단독적 개체가 아니라 그 자체가 곧 '관계'다. “모든 실재는 만물간의 감응에 의한 상호작용에 그 토대를 둔다.” 예를 들어 달과 조수. 달이 기울고 차는 변화와 밀물썰물의 변화가 서로 상관한다. 이처럼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각자가 따로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상관관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존재의 내재적 근거는 관계”이며 “실재의 의미는 상관성”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한 명의 인간, 나무 한 그루라는 개체를 관계로서 설명하는 쪽이 자연스럽다. 그 근저에 음양이라는 근본적인 이원성이 있고. “우리는 무엇보다 세계의 실재를 일원적 측면에서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개별적 주체에 대한 인식보다는 상호작용의 관계가 우선함을 상정해야한다. 즉 이원성이 근원적인 것임을 인정하게 해주는 바탕은 상호의존성과 상호성의 논리임을.” 붓다 역시 모든 것이 관계로 이루어져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주역과 왕선산이 보는 존재란 부처가 설한 바 ‘연기緣起’하기 때문에 공空한 존재가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끈끈하게 얽혀 명백히 실재한다.


3. 내재와 생성

 스스로 차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사시四時는 누군가에게 조정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흘러간다. 세상만물 누구나 그것을 경험하고 있으며 바로 그 스스로가 그렇게 운행하고 있다. 이 흘러감, 살아감에 어떤 외부의 동력은 필요치 않다. 하나의 사건, 한 개체는 다음의 국면을 이미 자신 안에 가진다. 그것은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다만 드러나지 않았던 모습일 뿐이다. 이 안에서 변화는 다 설명가능하다. 주역의 64개의 괘가 보여주듯.

 주역에서 하나의 괘를 풀이할 때, 그 괘의 상하가 뒤바뀌었을 경우와 효의 음양이 바뀌었을 경우를 함께 살펴본다고 한다. 64괘라는 총체 안에서 그 관계를 고려했을 때야 비로소 하나의 괘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초월성 없이 세상을, 개체를 설명하기. 황종희에서는 ‘내재’로, 왕선산에게는 ‘생성’으로 드러난다는데. 지금 뭘 쓰고는 있는데, 잘 모르겠다... 암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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