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의 이름이자 하나의 가문인 어셔 가(家)는 아주 오래되었다. 자잘한 곰팡이가 저택 외벽을 온통 뒤덮었고, 처마에도 거미줄 마냥 늘어져있었다. 고딕풍의 아치형 길들, 발소리를 죽인 채 걷는 하인, 칙칙한 색의 벽걸이 융단, 흑단(黑檀)으로 된 바닥, 낡아빠진 골동품 가구더미, 격자 판유리를 붉게 물들이며 미약하게 반짝이는 빛, 그리고 전체적으로 ‘심각하고, 짙은, 구제할 길 없이 우울한 분위기’. 이러한 것들이 저택의 내부를 이루고 있다.

  이 저택에서 수감자나 다름없이 살아가는 로드릭과 메들린 어셔는 비할 수 없이 오래된, 몰락한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들이다. 로드릭의 눈은 크고 빛나며, 코는 살짝 아치곡선을 그리는 우아한 헤브라이 형으로, 이는 리지아를 묘사했던 모습과 똑 닮았다. 그는 가문의 내력인 신경증을 앓고 있다. 로드릭 어셔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인물로, 그의 신경은 대기 중의 알아채기 어려운 떨림에조차 진동한다. 그 역시도 자아, 즉 살아있는 영혼을 잃어버렸고, 외부의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악기가 되었다. 그의 신경은 정말이지 바람을 맞기만 해도 울리는 하프처럼 진동한다. 로드릭은 ‘음산한 환영과 사투를 벌이며,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가 살아있는 존재의 육체를 지녔으되 이미 죽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단 자아의 중심이 붕괴되고 나면, 악기처럼 반응하는 인간의 의식이 얼마나 많은 것을 표상/인식할 수 있을까? 인간이 자아를 잃어버리면, 그러니까 열린 창가에 세워둔 하프와 같이 음악을 울리게 하는 상태가 되면, 기본적인 의식은 얼마나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몸속을 흐르는 피는 인식/식별하는 행위(seeing)와는 전혀 다르게, 그 나름의 방식으로 물질계에 공감하고 응답한다. 그리고 신경은 우리가 알다시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보이지 않는 힘들에 끊임없이 진동한다. 따라서 로드릭 어셔는 물질적 실존의 언저리에서 진동하고 있다.

  ‘즉흥곡을 짓는 그의 열광적인 재능’은 바로 이 기계적인 의식에서 온다. 포의 시 작법이 보여주는 놀라운 재능도 여기에 기인한다. 자신 안에 진정으로 중심이 되는 혹은 충동적인 존재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예를 들어 기계적이고, 단순한, 어떤 열정에도 뿌리를 두지 않은)소리와 효과, 소리의 조합, 각운의 조합에 지나칠 정도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민감해졌다. 이는 모두 부차적이고 형식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따라서 로드릭 어셔의 시, 유령이 출몰하는 궁전에서 절묘하게 배치된 각운과 운율은 기민하지만 기계적이고, 묘사가 저속한 느낌을 준다. 이 시는 꿈을 꾸는 과정으로 열정적인 의미가 지속하는 한, 요소들 간의 조합은 기계적이고, 우연하게 이루어진다.


처리하지 못한 몇 놈이 있습니다..

내일 얘기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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